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극면 신양4리, 다롱개마을
생극면 신양4리, 다롱개마을
  • 김진수
  • 승인 2010.03.1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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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고 여유있는 삶의 꿈, 해마다 사랑의 불꽃으로 수놓아”



“목덜미에 3번 국도라는 편리와 이기의 욕망을 멍에로 메고 있구나
메말라 붙어가는 남한강 끄트머리 다롱포의 퇴적된 전설은 땅속에 발끝으로 묻어놓고
옆구리에서 들려오는 평화로운 예배당 종소리에 잠들고 깨어나는 사람들
물금농사를 지으며, 된장공장을 돌리며 애증과 덜컥거리는 파열음 몽조리
껄껄껄 너털웃음으로 털어내는 사람들이 산다”

--기자의 졸시, '신양리 사람들' 중에서--


생극초등학교 골목에서 기자는 참 재미있는 분을 만났다. 부리부리한 눈, 검은 피부와 짧은 머리. 덮썩 내미는 두툼한 손을 잡으며 기자는 그가 마을 이장이라는 사실과 기자도 생소한 울금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자는 곧 그가 사는 마을을 찾게 되었다. 다름 아닌 신양4리. 그리고 그 주인공은 원광식 이장이다.

신양4리 마을회관에서 들려주는 다롱개마을 주민들의 구수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쁨을 기자는 음미해보려고 한다.

▣ 옛 다롱포의 번성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
신양4리는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 신창리, 양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양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그후 인구가 1,600명이 넘어서면서 분구하여 다롱개(혹은 다롱포)마을을 중심으로 신양4리가 분구하게 됐다. 현재 신양4리는 60여 가구 200여명 주민이 살고 있다. 신양(新陽)이란 지명은 신평(新坪)의 '신(新)'자와 양곤(陽昆)의 '양(陽)'자를 따서 불리게 되었다.

신양4리 다롱개마을 앞으로는 오생리에서 감곡까지 이어진 3번 국도가 가로지르고 있다. 또 마을 뒤편으로도 몇 년전 개통한 4차선 외곽도로가 충주 주덕에서부터 경기도 장호원까지 시원스럽게 뻗어있다. 또한 응천이 흘러가는 마을 앞 발치에는 옛날 남한강 줄기를 따라 배가 들어왔던 중부내륙의 마지막 포구인 '다롱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앞 포구가 있었다는 자리를 파보면 포구의 흔적과 고운 모래층이 발견되곤 한다고 원 이장은 설명했다. 포구가 있었다면 옛날 다롱개마을도 참 번성했겠구나 기자는 생각했다.
신양4리 주민들은 과거에 벼농사를 주로 지었지만, 이젠 고추, 수박, 참외 등을 재배하는 주민들이 많아졌으며, 그 외 울금과 같은 특수작물을 재배하거나 인근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민들 화목한 웃음꽃 만발
마을에 소재한 신양감리교회 교인인 이정학 개발위원장은 “신양4리는 기독교신앙의 전통과 사랑이 넘치는 마을이다. 대대로 신양4리 주민들은 종교성이 강하며, 교육열이 높고, 대체로 순진하고 솔직하다”고 자랑한다. 근대교육이 미비하던 시절, 신양감리교회에서 행한 교회교육 영향으로 마을엔 유난히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다른 마을에 비해 마을 출신 인사들 가운데 교육 및 공무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신양4리 출신 인사로서 김해열 노인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성동현 선생을 소개했다. 성동현 선생은 생극을 비롯한 관내지역에서 교직에 있으며 마을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다. 특히 성 선생은 생극초등학교 교가를 직접 작사.작곡하였다. 또한 지난해 명예퇴직한 이장해 전 군감사실장도 신양4리 출신이다. 주민 가운데 노건일 씨는 충북도지사상을 받았다고 주민들은 칭찬했다.

무엇보다 신양4리는 전통 농촌마을에서 최근 마을 한복판에 빌라가 들어서며 외부 주민들이 많이 이사와서 살고 있다. 종종 이주민과 토착민간 갈등도 있을 법한데, 신양4리는 토착민과 이주한 주민들이 서로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화목한 마을로서 주변 마을에도 소문이 자자하다. 젊은이가 어르신들을 잘 봉양하고, 서로 양보하고 사랑이 가득한 마을 신양4리. 김 노인회장은 해마다 설 명절이면 생활관에서 단체로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며 예절교육을 받고 있다고 소개해줬다.

마을 인근에는 문화유적으로 임진왜란 공신인 장충범 장군의 충신비도 있다.

▣ 사랑의 마을 행사로 마을발전 계기 마련해가고
신양4리는 매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부터 일요일, 1박2일간 '사랑의 날' 행사를 갖고 있다. 이 행사엔 다롱개마을에 1년이라도 살았던 주민들은 모두 초청해서 잔치를 벌이는데, 작년에 5회째가 되었다. 특히 다른 마을 같은 경우 하루에 마치는 경우가 많지만, 신양4리는 하룻밤을 주민들과 신양4리에서 함께 하며, 오랜만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불꽃놀이 등 야간행사를 즐기고 있다. 아마 단위 부락 행사로는 군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가 아닐까 말하는 원 이장의 모습에서 사랑의 날 행사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행사를 위해서 마을 주민들은 스폰서를 구하고, 1년 동안 각종 행사에 음식을 제공하여 그 이익금으로 단결해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이 외에도 경로당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는데 열성을 보이는 신양4리. 매년 월말엔 대동계를 하고, 정월대보름날엔 윷놀이를 하고 있다는 신양4리 주민들. 김장을 넉넉히 담궈서 경로당 어르신들이 1년 내내 점심식사를 드실 수 있도록 꼼꼼히 챙기는 주민들. 이런 주민들 한 분 한 분을 가족일처럼 챙겨주는 정혜은 복지담당자에게 원 이장을 비롯하여 주민들은 감사하고 있다. 이에 생극면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 정혜은 씨는 “신양4리는 비록 작은 규모의 마을이지만 이웃끼리 서로 돕고,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잘 챙겨주신다”고 칭찬했다.

다만 마을 앞을 지나는 3번 국도에서 사고가 많은 게 주민들의 걱정꺼리다. 도로에 건널목과 함께 제한속도를 표시하고, 방지턱을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원 이장은 관계기관에 호소한다. 그리고 마을 앞 농지 배수구 180m 가량의 정비사업 진행이 안되고 있다. 이를 연계해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원 이장은 또한 팔성교부터 차평교까지 마을 앞 둑방 구간에 나무를 심어 공원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털털한 웃음으로 주민들을 하나로 모아가는 원 이장과 마을 주민들의 끈끈한 신뢰와 사랑을 확인하며, 신양리 사람들이란 시로 다롱개마을 사람들을 노래하며 신양4리를 나온다.


/우/리/마/을/사/람/들/


“ 주민들의 건강과 화합을 위해 노력할 것 ”

“마을 발전을 위해 먼저 주민들 화합이 최우선입니다” 울금 농장을 운영하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울금농사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원광식 이장. 울금농사에서 기자재 수입 및 자체 생산이 가능한 기계화를 이뤄 모범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그. 그 누구보다 신양4리를 사랑하며, 주민들의 건강과 화합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김해열 노인회장
김해열 노인회장

“ 지금처럼 건강하고 평안하게 ”

김해열 노인회장은 팔성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가 신양4리로 이사와 30년 넘게 살고 있다. 부인 박태자 씨와 건강하게 살고 있는 김 노인회장은 34명의 노인회원들에게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낸 것처럼 앞으로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이은희 부녀회장
이은희 부녀회장
“ 집집마다 부자 됐으면 ”

서울이 고향인 이은희 부녀회장은 7~8년전 신양4리가 좋아서 이사와 살고 있다.
26명의 부녀회원들에게 “단합 잘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앞으로 더 건강하고 집집마다 부자됐으면 좋겠다”고 환한 웃음과 함께 부탁했다.





임종옥 새마을지도자
임종옥 새마을지도자
“ 예의범절교육 시켜주는 마을 어른들께 감사 ”

충주 태생으로 6살 때 신양4리로 이사온 임종옥 새마을지도자. 아버님과 부인(이연옥), 그리고 1남1녀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임 새마을지도자. “어르신들이 농번기 바쁠 때나 한가할 때도 한결같이 한 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마을 어린이들에게 예의범절 교육을 시켜주시는 마을 어른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학 개발위원장
이정학 개발위원장
“ 마을 발전과 화합위해 힘 모을터 ”

신양4리 다롱개 마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한 이정학 개발위원장. 10년 전 IMF때 귀향하여 된장제조사업을 하고 있는 이 개발위원장은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며 돈독한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마을 발전과 화합을 위해 이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동네 가볼만한 곳

“임란공신 장충범 장군기념비”

장충범은 선조30년(1597)의 충신 자는 효칙 본관은 단양. 생원 언구의 아들로 음보로 군자감주부를 지냈다. 선조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하고 향리인 삼생리에 와서 치료했다. 선조30년(1597)에 창의 현 생극면 생리 구진터에서 왜병과 싸우다 전사했다.
선조 38년(1605)에 전지로 녹권이 하사되고 철종8년(1857)에 증이조참판 선무원종훈의 충신정려가 내리다. 1971년 생극면 신양리에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가 건립되고 노산 이은상이 비문을 썼다. 지금은 병암리 문화마을 정자 앞으로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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