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민 천년나무 1단지 노인회장
안상민 천년나무 1단지 노인회장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22.03.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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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멈추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

동양증권 제천지점장 때 사내 최초로 사옥 건축
나이 따라 눈높이 낮추며 사는 것이 ‘참된 지혜’

 

안상민 천년나무 1단지 노인회장이 경로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싱민 천년나무 1단지 노인회장이 경로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려져 있다. 젊을 때 보다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천년나무 1단지 입주자 대표회장을 맡아 수고하다가 노인회장을 맡은 안상민 회장은 얼굴 곳곳에 젊은이 못지않은 생기가 풍기고 있었다.


그는 “일을 멈추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며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도 늙는 것을 잊고 살게 된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진천군 진천읍에서 출생했다. 당시 그의 부친은 28살의 나이로 진천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후 정년퇴임할 때까지 23년간이나 여러 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직하면서 자녀들에게까지 청빈하게 사는 참교육자의 모습을 각인시켜준 훌륭한 교육자였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이러한 인품을 물려받아서인지 안 회장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 입히는 일을 철저히 멀리하며 항상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다.


안 회장은 진천 상산초등학교에 재학 중 부친의 임지를 따라 청주로 이사를 가 주성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주성중학교, 대전 보문고등학교, 명지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 졸업 후 그는 첫 직장으로 지역 신문인 충청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아무래도 고향 가까운 곳으로 오고 싶은 귀소본능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기자직이 적성에 안 맞았던 그는 곧바로 신문사를 퇴직한 후 서울에 소재한 동서증권에 입사했다. 동서증권은 당시 우리나라 3대 증권사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증권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유명한 회사였다.


그는 이곳에서 9년 동안 근무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으나, 제5공화국 시절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동서증권도 극동건설로 넘어가 부득이 직장을 옮겨 동양증권으로 가게 됐다. 동양증권은 유명 증권회사에서 근무 경력을 쌓은 그를 제천지점장으로 발령했다.


당시 제천지점은 신규 지역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착박한 곳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안 회장은 제천지점장으로 부임한 후 전국 최고의 실적을 거두는 우수한 지점으로 만들었다. 이후부터 제천지점은 동양증권의 모든 지점 중 가장 선호하는 지점이 되게 된다.


이러한 실적 탓에 지점장들이 보통 3년이면 다른 지점으로 부임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장기 근무를 하며 계속해서 높은 실적을 쌓아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본사에서 열린 전국 지점장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당시 그를 만난 회사 대표는 “원하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그는 “제천지점 사옥을 지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모든 증권회사 지점은 임대였기 때문에 임대료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장소를 이전할 때마다 내부 공사비가 많이 들어 지점 운영에 큰 부담이 됐다. 그래서 대표가 ‘원하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선뜻 ‘사옥을 지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지점 사옥을 건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상을 깨고 회사 대표는 제천지점 사옥 건립을 허락한다. 그만큼 제천지점의 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옥이 준공된 지 2년 만에 우리나라 전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든 IMF가 터지는 바람에 회사마다 감원 붐이 일었다. 동양증권도 당연히 감원 바람이 불어 당시 지점장 중 50대 나이에 해당하는 3인의 지점장이 솔선해서 명예퇴직하기로 결정했다. 안 회장도 그중 하나로 끼여 결국 스스로 명예퇴직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면 대부분 낙심할 텐데도 안 회장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 곧바로 제천에 있는 천주교 성지가 있는 제천시의 배론 성지로부터 사무장으로 청빙 받아 6년간 근무한다. 이후 병원장으로 있던 지인이 서울 모처에 14층짜리 건물을 신축하면서 건축과 관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해 그곳으로 옮겨가 또 6년여 동안 근무했다.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있었던 그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눈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은 자기 눈높이만 낮추면 얼마든지 일할 곳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충북혁신도시로 전입해 온 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던 안상민 회장은 지금도 동성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수고하고 있다.          

황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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