홍형기 대풍산업단지 관리소장(전 삼성면장)
홍형기 대풍산업단지 관리소장(전 삼성면장)
  • 유재윤
  • 승인 2012.01.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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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은 기회이고 부족함은 경쟁력…”



살아온 삶의 모습도 시간도 각기 다른 다양한 퇴직공무원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젊은 시절 공무원 생활을 통해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21일 삼성면사무소 2층 회의실엔 이필용 음성군수를 비롯, 박수광 전 군수, 정태완 군 의회 의장과 각급 기관단체장 및 지역주민 등 200여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로 4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명예롭게 퇴직하는 홍형기 삼성면장의 퇴임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여느 퇴임식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날 퇴임식은 유난히도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아마도 홍 면장이 그간의 공직생활을 해 오면서 온갖 어려움을 무릎쓰며 쌓아온 덕망과 인품이 그를 떠나보내려는 아쉬움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정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저는 그동안 40여 년간 몸담았던 공직 생활을 마감하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곁을 떠난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막상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여러분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많은 아쉬움도 남고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이하생략)

이렇게 시작된 그의 퇴임사는 1970년도 임시직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좌절과 역경을 딛고 사무관까지 승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소회와 가족에 대한 사랑, 선·후배 동료 공직자와 지역주민에 대한 당부 등 그의 40여년 공직생활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마치 각본 없는 휴먼드라마와 같은 여정이었다.

음성읍 읍내리가 고향인 홍 소장은 음성중학교를 졸업하던 1970년도에 진천보건소 일용직으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일용, 상용, 별정직 생활 15년여 만인 1985년 정규직 공무원으로 발령 받아 2006년 12월 공직의 꽃이라는 사무관으로 승진하기까지 그의 애환과 피나는 노력은 본인 아니고서는 누구도 짐작 할 수 없으리만큼 고난의 생활이었다.

서글픔도 많았고 좌절의 시간도 있었다. 오죽하면 '눈물의 뱃지'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러나 그는 좌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학력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통신고를 다녔고 늦은 나이에 대학에도 진학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 했다.

그는 말한다. “세월을 뒤돌아보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았고 매 순간순간마다 내가 음성군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그런 책임감이 내가 오히려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많은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의료혜택이 적은 군 지역임을 감안해 군민들에게 응급환자 및 뇌질환 등 중환자 발생시 의료혜택을 주고자 서울 삼성병원과 자매결연을 체결, 주민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 했고, 경제적 여건으로 성형에 대한 엄두도 못 냈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밝은 얼굴 되찾아 주기 사업, 관광자원 하나 없는 지역특수성을 감안, 식품위생업소의 경쟁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향토음식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주민들의 식생활 문화를 개선했는가 하면 좋은 식단, 식중독 에방, 주민불편신소센터 운영 등 국가 및 군 행정시책 추진을 위해 “대박식당 뭔가 이유가 있다”란 홍보책자를 비롯해 건강달력, 위생모자, 마우스패드, 부채 등을 통한 사전홍보로 주민에게 알거리를 제공함은 물론 위생 담당부서를 찾는 모든 민원인에게 각종 민원별 신고절차와 안내서류를 사전 제작 비치, 민원인에게 배부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안심하고 즐거운 먹거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식품제조 가공업소의 안전한 식품생산을 위하여 현지 방문지도 및 식품품목보고를 통한 제품의 안정성 및 유해성을 검토 하고, 매월 1회 이상씩 소비자 식품위생 감시원과 함께 지도단속을 실시 주민들이 안심하고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그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열거 할 수 없으리 만큼 수 많은 일을 추진,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런 공로로 국립보건원장, 보사부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국무총리 표창 등 수 많은 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은 일들을 추진하기까진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힘들고 어려운 게 바로 기회이며 부족함이 바로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홍 소장은 쾌활한 성격이지만, 겉으로 잘 나타내지 않는 외유내강 형으로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미래지향적 성격의 소유자다.

7살 때 불의의 사고로 지체부자유자가 되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왔던 홍형기 소장.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 의지력을 시험하기위해 전국의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다 등반해 봤다는 홍 소장은 스스로를 토끼와 거북이와의 경주에 비유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나중엔 허락…그래서 장인·장모를 더 존경한다함) 자신과 결혼해 고생만 하며 지금껏 살아온 아내(김용희)와 노모, 그리고 1남1녀의 가족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 했다며 퇴임사에서도 밝혔듯이 “같이 살아오면서 평생 해보지 못한 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는 홍 소장은 그렇게 속이 깊은 사람이다.

자신의 언어습관으로 오해를 하거나 상처를 받으신 분께 꼭 오해를 풀어달라고 간곡히 말하는 홍 소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지금이고, 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며 “작은 힘이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또한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며 매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한다.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뜻하는바 모두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생활하는 홍소장. 그의 앞날에 영광과 축복이 항상 같이 하길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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