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남면 마송3리
원남면 마송3리
  • 김진수
  • 승인 2011.05.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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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선 옆으로 마송천엔 멋과 전통이 유유히 흐르고

군내 행사장이나 원남면 행사 때 기자의 눈을 사로잡는 중년신사가 있다. 잘빗어 넘긴 가르마, 검붉은 혈색, 부리부리한 눈매, 두툼한 입술. 유머와 재치있는 화술로 좌중을 휘어잡는 그 남자. 화려하지 않지만 언제나 단정한 의상으로 입에 문 담배가 잘 어울리는 멋쟁이. 바로 원남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으로 지역의 성실한 일꾼, 마송3리 고병식 이장이다.

기자는 여러 번 망설이고 연락과 접촉 끝에 그가 사는 마을, 마송3리를 취재하였다.

◈ 자라배, 오미들 그리고 역전말
마송3리는 음성읍서 원남 방향 36번 도로를 따라 8km 경에 위치한다. 반기문 생가마을을 넘는 행태고개 일명 행치제, 혹은 한금령이라 불리는 고개가 있다.
이 한금령은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 행태고개 넘어 긴 내리막길, 그 양옆으로 '자라배 마을'이 있다. 자라배는 자라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자라배에서 충북선 철로앞 마송천까지 펼쳐진 들은 '수채들이'다. 마송천 다리를 지나면 원남면 소재지 입구다. 그 왼쪽으로 충북선 보천역이 자리한다. 보천역은 예로부터 원남 인재들이 청주와 충주로 드나들던 관문. 역 앞에는 주택과 농기계센터를 비롯한 상가가 있는데, 역전말이다. 다시 오던 길로 돌아보면, 북쪽으로 철로와 나란히 흘러오는 마송천 옆에 40여호 마을이 있다. 바로 마송3리 오산마을회관 겸 노인회관이 5년 전에 들어선 '오미(오산) 마을'이다.

자라배 북쪽엔 마곡산이, 그 너머는 일명 모래봉이라는 큰산(509m)이, 오미 동쪽은 오대산(400m), 남쪽에는 백마산(465m)이 솟아 있다. 오미 앞을 흐르는 마송천은 주봉리서 발원, 서쪽으로 조촌리까지 흘러 진천군 초평천으로 유입된다. 마송천을 오미 사람들은 '말개울'이라 한다. 예전엔 맑은 물이 흘렀다는데, 지금은 혼탁하기만 하다. 그 외 요골들이, 장성이들, 감나무골, 오리나무골 등이 있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본래 음성군 남면 지역이었던 마송3리. 그러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오리와 마피동리 일부를 병합, 마피동리와 송오리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현재 이름으로 원남면에 편입됐다.

◈ 재주많은 사람들이 어울렁더울렁
고씨 집성촌인 마송3리는 현재 75가구, 150여명 주민이 산다. 주민들은 주로 고추, 벼농사를 짓는데, 자라배엔 5가구 정도가 담배와 인삼 농사를 짓는다. 주민들 80%가 65세 이상 어르신들, 어린이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귀하다. 그래서 70세 이상 노인들이 동네일을 맡는 실정. 60세 고 이장은 마을에서 젊은 축이다. 동네 주민 가운데 김도순 씨와 고인기 씨 부인 강미희 씨가 효부상을 받았다. 어른 공경의 마을 전통 때문인듯. 고병식 이장이 원남면 새마을협의회장과 자율방재단장까지 맡아 지역봉사에 힘쓰고 있다. 대통령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수상한 고후진 씨는 “마을 사람들마다 참 재주가 많다. 그래서 기쁘고 즐겁게 산다”고 소개한다.

오미엔 제주 고씨 상당군파 음성종문 사당인 숭덕사가 있다. 숭덕사 뒤론 1940년 고원희 씨가 세운 법화사와 1968년 고용진(高庸鎭) 효자문이 세워졌다.
또 말개울 둑방 300m에는 일정 간격으로 돌장승 1호, 2호, 3호가 있다. '정계대장군'이라 새겨진 이것들은 1713년(숙종 39)에 무관 고증명이 지방 수호의 상징으로 세운 것이라고 전해진다. 고씨 종문회는 숭덕사에서 음력 10월 15일경 제사를 드리는 한편, 오미 주민들은 정월 초 법화사 주지가 잡아준 날짜에 맞춰 제를 올린다. 자라배 주민들은 따로 구정때 척사대회를 갖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전후로 동제를 지낸다.

마을 전체로는 12월 25일을 전후해서 대동계를, 매년 5월 원남면 새마을회가 주관하는 경로잔치에 참여하는 한편, 마을 자체적으로 한 차례 효도관광을 하곤 한다.

◈ 협력해서 행복한 명품마을을 꿈꾼다
앞으로 돌장승 주위로 솟대를 많이 세워, 조촌리 테마공원부터 솟대배미와 자라바우를 경유해 반기문 생가까지 이어지는 원남면 관광코스를 구상하는 고 이장. 36번 도로 좌우로 꽃길을 가꾸겠단다. 며칠 전 고 이장은 새마을사업 일환으로 소수방향 주봉로 양편 250m 가량에다 사과나무를 심었다. 몇 년전 매실나무를 마을 곳곳에 심기도 했던 고 이장은 명품마을을 만들려고 남달리 노력하고 있다.

“출향인들이 동네 일이 있을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들어와 협력하고 있다. 다른 마을에 비해 단결이 잘되는 마을”이라며, 고 이장은 “주민들이 봉사정신을 갖고 이웃간 서로 도우며 협력해서 행복한 마을을 만들자”고 당부한다.

철로 건너편에 농토가 있는 주민들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철로 주변이 철도청 소유와 교육부 재산이라서 오미에서 직선도로를 뚫고 싶어도, 철도청과 교육부 허락얻기가 어렵다는 것. 그래서 직선 200m 거리를 주민들은 36번 4차선 도로까지 나가, 역전말을 지나 3km 가까이를 우회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행치제부터 달려오는 차량 때문에 아찔아찔한 사고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이에 대한 선처를 주민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멋쟁이 고씨들 / 겨우내 만든 솟대 / 말개울 뚝방에서 돌장승 정계대장군(靜系大將軍) 삼인방의 지시를 받아 / 충북선 열차를 멈춰 세운다 / 소나무 한 쌍은 푸르른 팔을 벌린 채 / 숨가쁘게 행치제를 넘어온 이들을 막고서 / 목 잘린 자라바우의 교훈을 들려주고 있었다”
--기자의 졸시, “마송3리에서” --



우/리/마/을/자/랑/거/리

자라바우(鼈岩) | 솟대와 장승 | 소나무

마을 품격을 높여주는 것들 곳곳에 즐비

자라바우 자연석으로 길이 3.7m, 넓이 2.5m 흑색으로 자라가 몸을 움츠른 모양의 바위다.
애초 현 위치서 남쪽으로 70m 정도에 위치했었는데, 청주-충주간 4차선 도로확장공사로 이전했다. 이 바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자라배'라 부른다.
옛날 마을에 인정도 눈물도 없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지나가던 도승이 부자에게 시주를 청했다. 그런데 부자는 시주대신 두엄을 도승 바랑속에 넣었다. 이에 화난 도승이 자라바우 목을 육환장(六環杖)으로 내리쳤는데 자라목이 떨어지고 피가 났다. 부자는 그후 점점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솟대와 장승 마송3리 앞을 흐르는 마송천 둑방 300m. 민속 문화재로 등록된 3구의 일정한 간격으로 돌장승이 세워져 있다.
고병식 이장은 장승이 세워진 길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고, 안내판과 함께 장승 주위와 솟대배미에 솟대를 세우는 한편, 과실수를 식수하여 마을의 명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소나무 515번 지방도로 주봉로가, 고영수 노인회장 집 옆에는 푸른 소나무 한 쌍이 심겨져 있다.
몇 년전 수천만원을 들여 이식한 것으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경하러 오고 있다.



우/리/동/네/사/람/들

고병식 이장
고병식 이장
낭만을 즐기는 멋쟁이 중년남성

고병식 이장은 주민들로부터 여자답고, 솜씨가 좋다고 칭찬이 자자한 이임순 씨를 부인으로 둔 행복남. 외아들은 서울 L그룹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고 이장은 마송리에서 태어나 30년 서울살이 끝에 10년전 부모님을 모시려고 귀향했다. 현재까지 3년째 이장을 맡으며 6년간 원남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재난방재단장까지 겸한다.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한 그는 품격있는 마을을 가꿔가기 위해 노력하는 멋드러진 남자다.




고영수 노인회장
고영수 노인회장
변함없이 마을 일에 협조를

2반 오미마을 반장까지 맡고 있는 고영수 노인회장. 가족으로는 부인 장길현 씨와 함께 1남1녀가 있다. 논밭농사를 위해 며칠 전 트렉터를 구입한 고 노인회장은 실질적으로 마을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고병식 이장은 소개한다. 그는 “그동안 열심히 도와줘서 고맙다. 무병장수하시고, 앞으로 변함없이 잘 협조해주길 부탁한다”고 주민들과 노인회원들에게 말했다.



고순식 마을총무
고순식 마을총무
원남초 교장을 아들로 둔 마을의 어른

“마을 일에 한마음으로 협조해준 주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앞으로 더 노력합시다.”
마을 안살림을 맡은 고순식 마을 총무의 말이다. 부인 연옥분 씨 사이에 3남 2녀가 그의 가족. 원남 교육의 수장인 원남초등학교 고병일 교장선생님이 바로 그의 큰 아들이다.




최구영 새마을지도자
최구영 새마을지도자
마을 심부름꾼으로 열심히 일할 터

“새마을지도자인 저는 마을의 심부름꾼이라 생각한다. 마을 어른들의 뜻을 받들어 이장님을 도와 마을 일을 열심히 하겠다.”
조촌리가 고향인 최구영 새마을지도자는 보천역 앞에서 형제농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부인 이춘자 씨와 딸(영민)과 아들(익현)과 함께 살고 있다.


박성자 부녀회장
박성자 부녀회장
부녀회원들 가정이 평안하고 좋은 일 많길

박성자 부녀회장은 친정 음성읍 평곡리에서 40여년전 남편 고제일 씨한테 시집왔다. 자녀로는 3남 1녀를 두었다.
남편이 작고하여 현재 막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는 “모든 걸 다 믿고 잘 협조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부녀회원들 가정이 다 평안하고, 좋은 소식 많이 있길 바란다”고 부녀회원들에게 말했다.



고홍식 솟대장인
고홍식 솟대장인
솟대작업에 열의와 관심 대단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목재 작업 중이던 고홍식 씨. 그는 마을 전통과 대소사에 해박해 주민들에게 자문해주는 마을 어른이다. 몸은 불편하지만, 주민들로부터 '솟대 장인'이라 불릴 정도로 근래 들어 솟대작업에 열의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2년간 겨울철이면 주민들은 그를 중심으로 솟대를 만들었던 것. 그는 면지 출간에도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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