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동면 봉현1리 개오개마을
맹동면 봉현1리 개오개마을
  • 김진수
  • 승인 2010.01.30 1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박농사 등 겸업으로 풍요롭고 사통팔달의 편안함과 여유 가득”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던 발걸음
수박농사로 바삐 움직이던 일손
일단 멈춰 목을 축이라
360여년 기다리던 느티나무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

논두렁에서 솟아오른 냉수 한 모금 마시고 정자에 올라서
낮은 산구릉 아래 옹기종기 모여사는 개오개 마을을 보라
약수 한 사발처럼 먼 곳으로부터 오는 기쁜 소식 한 통
목마르게 기다리는 이여.”

--기자의 졸시, “개오개마을 약수터에서”--


맹동면 소재지인 쌍정리에서 대소면 방향으로 지방도 515번 도로를 따라 4.5㎞ 정도 가다보면 왼쪽으로 50여m 크기의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바로 100여m 앞엔 513번 도로와 만나는 교차로가 있다. 왼쪽으로 보면 낮은 산구릉에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마을이 바로 맹동면 봉현1리, 개오개 마을이다. 봉현1리 최용기 이장과 개오개 마을 주민들을 만나보자.

▣ 515번 도로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봉현1리, 개오개마을은 본래 충주군 맹동면 지역이었다. 그런데 고종 광무 10년인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계리(新溪里), 개현리(介峴里), 봉암리(鳳岩里) 일부를 병합하여 봉암(鳳岩)의 봉(鳳)자와 개현(介峴)의 현(峴)자를 써서 봉현리(鳳峴里)라 해서 맹동면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분구(分區)되어 오늘날 봉현1리(鳳峴1里)로 자리잡았다.
봉현1리는 515번 지방도로를 끼고 군데군데 자연부락이 흩어져 있다. 자세히 보면 봉현1리 중심마을은 '구례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개오개 마을'이다. 개오개 마을 동쪽으론 '가느실', 금왕으로 가는 길 바우배기 산너머로는 '향촌마을'이 있다. 또 대소 부윤리 경계지역엔 국수들이, 봉암리 쪽으론 빼내들, 마산리 경계엔 새보들 등이 분포한 가운데, 미호천 지류 하천이 진천군 덕산면 앞으로 흘러가고 있다.
515번 지방도로변 마을 입구엔 1995년에 세워진 마을비석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기슭에 약수터가 자리잡고 도로 건너편으론 마을 보호수로 360여년 된 느티나무가 정갈한 정자를 무릎 밑에 거느리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물론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에게 시원한 물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고 있다.

▣ 젊은 세대가 많이 들어와 젊은 희망 영글어
봉현1리는 '개오개마을'을 비롯한 3개 자연부락에 60여 가구, 총 1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이 수박, 쌀, 축산 농사를 짓고 있는 가운데, 요즘 들어 근방에 있는 공장을 다니며 겸업하는 주민들이 급격하게 늘었다.
주민들 연령을 보면, 최 이장 모친이 86세 최고령이며, 65세 이상 노인회원이 35명, 4~50대가 90-100명이고, 초·중·고 청년들도 30명이 넘는다.
봉현1리는 교통이 좋고, 또 주변에 공장들이 많아 요즘 들어 젊은이들이 많이 이사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개오개마을 한 가운데는 커다란 빌라가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다.
봉현1리 출신 출향인사 가운데 한 사람을 소개해달라는 기자의 요구에 주민들은 현재 맹동재경회장이며 KBS방송국에서 기자로 근무하는 조영희 씨를 꼽는다. 그 외 지역사회에서 효부와 효자상을 수상한 주민이 끊이지 않고 대를 이어 나오고 있단다.
지난 2005년 KT와 자매결연을 맺은 봉현1리는 각종 마을 행사가 있을 때 KT와 함께 하고 있다. 조만희 개발위원장은 동네 일이 있을 때마다 주민들이 협조를 잘 해준다고 자랑했다. 특히 매년 보호수 아래에서 고사를 지낼 때는 출향인과 전 주민이 모여 척사대회를 하며 단합을 다지고 있다. 정월대보름 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행사이며, 노인회원들을 위한 효도관광은 1년에 1차례씩 대동계에서 주관하여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올해는 부산 수족관 관광을 갔다 왔다고 전기열 대동계장은 전해줬다.

▣ 상호 이해와 양보로 범죄없는 마을 지향


개오개 마을을 비롯하여 봉현1리엔 4~5개의 공장이 있어 수질이 많이 나빠졌다. 하지만 상수도 시설이 잘 돼 있어 생활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또 마을에 근래 들어 가금농장이 많아져서 냄새가 나곤 하지만 서로 먹고사는 문제이니 이해하고 있으며, 모질게 할 수 없다고 밝히는 주민들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어질고 넉넉하기만 하다.
새마을지도자로서 마을에 계획하고 있는 사업을 묻는 기자에게 정병기 새마을지도자는 앞으로 개오개 마을 안길 1Km를 재포장하는 것을 숙원사업으로 밝혔다. 또 최 이장을 비롯하여 임원들은 마을 앞에 있는 약수터를 개발하고 정비할 계획과 의지를 거듭해서 밝혔다. 그래서 느티나무 보호수와 함께 공원화하려는데, 행정기관에서 공감하고 적극 협조해 줄 것을 희망했다.
동네 주민들이 협조한 덕분에 맹동면에서 최초로 방범용 CCTV 5대를 동네 곳곳에 설치한 봉현1리. 최 이장과 주민들은 도난을 방지하고, 범죄를 예방하여 범죄없는 마을이 되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다.
어르신들과 주민들에게 “건강하고 하시는 일들이 잘되어 항상 좋은 소식을 주고받는 행복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결같이 임원들은 부탁했다.

맹동, 금왕, 대소, 덕산 등 주변 읍면 소재지에 접근하기 손쉬운 사통팔달의 봉현1리. 편안함과 여유가 가득한 봉현1리, 개오개 마을 앞 약수터에서 물 한 그릇 마시고 느티나무 밑 정자에 앉아, 바쁘게 움직이던 일상을 잠시 접어보지 않으려나.


/우/리/마/을/사/람/들/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동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두텁게 신뢰하며 칭찬하는 최용기 이장은 현재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부인 오정자 씨와 함께 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자녀들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주면 고맙겠다”는 애틋한 부정을 느끼게 하는 최 이장은 새마을지도자를 맡았을 때나, 현재까지 2년째 이장 일을 맡으며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동네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주 등산하며 건강하고,
노인회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갖자”


김종현 노인회장은 봉현1리에 생존하는 세 분의 토박이 어르신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녀 5남매를 모두 출가시키고, 부인과 함께 30년 가까이 오붓하게 살고 있다는 김 노인회장. 노인회원들과 함께 '산수원애국산악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김 노인회장은 “자주 등산하며 건강하고, 노인회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갖자”고 회원들에게 부탁했다.



“순박한 눈매로 행복을 말하는 이웃”

“봉현1리에서 태어나 자란 봉현리 토박이입니다. 봉현리에서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순박한 눈매로 웃으며 말하는 전기열 대동계장은 논농사를 짓고 있다. 몇 년 전 마을공동소유토지를 '가현영농법인'으로 등록변경하여 세를 줘서 마을 재정을 충당한 일을 보람있던 일이라고 소개하였다.





정병기 새마을지도자
정병기 새마을지도자
“자기 일처럼 마을과 주민 일 도와줘”

정병기 새마을지도자는 처가인 봉현1리에 20여년전부터 오가다가 4-5년 전에 정착했다고 한다. 현재 “축산일을 하면서 마을 일에 본토박이 주민보다 더 열심히 참여한다. 특히 수박이나 밭일 등 동네일을 자기 일처럼 잘 도와주고 있다”고 주민으로부터 칭찬받는 정 새마을지도자는 이미 봉현1리의 완전한 주민이었다.







최한숙 부녀회장
최한숙 부녀회장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번창하시길”

남편 전기열 대동계장 사이에 1남 3녀 자녀 가운데 지금 막내딸과 함께 살고 있는 최한숙 부녀회장. 30여명 부녀회원들이 마을행사 때마다 어르신들 식사를 제공하고 빈병, 비닐을 수거해 마을기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노인정에 1년치 김장담그기 사업을 진행한 바 있는 최 부녀회장은 “항상 협조해줘서 고맙고, 회원들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번창하라”고 인사말을 했다.





조만희 개발위원장
조만희 개발위원장
“지혜를 모아 약수터를 개발·보존할 터”

아버님을 모시고 부인이랑 함께 현재 봉현1리에서 9대째 살고 있는 조만희 개발위원장. 조 개발위원장은 아버님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마을 임원들과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약수터를 개발·보존해서 지역 명물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우리동네 가볼만한 곳 - 약수 우물과 느티나무 보호수

이 우물과 나무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꽃가마연 행렬이 이 나무 밑에서 쉬게 되었는데 여름날 무더위 속에 목이 말라 일행들이 이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갔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행렬이 임금의 행차라는 전설이 되었다. 그 후 이 우물은 용왕이 점지한 약수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심한 가뭄 가운데도 물이 마르지 않아 마을 주민이 이 우물을 사용했단다.
심지어 인근마을 우물이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낼 때, 이 약수터의 물을 길어다 부으면 물이 다시 솟아 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우물은 용왕이 점지한 신비로운 약수라 믿게 되어 마을에서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용왕님께 정성을 다해 제를 지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전설을 보존하려고 정각을 건립하였고, 우물을 보수하여 마을과 지역 명물로 개발·보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최용기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