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양덕3리 덕다리 마을
삼성 양덕3리 덕다리 마을
  • 김진수
  • 승인 2011.02.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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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주민들 인심, 풍물 전통에 푹 익은 마을을 찾아


삼성면 소재지에서 583번 도로를 따라 경기도 일죽방향 서쪽으로 2km 가다보면 양덕 저수지를 만난다. 저수지 둑 위 북쪽엔 위풍당당하게 선 망이산이 충북을 굽어보며 지키고 있다. 동쪽으로 보면 저수지 건너편 산자락에 우아한 목조 기와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음성 향악당. 음성풍물의 자존심이 수면 위로 넘실거리는 것 같다. 음성 향악당 앞으론 삼성체육공원 공사가 한참 진행 중. 볼썽사납게 파헤쳐진 그 위로 머지않아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설 것을 즐겁게 상상해 본다. 다시 시선을 180도 돌려보자 북서쪽 대사리 고개를 넘어온 중부고속도로 차량들이 음성휴게소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남쪽을 향해 질주해가고 있다. 상행선 음성휴게소 위에는 석양이 숨을 돌리고 있다. 음성휴게소를 업은 산자락은 낚시바늘 같이 남쪽으로 늘어지며 70여 가구들을 감싸 안았다. 양덕저수지, 음성향악당, 삼성체육공원, 음성휴게소가 있는 마을. 기자가 이번에 취재할 마을이다. 바로 양덕 3리.

◈ 양덕3리, 덕다리 마을엔 뭐가?

양덕3리 남쪽엔 용성리, 서쪽으로 대사리, 북쪽으로는 용성리, 대정리가 동쪽에 이웃하고 있다. 양덕3리는 본래 충주군 지내면 지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교동, 양곡리, 대사동리를 병합했다. 이때 양곡의 '양'(良)자와 덕교의 '덕'(德)자를 따서 양덕리라 이름짓고 삼성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자연부락별로 분구하면서 '덕다리 마을'을 중심으로 양덕3리가 되었다.
양덕3리 노인회관이 소재한 자연부락은 덕다리 마을. 한자어로는 덕교이다. 옛날에 이 마을에선 사람이 죽으면 묻지 않고, Y자형으로 나무를 세우고 시체를 얹어놓았었다. 그후 시체가 썩으면 뼈만 추스려 묻었다. 시체를 얹어놓은 Y자형 나무가 다리모양 같다고 해서 '덕다리'라 불려졌다고 삼성면지는 소개한다. 그런데 취재하는 기자에게 마을 주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주민들은 '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덕다리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 마을회관에 진열된 면민체육대회우승기와 상패들
▲ 마을회관에 진열된 면민체육대회우승기와 상패들
◈ 여덟 장사 얘기와 풍물의 전통 그대로

옛날부터 삼성지역엔 “덕다리 마을에서 힘자랑 하지 말고, 노래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덕다리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힘이 셌고, 풍물을 즐겼다는 말이다.
정우식 노인회장은 옛날 덕다리 마을에 여덟 장사가 있었다는 말을 전해줬다. 여덟 장사는 덕다리 마을 서남쪽 야산 끝자락에 있는 장수바위 끝을 칼로 잘랐다. 지금도 장수바위 남쪽 끝은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깍인 흔적이 남아 있다. 여덟 장사는 그후 현재 양덕저수지로 수몰된 곳에 있었던 멍석바위로 가서 오줌을 눴다. 정 노인회장도 어렸을 때, 저수지 공사가 있기 전에 이 멍석바위에서 놀며, 친구들과 함께 여덟 장사처럼 소변을 보기도 했었단다. 당시 멍석바위 주변엔 여덟 장사의 오줌 흔적인 것처럼 뚫린 구멍들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그 흔적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정 노인회장의 말과 표정 속에서 역력히 묻어났다. 이런 마을이라 그런지 지난 면민체육대회에서 양덕3리가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이라며, 주민들은 노인회관 우승기와 진열장에 가득한 트로피들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
또 이병림 이장은 자신이 어렸을 때, 마을 주민들이 풍물패를 조직해서 풍물과 농악을 즐겼다고 설명해줬다. 동네 큰 일이 있을 때나, 논밭 일을 할 때면 어김없이 풍물 장단에 맞춰 주민들이 흥을 돋우며 하나가 됐었다고. 이 전통이 마을에 음성 향악당을 유치하게 된 동력이 아닐까 기자는 생각했다.

◈ 효의 전통 이어받은 주민들, 곳곳에서 영향력 주고 있어
양덕3리는 현재 70여호 190여명 주민이 살고 있다. 노인회원은 대략 25명이고, 청장년들이 다른 농촌마을보다는 비교적 많은 편. 주민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점점 직장에 다니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실정. 무엇보다 마을엔 축산 가구가 3가구인데, 지난 겨울 전국적 피해가 컸던 구제역 피해가 이 마을에는 없다니 천만 다행이다. 그 외 인삼과 수박 농사를 짓는 가구는 2가구 정도. 나머지는 논밭농사이다.
정운영 효자문은 덕다리 마을 주민들의 또 다른 자랑꺼리이다. 정 공 외에도 주민들 가운데는 명망있는 인사가 다수 있다. 먼저 이병림 이장은 음성 향악당 대표이며, 문화예술 분야 음성군민대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다. 또 음성경찰서장을 역임한 이종복 씨를 비롯해 농학박사 이병승 씨와, 현재 청주대학교 교수로 있는 이병승 씨 조카가 덕다리 마을 출신이다. 또 현재 삼성면 체육회장인 원유호 씨도 양덕3리 이장을 비롯해 삼성지역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강춘자 부녀회장은 직장생활 가운데 가정과 마을 일에도 열심이라며 주민들은 칭찬한다.
취재를 마치며 기자는 감히 단언한다. 양덕3리 덕다리 마을에 가면 음성 향약당에서 흘러나오는 풍물 장단에 절로 어깨가 덩실덩실... 상경길 음성휴게소에서 잠시 숨 돌리는 게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양덕 저수지로 내려와 세월을 낚아도 좋으리... 또 머지않아 체육공원까지 들어서면 덕다리 주민들 힘자랑은 끝을 모르리...

우/리/동/네/사/람/들

주민들 손발되어 마을발전에 앞장서는 풍물인

이병림 이장
이병림 이장
덕다리 마을에서 5대 째 사는 이병림 양덕3리 이장. 1남1녀의 자녀는 다 출가하고 현재 부인 정복순 씨와 살고 있다. 논농사와 인삼농사를 짓고 있는 이 이장.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풍물을 접한 이 이장은 음성향악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기도. 마을을 위해 헌신했던 선친을 따라 이 이장은 주민들의 손발이 되어 마을과 지역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마을 유래의 산 증인, 유쾌한 입담 으뜸!

정우식 노인회장
정우식 노인회장
유쾌한 입담이 으뜸인 정우식 노인회장은 마을에 세워진 효자문 주인공 정운영 공 후손이다. 14대 째 덕다리 마을에서 살아오는 정 노인회장은 마을 유래의 산 증인이다. 그는 “모두 건강하고, 올해도 다들 일 잘해서 항상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고 노인회원들에게 인사했다. 정 노인회장 가족으로는 부인 안정임 여사, 자녀 2남4녀는 모두 출가했다.





차분한 성품, 온화하게 웃는 표정이 최고!

이석규 대동계장
이석규 대동계장
이석규 대동계장은 차분한 성품으로 표정이 참 온화하다. 이 대동계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객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향해, “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도 잘돼서 성공하길 빈다. 고향도 자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음성 삼생리가 친청인 부인 장종현 씨와 장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3남 2녀 자녀가 모두 출가했다.




인자한 덕다리 마을 주민들 모두 가족같아


이병훈 새마을지도자
이병훈 새마을지도자
대소 대풍리를 비롯한 음성지역 회사에서 근무하다 2년 전 퇴직한 이병훈 새마을지도자는 덕다리 마을로 이사왔다. 그의 가족은 부인 한동순 씨와 두 아들이다. “인자한 덕다리 마을 주민들이 가족같이 대해줘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 이사온지 얼마 안돼 새마을지도자 일을 맡았다. 잘 모르는 건 어른들과 상의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동/네/자/랑/거/리 장수바위 / 정운영 효자문

여덟장사의 기상 그리고 효자문 효심, 뿌듯~

여덟명의 장사가 칼로 바위를 잘랐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바위, 장수바위는 덕다리마을 서남쪽 끝 낮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는 수로사업을 하며 이 장수바위를 두 동강 내려고 직선수로를 건설하려고 했었다. 이에 덕다리 주민들은 힘을 모아 원형으로 수로를 돌리는 작업을 완성했다. 이렇게 장수바위를 지킬 수 있었다. 지금도 장수바위 앞 수로는 원형으로 돌려져 있다.

정운영 효자문 앞 간판에는 정 공 효자문 건립에 대한 내막이 적혀 있었다. 초계 정씨 운영 공은 1746년 덕다리 마을에서 오효 정국주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느날 정 공 부친께서 병에 걸려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기도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매일 밤 쾌차를 위해 기도를 드리기도 했던 정 공은 엄동설한에 장호원 청미천에서 잉어를 잡아 정성껏 달아드린 끝에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유림들이 상소를 올려 1843년 현종의 명에 의해 효자문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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