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동면 통동리 중리마을
맹동면 통동리 중리마을
  • 김진수
  • 승인 2010.04.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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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후진 양성의 전통을 지키며 모든 게 통하는 주민들의 화목한 세상”

맹동면 동남부에 위치하는 마을, 동쪽으론 원남 삼용리, 서쪽으로 진천 덕산과 남쪽으로 초평면, 북쪽으로 군자리와 접하고 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 100년 넘게 마을 장학회를 운영하며 후진양성에 매진하는 마을. 바로 맹동면 통동리이다. 기자는 맹동면 장학 운영회를 하는 통동리, 중리 노인회관을 찾아갔다.

▣ 효도. 공경. 충성 그리고 믿음을 나누며 살아가
맹동면 소재지 쌍정리에서 진천 덕산방향 21번 도로 6km 정도, 신동3거리가 있다. 여기서 원남 방향 515번 도로로 접어들면 곧 충북 혁신도시인 중부 신도시 예정부지를 맞는다. 중부 신도시의 기대를 부풀리며 솔터고개를 넘으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마을을 만나는데, 바로 '통동리 창리마을'이다.

창리마을 입구엔 “효도(孝), 공경(悌), 충성(忠), 믿음(信)”이라는 문구 아래 마을현황을 소개하는 마을자랑비가 지키고 있다. 마을자랑비 사이로 30m 정도 들어가면 완공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붉은 벽돌의 창리 노인회관이 마을 어르신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창리 노인회관 앞, 마을 한복판에는 꽃동네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창리마을 앞을 지나는 개천은 통동저수지에서 흘러내려, 100m를 더 흘러 산 아래 늘어선 중리마을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듯 하다. 바로 중리 마을. 중리마을에 눈에 띄는 건 단연 400년 정도 수령의 마을 보호수. 보호수는 정자를 무릎에 앉혀 놓고, 그 뒤론 역시 신축한 듯 중리 노인회관이 말끔하게 단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통동리는 2개 자연부락에 각각 노인회관을 갖고 있는 셈이다.

▣ 숨겨진 사연들 마을 곳곳마다 베어나
통동리는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통처럼 생겨서 '통골' 또는 '통동(通洞)'이라 불려졌었다. 그런데 고종 광무 10년(1906)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4개 자연부락을 병합하여 통동리(通洞里)가 되었다. 통동리를 구성했던 4개 자연부락을 보면 새터, 즉 신기부락과 창리(倉里), 중리(中里), 천곡(泉谷) 즉 샘골이다. 새터, 즉 신기(新基)부락은 창리 동북쪽에 위치, '새로 된 마을'이란 뜻이었는데, 1979년 국토건설계획 일환 미호천 개발사업에 의해 당시 국내 최대의 저수지로서 통동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고 말았다. 신기부락 40여 가구는 본의 아니게 이주해야 했고, 그에 따라 이농현상이 생기고 말았다. 샘골(泉谷)은 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약수가 있었다고 한다. 달랑 4가구가 있다. 통동리 중간 마을이 중리(中里)이며, 창리(倉里)는 새터 서남쪽에 있는 큰 마을로써 옛날에는 군량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통동리는 곳곳에 아름다운 이름과 함께 절묘한 산세가 펼쳐져 있다. 칼로 깍은 듯이 절벽이 된 산 깍은뎅이, 납작한 산 납작날, 기름찬날, 서산 바래기, 신세 텟날, 산 모양이 노적가리처럼 생긴 노적봉(露積峯), 옛날 난리가 났을 때 피난했던 살테(해발 200m), 시루처럼 생긴 시루봉, 나무가 없어 발가벗은 것 같은 알봉이 있다. 산이 많으면 고개도 많은 법, 또 새터에서 원남 삼용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도마재(倒馬재)라 하는데, 옛날 통동리에 군량창고가 있어 통행이 많았을 때, 여기서 말이 굴렀다는 말이 있다. 또 알랑재는 중리마을에서 초평면 영구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리키는데 소나무가 울창하여 경치가 좋다. 그 외 말장이 고개도 있다. 산과 산 사이를 잇는 골짜기로는 가락골. 갈골. 도척골. 살테골. 솔테골. 신병골. 알랑골. 암소골. 자작골 등이 있으며, 옛날 효자 김순 공이 3년간 시묘한 시묘골이 있기도 하다. 눈을 사로잡는 바위로는 벼락바위, 엉덩바위가 있고, 통동저수지에 수몰된 옻샘이 옛 기억을 자극하고, 통동리 일대 야산에 있는 제비돌은 온돌방 구들용으로 많이 썼다고 주민들은 옛 기억을 더듬고 있다.

▣ 100여년 장학회 운영하며 후진양성 전통 이어가
뭐니뭐니해도 통동리 주민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을 전통은 통동리 장학회이다. 장학회는 1910년 마을 주민들 중심으로 향학과 후진양성에 뜻을 두고 강계를 조직하고, 강당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강당은 1946년 맹동국민학교 통동분교로 인가받았고, 1960년에 통동국민학교로 승격했었다. 그러나 통동저수지 축조로 신기 부락 40여 가구가 이주하고, 이농현상으로 학생수가 줄면서 다시 분교로, 1993년에 아쉬움속에 폐교, 지금은 야영장으로 활용한다. 한편 주민들은 점차 강계 재원을 증식해,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장학금을 지급하며 인재양성에 매진해오다가 1958년 명칭을 '통동리장학회'라 바꿔 현재까지 계승 운영해오고 있다. 비록 학교는 폐교됐지만 이 학교 졸업생이나 장학회를 통해 자라난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여 국회의원. 장.차관 등 각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일꾼이 됐다고 손현수 장학회장은 자랑한다.

손수종 전 맹동면장은 “통동리는 군내 보기드문 청정마을이다. 인심좋고 단합이 잘되어 인근에 광역쓰레기처리장 유치에 합의할 정도로 관대하고 주민들 아량이 넓다. 48가구 100여명의 단일 부락으로 장학회를 운영하여 100여년 가까이 후진을 양성하는 자랑스런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 어르신 공경에 최선을 다하는 전통
마을 행사로는 매년 12월 30일 대동계를 하고 있으며, 정월대보름에는 윷놀이를 하고 있다. 대동계로 양식계를 할 때는 군자리 주민과 함께 하고 있다. 중리 노인회 어르신들은 매년 여름철마다 삼계탕으로 건강을 다지며 더위를 쫓고 있다. 통동리 주민들도 여느 맹동 마을과 다름없이 10년 전부터 수박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 수박 작목반 회원이 9가구에서 6가구로 줄어드는 바람에 품앗이가 쉽지 않다고 손현수 장학회장은 고충을 얘기했다.

통동리 대중교통 상황은 하루 12회 정도 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모두 덕산,진천 방면이어서 주민들 생활권이 덕산.진천이 될 수밖에 없다는 통동리 주민들. 그들은 면소재지인 맹동이나 금왕 혹은 원남 방향 버스노선이 생기길 희망한다.

앞으로 중리마을 앞 하천을 도에서 지원받아 정비할 계획을 갖고 있는 정용수 이장. 통동재에 들어선 광역폐기물 처리시설이 동네에 직접적인 피해나 어려움은 없으나, 동네 앞으로 쓰레기 차량이 지나가므로 냄새가 나고, 파리가 생기는 게 조금 불편하다고 말했다.

통동리는 중리마을과 창리마을에 각각 최신식 노인회관을 건립하여 어르신 공경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침 통동리 장학회에 인사차 들른 꽃동네 복지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수녀 모 씨는 인사한다. “장학회를 운영하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통동리 주민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도 주민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 우 / 리 / 동 / 네 / 자 / 랑 / 거 / 리/

김순 효자문(군 향토 문화유적 제10호)

◀ 이 문은 김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고종 20년 (1883)에 정려를 받아 건립한 효자문이다. 1983년 통동저수지 축조 공사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맛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김순은 자(字)가 여균(汝均). 호는 정암(精庵).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순 공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친상을 당해 묘소를 집 앞산에 모시고, 매일 풍설(風雪)을 무릅쓰고 3년 시묘를 하였다. 3년 시묘하는 동안 일곱 손가락이 동상으로 상하니, 세인(世人)이 칠지지효(七指之孝)라 칭하였다. 이런 효행으로 명정(命旌) 되었다. 현판에는 효자증동몽교관 조봉대부 사헌부감찰 경주김순지려 (孝子贈童蒙敎官 朝奉大夫 司憲府監察 慶州金瞬之閭)라 쓰여 있다.

통동리장학회 서류 3권

▶ 1910년 조직된 강계로부터 1958년 통동리장학회로 개명하여 지금까지의 장학회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3권의 책자들이다. 비록 통동리장학회 이전의 기록들을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통동리장학회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현재 손현수 장학회장과 정용수 이장이 보관하고 있다.


/우/리/마/을/사/람/들/


정용수  통동리 이장
정용수 통동리 이장
“주민들 모두 건강하고 집집마다 좋은 일만 있기를…”

“주민들이 모두 건강하고, 아프지 말고 집집마다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용수 이장은 신기부락에 태어나 33년전 저수지가 들어서며 마을이 수몰되자 중리마을로 이사나왔다. 정 이장은 중리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부인 임성순 씨 사이에 5남매의 자녀를 출가시킨 든든한 가장이다.







김진도 중리 노인회장
김진도 중리 노인회장
“건강한 몸으로 서로 도와가며 삽시다.”

6년전 폐암에 걸렸으나, 쾌차하여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 노인회장, 중리 반장을 맡은 것에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봉사하며 산다는 김진도 중리 노인회장. 29명의 노인회원들에게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건강한 몸으로 서로서로 도와가며 삽시다”라고 인사하는 김노인회장은 꽃동네장애인학교에서 일하는 부인과 1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함순종 부녀회장
함순종 부녀회장
“부녀회 일에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함순종 부녀회장은 통동리가 청정지역이라 공기 맑고 물도 좋다. 그래서 주민들 모두 건강하고 인심도 좋다고 자랑한다. “부녀회원 50여명이 있는데, 연세드신 회원들은 특히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고, 부녀회 일에 열심히 협조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손현수 통동리 장학회장
손현수 통동리 장학회장
“중리 학생들이 마을을 기억하고 반듯한 사회의 일꾼이 되어 주었으면.”

손현수 통동리 장학회장은 양친을 모시며 살고 있는 효자다. 부녀회장인 함순종 씨와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손 장학회장. 그는 5대째 중리마을에서 살아오는 통동리 중리 토박이다. “2남 1녀의 자녀들과 동네 출신 학생들에게 마을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 건강한 몸과 반듯한 생각으로 사회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라”고 손 장학회장은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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