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곡면 상평1리 상촌마을
감곡면 상평1리 상촌마을
  • 김진수
  • 승인 2011.05.2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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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마을 곳곳마다 유서깊은 전통 서려있네

봄이 가고 있던 어느 푸르른 날, 기자는 상평1리 김훈묵 이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상평1리에서 한국 사극의 거장, 김재형 PD 장례가 있다는 것이다.

고 김 PD 장례식을 취재하며 기자는 유서깊은 전통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상평1리 주민들을 취재하게 됐다.

◈ 울창한 숲, 백옥같은 물이 조화를
기자는 고 김 PD의 유해를 기다리며, 상평1리 회관 앞 520번 도로변에 있는 '상촌 마을비'를 보았다. 마을비에 의하면, 상평1리 상촌 마을 뿌리는 약 40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안동 김씨 김진강 공 장남 대화공이 벼슬을 시작, 이 마을에 정착해 뽕나무를 많이 심어 자급자족하면서 마을 이름을 '상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상평1리 상촌 마을은 차령산맥의 지맥인 원통산 줄기 가사바위 밑에 펼쳐진 작은 분지에 이루어졌다. 마을 둘레는 얕은 산으로 둘러쌓여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아 매우 아늑하고 포근하다. 마을 안 울창한 느티나무 숲 아래엔 백옥같이 맑은 물이 검푸른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 물소리가 산새와 매미 소리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고 있다. 옛날 안동 김씨 선비들이 모여앉아 바둑과 장기를 즐기던 선경(仙境)으로 자랑할만하다.

상평리는 상촌(桑村)의 '상(桑)'자와 성평리(城坪里)의 '평(坪)'자 각각 한 글자씩을 따온 이름. 본래 충주군 감미곡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된 후 상평리는 1914년 덕동·성평리·상촌리·공산리·외주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감곡면에 편입되었다.

감곡면의 중남단에 위치한 상평리는 동쪽으로 월정리, 서쪽은 원당리와 생극면 방축리, 남쪽에 생극면 차곡리, 북쪽은 영산리가 각각 인접해 있다. 상평리는 가미실 계곡을 따라 마을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엔 200~300m의 산이 있다. 이 사이에서 발원한 물이 주천저수지로 흘러들면서, 그 유역엔 농경지가 형성돼 있다.

◈ 조상들의 전통과 추억 고스란히 남아
상평1리에는 조상의 전통이 얼을 고스란히 담긴 지명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먼저 상평1리 주요 마을인 '상촌(桑村)'. 상촌은 터골 동쪽에 있는데, '윗상촌'과 '아래상촌'으로 나뉜다. 안동 김씨 세거지로서 옛날엔 뽕나무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복숭아가 많다. '윗상촌(上桑村)'은 상촌 위에 있는 마을로 '골상촌'이라고도 한다. '아래상촌(下桑村)'은 골상촌 아래쪽에 있는 마을. 또 아래상촌 동쪽에 외딴집이 있는 '외딴터', 외딴터 남쪽 벌판엔 '벌말' 등이 있다. 들판으로는 상촌 앞에 있는 '상촌앞들', 잿말 원통산 아래부터 월정과 상평리 앞들까지 있는 들인 '가미실번던'이 있다. 고개도 많다. 외딴터에서 윗상촌으로 넘어가는 '사태고개'. 상촌에서 영산리 잿말로 가는 '잿말고개'. 상촌에서 생극면 차곡리 수리울로 가는 '수리울고개'는 사연도 많을 성 싶다. 또 '모정골'은 골상촌에 있는데, 옛날에 풀로 만든 정자 얘기만 전해질 뿐, 지금은 느티나무가 우거져 숲이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또 골상촌 위로 동쪽엔 '절터골'이, '낭골'은 윗상촌과 아랫상촌을 잇는 골짜기를 일컫는다. 그 외에도 골상촌 동쪽에는 '가사바위'가 사라진 승려를 그리워하고 있고, 상평1리서 월정리로 가는 길 가에 있는 '멱바위'는 송아지를 삼킨 메기의 추억이 서려 있다.

◈ 해마다 모정골 숲에선 주민잔치로 화합
주로 복숭아, 인삼을 많이 재배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는 상평1리 주민들 이외에도 벼·콩·고추·참깨·감자·고구마 등을 재배한다.

김훈묵 이장은 “상평1리 주민들은 마을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단합해서 일해 오고 있다. 특히 상촌청년회 회원들은 인터넷에서 까페를 운영하며, 마을의 큰 일들을 책임져 진다. 매년마다 모정골 숲에서 청년들이 주관하는 주민화합잔치는 국내 유명인들도 다 알 정도라”고 자랑한다. 또 김 이장은 앞으로 노인회관을 신축할 계획을 밝히며, 이를 통해 마을 주민들이 협동단결하는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기자는 전통이 서려있는 상평1리 상촌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며, 옛날 안동 김씨 선조들처럼 시를 지어본다.

“꼬장꼬장한 안동 김씨 선비 정신이 / 성당 공소 새 건물을 뒤로하고 / 아랫상촌 입구를 지키고 있구나 / 초병처럼 우뚝 선 마을 비 옆으로 / 나란히 선 모정골 샘터 기념비 / 폐경기도 한참 지난 듯 메말라버린 사연이 웅크리고 있었다 // 몇 번 세상이 바뀌었다 // 도회지로 떠났던 후손들은 / 죽어서야 찾아와 안식을 취하건만 / 삭풍속을 버텨낸 세상의 지팡이였던 느티나무들 / 골상촌에 모여 고통스런 기다림으로 몸을 뒤틀었구나 // 지금도 윗상촌 숲은 푸르른 전통을 겹겹이 입고 있었다” -- 기자의 졸시, '상촌마을을 지나며' 중에서 --

우/리/마/을/자/랑/거/리

느티나무와 맑은 물 휴식처 / 음성현감 김진강 제사지내는 곳

날로 증대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전통 마을 숲을 적극 발굴·보존하는 사업 일환으로 전통 마을숲이 충북엔 두 곳 지정됐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상평1리 '골상촌 마을숲'. 혹은 모정골 마을숲이라고도 한다. 골짜기엔 20-30m 넘는 느티나무가 빼곡하고,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또 정자와 의자가 있어 휴식처로는 딱 안성마춤.

또 마을에 안동김씨 문중의 김진강(金震綱)의 사당이 있다. 이 상평리 숭모재는 1922년 안동김씨 문중에서 음성으로의 입향조인 음성현감 김진강의 제사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숭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와옥으로, 뒤쪽의 구릉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지었으며 콘크리트 담장을 둘렀다. 담장에는 맞배에 풍벽(風壁)을 가진 솟을대문을 설치하였고, 대문 정면에는 태극문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한옥의 재실을 설치하였다.

우/리/동/네/사/람/들

김훈묵  이장
김훈묵 이장
주민들 행복하게, 성실한 마을 일꾼

김훈묵 상평1리 이장은 마을의 성실한 일꾼이다. 부인 천미혜 씨를 비롯한 가족과 함께 복숭아 농사와 논밭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주민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특히 어르신들이 평안하게 지내시면서, 살기좋은 마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권광준 노인회장
권광준 노인회장
연로한 노인회원들 건강해서 농사 잘 짓기를

권광준 노인회장은 몸이 많이 불편하다. 그래서 농사일을 잘 하질 못한다. “회원들이 다들 연로한데,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농사도 잘 지을 수 있기를 빈다”고 노인회원들에게 당부한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영순 여사와 슬하에 2남3녀가 있는데, 큰 딸이 감곡 면소재지에서 살고 있다.






이정옥 부녀회장
이정옥 부녀회장
바쁜 농사철, 건강하세요

20여명 부녀회원들에게 “바쁜 농사철입니다. 건강하게 일하시고, 농사도 다들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바쁘더라도 마을 일에도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고 인사하는 이정옥 부녀회장. 남편 김광석 씨와 장성한 남매를 자녀로 둔 그녀의 가족과 고향을 사랑은 끝이 없다.









권순안 청년회장
권순안 청년회장
노인회관 신축에 다시 한번 힘을 모을터

안동 권씨 후손인 권순안 청년회장은 상평리가 고향이다. 감곡면 소재지에서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며 복숭아와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노인회관을 가을부터 신축할 예정이다. 이장님을 비롯해 동네 어른들을 열심히 돕겠다. 회원들도 다시 한번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청년회원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가족은 부인 지현옥 씨 사이에 자녀로 남매가 있다.







김현동 새마을지도자
김현동 새마을지도자
마을 어른들을 최선 다해 보필하고파

대동계 총무를 겸하고 있는 김현동 새마을지도자는 상평1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현재 금왕에 있는 직장을 출퇴근하는 그는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그의 말이 듬직하기만 하다. “직장에 다니느라 마을 일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장님과 노인회장님을 비롯해 마을 어른들을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다”









홍완기 대동계장
홍완기 대동계장
변함없이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일에 협조를 부탁

검붉게 그을린 마음씨 좋은 고향 어른같은 홍완기 대동계장. 그는 부인 송인출 씨와 함께 벼농사와 복숭아 농사 등을 짓고 있다. 국회의원, 연출가 등 국내 유명인사를 많이 배출했다고 마을을 자랑하는 그는 출향인들을 향해 "그동안 고향에 관심을 갖고 협조해준 것을 감사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일이 많이 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고향을 사랑하고 찾아달라"는 인사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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