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면 내산1리 살천이 마을
대소면 내산1리 살천이 마을
  • 유재윤
  • 승인 2010.09.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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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와 전통을 중시하며 주민 모두 살 부대끼며 오손도손 사는 마을


▲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 하는 마을
우리들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한다. 미래를 생각하며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살지만, 내일을 맞아도 오늘과 다를 바 없이 또다시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찾던 행복이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멀리 있는 행복만을 바라보다가 지쳐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내마음속의 행복을 찾아 30여가구 60여명의 주민이 한가족처럼 살부대끼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김녕김씨의 집성촌 대소면 내산1리 살천이 마을이 오늘의 탐방마을이다.

▲ 마을형성유래
내산리는 충주군 사다산면의 지역으로 고종 광무 10년(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영산리, 미산리, 대죽리, 사산리 일부와 진천군 만승면 검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산리라 하여 대소면에 편입하였다.
내산리는 대소면 서남부에 위치 하여 동쪽으로 삼호리, 서쪽으로 진천군 광혜원면, 남쪽으로 진천군 이월면, 북쪽으로는 대풍리와 접하고 있으며 살천이, 큰죽골, 방울미, 미산등의 마을로 이루어 졌다.
살천이 마을은 내산리의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방울미 남쪽에 있으며 마을 뒤산을 모래가 많다 하여 사다산 이라 부른다.
살천이란 이름은 옛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이 마을에 들렀다 전쟁터로 가게 되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온다는 설과 마을에 절이 있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사(절)촌이라 불렸던 것이 와전되어 사촌, 살천이라고 불린다는 설이 있다.

▲ 모든 주민이 한가족
이곳 살천이 마을은 1960년대 만해도 90여가구가 모여사는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지금은 30여 가구 60여명의 주민이 모두 한 가족처럼 오손도손 모여 살고 있다. 현재의 모든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 이곳 살천이 마을도 가장 젊은 사람이 47세이고 5~6명의 50대를 제외하고는 전부 6~70대의 고령화 마을이다.

▲ 사통팔달의 교통요지
이곳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와 밭농사를 위주로 생활 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대소의 특산물인 수박농사를 짓고 있다.
김형규 이장에 따르면 “우리 마을은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 하고 있으며, 특히 쌀 작목반 에서는 해마다 우렁이 농법을 이용한 친환경 농사로 품질 좋은 쌀을 생산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며“광혜원저수지, 백곡저수지에서 흘러 오는 풍부한 농업용수로 인해 해마다 모든 농사에 있어 대풍작을 이루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김 이장은 또 “평택~충주간 고속도로의 북진천 I.C개통과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 또 이번 추석 무렵 개통될 37번 국도 내산 인터체인지가 개통되면 내산1리야 말로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에 주민들의 화합과 협동정신이 함께 어우러지는 전국 최고의 살기 좋은 마을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12년간(6년 재임하고 4년 쉬었다 다시6년 봉직)마을 이장 일을 보았다는 김창규 전 이장(현 대소농협 조합장)은 “내산1리야 말로 전 주민이 잘 화합하고 단합하여 살기 좋은 마을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며 “1978년 마을회관 건립당시 마을 주민 100여명이 손수 벽돌을 쌓아가며 회관을 지었듯이 협동심과 주민간의 인정이 전국 최고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 주민건강 책임지는 내산보건진료소
마을의 인정과 함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곳이 내산보건진료소(소장 피순옥)다. 내산진료소는 2006년 마을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부지를 마련 하여 2007년 7월 완공, 마을 주민 자체적으로 운영 하고 있으며 1주일에 3번 인근 마을(내산 1.2,3,리,상우리) 노인분들이 모여 건강체조를 실시 하고 있으며 친목, 화합, 건강유지의 장으로 활용 하고 있다.
김형규 이장은 “소장님의 활력이 대단하다” 며 “진료소 덕을 참 많이 보지요. 주민들이 다들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여기저기 많이 아프잖아요? 이틀 일하고 하루 물리치료 받고, 다시 일하고…. 내산진료소가 주민건강의 파수꾼 입니다”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진료소가 마을의 중심이 된 지 오래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진료소 없는 내산1리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민들이 진료소에서 받는 의료서비스는 고혈압이나 당뇨 관리, 물리치료, 건강진단 등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진료소는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계절 관계없이 진료소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정보를 나눈다.

▲ 예와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

내산1리는 주민의 65%가 김녕 김씨로 김녕김씨 집성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매년 10월 보름이면 마을 주민과 출향인 50여분이 모여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시제를 지내며 조상에 대한 예절과 전통을 살리고 효를 중요시 하는 마을로 정통이 나있다.
특히 2005년 12월에는 노인회장과 회원들이 일치단결 하여 전통예절을 계승 발전시키는 모범마을로 경로당이 군지회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노인건강체조발표회 에서도 1등을 수상 하는 한편 올해 5월에는 대소파출소와 1사1촌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이렇듯 대소면 내산1리는 전통을 중시하고 효와 예를 존중하며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발돋움 하려 노력하는 중부권 최고의 마을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우 / 리 / 동 / 네 / 사 / 람 / 들


김형규  이장
김형규 이장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안정적 판로 개척시급”


평소 마을 일에 적극 참여하고 협조해주는 주민여러분께 감사드리며 해마다 농사는 대풍인데 농산물 판로에 어려움이 많아 걱정이다.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원활하게 판매 할 수 있는 판로가 개척 되어 주민들이 안정속에서 농업에 전념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마을회관이 오래 되어 현대식 구조를 갖춘 마을 회관을 신축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명권 노인회장
김명권 노인회장
“주민화합과 노인복지에 전념할 것”


남자15명,여자19명으로 구성 되어 있는 노인회를 화합으로 잘 이끌어 오고 있는 김명권 노인회장은 무엇보다도 주민의 화합과 단결이 우선이라며 김형규 이장과 구본석 부녀회장이 마을의 대소사를 가정사처럼 돌보고 있고 노인들의 복지 향상에도 힘을 쓰고 있어 항상 든든하다며 마을 주민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정자를 세워줬으면 한다는 바램을 피력 했다.



구본석 부녀회장
구본석 부녀회장
“주민 모두가 한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내길 …”


부녀회원 모두의 협조와 단결속에 마을이 나날이 발전 하고 있어 늘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여 마을 주민 모두가 화목하게 한가족처럼 지내는 그런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부녀회와 마을 발전을 위해 더욱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김한권 새마을 지도자
김한권 새마을 지도자
“마을 발전을 위해 최선 다할 것”


마을 주민들 모두 건강하고 지금처럼 항상 화목하게 지내며 이웃간에 정이 넘치는 마을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분들이 마을의 대소사에 항상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마을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김창규 전 이장(현 대소농협 조합장)
김창규 전 이장(현 대소농협 조합장)
“주민과 힘 합쳐 전국제일의 살기좋은 마을 만들 것”


주민 모두가 이장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마을 대소사는 물론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 하고 있는 모습에서 내산 1리의 밝은 미래가 엿보입니다.
그동안 내산 1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을 주민들의 협조와 노력 덕분으로 오늘의 우리 마을이 존재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주민 모두가 힘을 합쳐 전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주실것을 당부드립니다.



우 / 리 / 동 / 네 / 유 / 적 / 지 - 김녕김씨 충의공파 숭모재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의성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김녕(金寧)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고려말에 지명이,김해로 개칭되자 김해로 부르게 되었다.
수로왕계통의 김해 김씨와 혼돈되므로 김해 김씨(金海金氏)를 선김(先金)으로,김녕 김씨(金寧金氏)는 후김(後金)으로 칭하다가 1865년(고종) 왕명에 의하여 김녕(金寧)으로 확정 하였다.
내산1리에 있는 숭모재는 김녕김씨 충의공파의 시조를 모시는 재로서 매년 10월 보름 종친이 모여 숭모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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