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완 음성군의회 의장
정태완 음성군의회 의장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0.07.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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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 Talk! 열세번째 손님


지난 6일, 음성군의회 의장선거에서 5표를 득표하며 의장으로서의 당당한 걸음을 내디딘 정태완 음성군의회 의장. 초선에 이어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가 지난 4년간 군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의욕적인 의정활동을 해 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만큼 정태완 의장에 대한 군민들의 기대가 클 터였다.
다양한 부류의 손님을 취중토크에 초대해 매번 비슷한 질문을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늘 어떤 기대감을 갖고 취중토크에 임하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오늘 초대 손님은 초선에 부의장을, 재선에는 당당히 의장을 거머쥔 거물이 아닌가? 호기롭게 식당에 들어서는 정 의장에게서는 벌써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Q 우선 의장직에 선출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초선인 5대에는 부의장을 역임하셨고, 재선에 성공하셔서 의장까지 맡으셨는데 그만큼 군민들이나 동료 의원들에게나 인정을 받고 계신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A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5대 때에도 그랬지만 6대 역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늘 처음처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Q 지난 6·2 지방선거는 사상 유래 없이 후보자가 난립하는 상황이 연출됐었는데요, 선거운동 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A 본 선거를 한 달여 쯤 앞두고 갑자기 배가 아프더라구요. 한참 바쁠 때라 아침 일찍 공복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고 술자리도 잦아져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었는데 다음날이 되니 고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병원엘 갔습니다. 아 그랬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맹장염이라지 않습니까? 나이가 있어서 그런 건 전혀 생각 안하고 살았는데 말이에요. 어쨌거나 수술하고 회복돼서 선거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오히려 선거운동 기간 전에 입원해서 다행이라고들 했어요.

Q 선거를 한 달 남겨두고 미리 액땜을 하신 거네요. 그래도 많이 불안하셨을텐데.
A 걱정 많이 되더라구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땐 늘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Q 유년시절은 어떠셨나요?
A 저는 5형제 중 넷째로 자랐습니다. 어려서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큰 어려움은 몰랐습니다. 음성단위농협 자리가 저희 집이었거든요. 그 집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 아버님이 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예민한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어린 나이에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그럼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정치를 꿈꾸셨나요?
A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나마 크게 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검찰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 번 해 봤구요. 물론 어머님은 성직자를 원하셨지만요.

Q 성직자요?

A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어머님을 따라 성당엘 나갔거든요. 그리고 복사를 맡았었구요. 어머님이 보시기에는 제가 어려서부터 신앙도 깊어 보이고 성격도 내성적이니 신부님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오히려 큰형님이나 작은 형님이 성품이나 신앙심 면에서 훨씬 성직자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님도 많은 생각을 하신 다음에 저에게 하신 말씀이셨을텐데 너무 죄송했습니다.

Q 어머님이 생각하시기엔 그만큼 착하고 순수한 아들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A 그러셨겠죠. 하지만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저는 그리 착하기만 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밖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청소년이었을 뿐입니다. 어머님이 모르셨을 뿐이지요. 집안이나 성당에서는 늘 얌전한 모습만 보셨으니까요. 하지만 제 자신이 성직자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님께 신학대에는 못 가겠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다닐 때 잘 어울리는 선배 두 분과 친구 둘이 있었어요. 이른 바 음성성당 5인방이라고 해서 정말 친형제 이상으로 지냈습니다. 이제 와서야 하는 이야깁니다만 사실 중학교 때 호기심으로 선배들과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어요. 가장 많은 시간을 만나고, 생각을 나누며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선배님들과 친구들이 지금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성직자로, 또 교직자로 이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Q 의장님 역시 지역사회에서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시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A 지금 생각하면 경험도 없이 참 무모하게 의욕만 가지고 일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대 후 제약회사와 잠깐 인연을 맺었었는데 의약품 대리점을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충북에서 경쟁력 있는 의약품 대리점이 청주와 충주 두 곳 밖에 없었거든요. 일단 일을 벌이긴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의욕만 넘쳤지 경험이 없다 보니 시장을 보는 눈도 없었고, 영업도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생애 처음 맛본 실패였지요.

Q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해 보고 싶었다고는 하나 정말 일찍 시작하셨네요. 그럼 의약품 사업에 실패하시고 난 다음엔 어떻게 지내셨나요?

A 당시는 국내 경기가 활황일 때였어요. 이런 저런 사업구상을 하다가 후배 소개로 냉동창고사업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때 막 어묵이나 맛살 같은 냉장·냉동식품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어요. 더불어 대형 냉장·냉동 창고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거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무작정 후배들과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수산물 유통이 많은 일본의 경우 그 쪽으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했거든요. 후쿠오카를 시작으로 나고야, 오사카, 도쿄까지 바닷가에 자리잡은 냉동창고시설을 훑고 올라왔습니다. 이거면 무조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뒤에 찾아올 고난의 시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Q 고난의 시간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 사업도 실패하신 건가요?
A 그 때가 3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사업 실패 후 후유증이 너무도 오래토록 지속됐습니다. 그 여파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이어져 왔으니까요. 너무도 어렵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Q 저도 취중토크 자리에 여러분을 모셔 봤지만 늘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성공하신 분들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순탄하게 사신 분들이 거의 없으시더군요. 중요한 건 집념을 가지고 그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성공했다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A 젊은 나이에 사업에 실패하고 방황하던 기간이 너무 길었어요. 이전에 활동하던 JC나 BBS 등도 활동을 다 접고 의기소침해 있었지요. 다른 사람의 이목도 있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입었습니다.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Q 지인들과의 인연도 다 끊고 지내셨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는데 의장님을 다시 밖으로 끌어내 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면 오히려 나 자신이 더 고립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사업에 실패한 것이 저에게 악의가 있어 저지른 고의도 아니었고, 내가 남에게 못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혼자서 방황했던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내가 더 열심히 일해 보답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겁니다. 그래서 단체 활동에 다시 참여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과감히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해요.

Q 단체 활동이라면 JC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A JC가 시작이었어요. 예전에는 JC에 입회하려면 조건이 까다로웠습니다. 회원 전원이 찬성을 해야 입회가 가능했지요. 그 해 신청자 중에 저만 유일하게 100%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JC 회원들 대부분이 BBS 회원으로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맺은 인연이니 선배나 동기, 후배들이 아직까지는 저에 대한 신뢰가 깨지지 않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거지요.

Q 다시 단체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정치적인 목적은 없으셨나요?
A 정치적인 목적이라뇨. 저는 선배님들이나 친구들에게 늘 절대로 정치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국회의원이 됐든, 도의원이 됐든, 군의원이 됐든 정치인이 은퇴 후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본인 스스로 군민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질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본인만 힘들어질 뿐입니다.

Q 그럼 언제부터 정치에 뜻을 두셨나요?
A 처음부터 정치에 뜻을 두지는 않았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남들을 말렸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세상에 나와 단체 활동을 시작하고 음성 중·고교 총동문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음성경찰서 행정발전위원회 간사를 보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탁구는 중학교 때 선수로 활동한 인연이 있어서 지금까지 온 것이고. 아무튼 그분들을 곁에서 모시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Q 남들이 하겠다는 것도 다 말리셨는데 정작 본인은 정계에 입문을 하셨어요. 갑자기 생각이 바뀌게 된 동기가 있으십니까?
A 좀 전에 말씀드렸듯 소위 정치를 하셨다는 분들이 정치를 그만두시면 지역에서 어른 노릇을 해 주시길 바랐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지금 음성군에는 분열된 지역을 아우르고 화합으로 이끌만한 어른이 많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가 활동하면서도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입니다만 어떻게든, 또 누가 하든 우리 지역을 화합과 소통으로 묵은 갈등을 해소시키고 음성군의 거시적인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누군가는 앞장서서 일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지속적으로 해 주셨구요.

Q 아까도 동문회나 행정발전위원회 일을 하시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 하셨는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신다면요?
A 충북도의회 의장을 역임하신 차주원 회장님을 존경합니다. 그 분은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고향을 사랑하고 사심 없이 고향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분입니다. 우리 후배들이 이런 분의 뒤를 이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분,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와 함께 해 주셨고 지금도 존경받는 성직자이신 청주교구의 장봉훈 주교님이십니다. 저에게는 일곱 살 많은 선배님이지만 심적으로는 훨씬 더 높게 느껴지는 분이지요. 그만큼 저에게는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 사람의 소중함, 어른의 소중함을 더욱 더 느끼게 됩니다.

Q 지난 4년간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일일까요?
A 초선 때 처음 일 년 동안은 의회에서 허겁지겁 업무를 파악하기 바빴습니다. 일 년쯤 지나니 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지역 현안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걸 해결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지역에서 단체활동을 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보람이라면 많이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 기억나는 것은 음성읍 소도읍 육성사업 추진입니다. 당시 옥천이 우리 음성보다 상위에 있었어요. 음성군에서도 이미 끝났다는 분위기였구요. 가만 생각해 보니 도저히 안되겠어요. 이리저리 알아보니 음성군에 있던 박영수 사무관이 이 사업단에 있더라구요. 어렵게 약속을 하고는 박희남 의장을 모시고 바로 올라갔습니다. 게다가 김종률 前 의원까지 가세하니 중앙에서도 이렇게 지역에서 호흡을 맞춰 일해주니 고맙다는 말을 하더군요. 여러분들 덕에 사업을 따올 수 있었습니다.

Q 다른 정치인들 같으면 무조건 내 공으로 돌릴텐데 역시 의장님은 다르시네요. 이제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4년간 의회를 이끌어 가셔야 할 텐데 의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회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A 개원 시에도 말씀드렸지만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군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의회상을 마련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군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이고 친화적인 의정활동을 펼쳐나가는데 주력하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방자치시대를 확고히 정착시키며 당면한 현안사업들을 위해 자치역량을 결집시키는 한편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협조 기능에 소홀함이 없이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철저한 봉사정신을 통한 지역 발전을 이끌어 군민들에게 신뢰받는 의회가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Q 제6대 음성군의회 의장으로서 음성군민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A 한나라당 군수, 민주당 군의장. 이상적인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당리당략을 떠나 집행부와 의회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감시·견제하는 역할에 충실하는 의회의 참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의정 운영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군민의 생각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는 군민이 원하는 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이제껏 제가 음성군민 여러분께 드렸던 그 많은 약속들, 반드시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석에서의 첫 대면이지만 군민들이, 또한 동료 의원들이 정태완 의장을 다시 선택한 연유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막 50대 중반을 넘긴 재선 의원은 자신의 직위와는 상관없이 타고난 겸손함과 그루터기처럼 우직한 첫인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며 세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남자로서의 매력이 충분했다. 본시 사람을 꺼려하지 않는 정 의장의 화통한 성격 탓인지 호탕한 웃음과 힘 있게 부딪치는 술잔에 어느덧 밤이 한참 깊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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