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극면 팔성1리 말마리마을
생극면 팔성1리 말마리마을
  • 정진희
  • 승인 2009.12.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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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전통을 지켜가는 충효의 고장


'올레길'. 제주도 주거 형태 때문에 생겨난 제주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골목길의 모습이다. 요즘 틀에 박힌 일정과 타이트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페이스로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찾고 있다고 한다. 생극면에도 '올레길'의 여유로운 느낌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면서 문화유적과 설화가 조용히 잠들어 있어 누군가의 발걸음에 눈을 뜨고 귓가에 은은하게 속삭여 줄 것 같은 마을이 있다. 팔성1리의 말마리 마을을 찾았다.

▲ 문화유적과 설화의 마을
여덟 명의 성인이 있다하여 팔성(八聖)리라는 명칭을 얻게 된 마을답게 인격과 식견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 예전부터 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생극면 5대 김동윤 면장을 비롯 김기종 면장, 홍준 면장등 지역을 위해 수고한 사람 뿐 아니라 지식을 선물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교사·교수도 많고 교육부 국장과 왜정 때는 대한민국 최초의 판사를 이 마을에서 배출했을 만큼 인재가 많은 마을이다. 또한 예전엔 생극면을 한 눈에 두루 살필 수 있는 지형으로 생극면의 요충지로써 행정중심의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말마리는 인재만큼 도 지정 문화재가 가득한 곳이다. 106번지에 자리 잡은 높이 15M, 둘레 4.5M, 넓이 18M인 회나무(충청북도 도나무 제11호)는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은은하게 운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때에도 울어서 국란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주었다는 것이며 6.25사변 돌발 전에도 밤마다 몇 번씩 이 나무가 은은하게 우는 것을 마을에서 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올해 초 튼튼한 두 가지가 부러졌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현재 신종 바이러스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를 예견했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십청헌 김세필이 이 곳 경치에 반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초옥을 짓고 후학을 교육하였던 지천서원과 1930년대의 전통적인 주거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인 김홍완 가옥(충북지정 문화자료 제3호)이 있다. 또한 김제필 선생을 만나러 온 충주 목사가 말을 매어 두었다던 말개뚝은 정자와 나무들이 있어 올레길 여행처럼 마을의 유적과 풍경을 두루 둘러 본 후 조용히 과거로의 여행을 정리하며 마음과 머리에 각인 시킬 수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실바람으로 안식과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해서 온다면 교육과 가족나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훌륭한 장소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문화재를 군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보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인 다는 것이다. 마을과 연계하여 관리를 해 나간 다면 체계적인 군의 관리와 항상 곁에 있으며 애정으로 돌볼 마을사람들의 손길로 더욱 빛을 발하는 문화재가 될 것이다.

▲ 충효(忠孝)의 전통이 숨 쉬는 마을

말마리 마을은 문화제 뿐 아니라 뒤로는 팔성산과 앞으론 응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마을이다. 더욱이 아직까지 주변에 마을의 공기나 물을 오염시킬 만한 시설이 없어 물과 공기가 깨끗한 청정지역이다. 김씨 집성촌이었던 만큼 지금도 70%를 차지하고 있고 여타의 농촌마을과 같이 젊은 사람들의 도시를 향한 발걸음으로 65세 이상이 70%를 차지하는 고령화와 100가구였던 가구 수는 66가구로 줄었지만 70%가 농업에 종사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음성군에서 전통예절마을로 지정되어 매년 설날 세배행사를 하고 있고 군수 참석 하에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주관하여 음력 3월 초정일과 9월 초정일에 향제를 지내고 있으며 3년에 두 번 경로잔치와 효도관광을 실행하고 있다. 충효의 정신이 뿌리 깊은 마을 때문인지 팔성리의 말마리 사람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신임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충효가 몸에 배어 있지만 대표로 송기식(81세)씨는 효부상을 받았고 이런 마을 사람들의 효심의 마음 때문인지 한수억 할아버지는 100세의 나이로 장수상을 받았다.
또한 이 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면 청년회에 있다. 거주하고 있는 15명의 청년들을 합한 100여명의 회원들은 마을의 경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갑작스런 애사에도 자신의 삶 속, 여러 사정과 직계 손이 아닐 경우의 불이익에도 연락 한 번으로 달려와 주고 30세 미만의 청년들까지도 마을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달려와 준다며 어르신들의 칭찬이 입이 마른다.

▲ 전통을 계승하고 마음에 담아 행동으로 피어나
마을 어르신들은 농한기 땐 회관에 모여 짚공예와 운동기구로 운동을 하며 지내고 있지만 회관에 구비된 운동기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좀 더 많은 운동기구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항상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은 응천공원의 팔성리 구간에 어르신들과 근방의 지역민들이 이용 할 수 있는 체육공원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또 마을 어르신들이 버스를 타는 일은 거의 병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오가는 사람들이 모시고 가기도 하지만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있어 어르신들의 불편을 덜어주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했다.
옛것이나 전통이라면 고개부터 젓고 서구문화만을 쫓는 시대 속에서 깊은 애정과 자부심으로 전통을 지키며 이어나가는 팔성리 말마 마을 사람들은 서점에서 만난 고서의 신비한 매력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마/을/사/람/들/

김붕열  이장
김붕열 이장
생극면 최고의 마을이
되도록 노력할 것

김붕열 이장을 마을에선 “열정과 열의가 높고 마을을 위해 항상 열심히 노력 한다”고 칭찬한다. 어머님과 부인, 1남1녀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김 이장은 “부족해도 언제나 믿고 따라주시고 어디에서나 저에 대한 말씀도 잘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의 크기만큼 더 아쉽고 죄송하지만 용기를 얻어 앞으로 생극면에서 최고의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석두  노인회장
장석두 노인회장
자주 만나 친목 다지고
활기 넘치는 마을 만들 터

4대째 팔성리 말마리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석두 노인 회장은 “농번기 때에는 잦은 만남이 어렵지만 농한기 때에는 회관에 자주 나와 운동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친목도 도모하고 자주 자주 모임으로 활력이 샘솟아 마을의 활력소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효준 여성노인회장
안효준 여성노인회장
협조 잘해주시는
회원들 사랑합니다.

“우리 40명의 회원들은 '합시다.'라는 말 한마디면 어떤 일이든 협조를 정말 잘 해주십니다. 경로당 김장을 했는데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나와 정겹고 즐겁게 잘 마쳤습니다. 세대를 떠나 마을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인 참여를 해주시는 모든 회원 여러분들 사랑합니다.”며 애정을 표했다.





김숭열  생극면 유도회장
김숭열 생극면 유도회장
전통을 지키고
계승해 나가자

생극면의 요충지였던 팔성리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김숭열 생극면유도회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옛것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배척하려고만 하는데 전통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눈과 마음을 열고 선조들의 정신을 배우고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며 충효정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말했다.





김현순 부녀회장
김현순 부녀회장
귀향[歸鄕]
소식을 기대합니다.

생극면 부녀연합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현순 부녀회장은 “55명의 회원 분들이 고령이심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언제나 협조를 잘 해주셔서 자랑스럽고 감사하죠.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바람이 있다면 귀향소식을 들을 때면 우리 마을도 젊은 분들의 귀향 소식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김기표 새마을지도자
김기표 새마을지도자
아카시아 벌목을
자제해 주십시오.

“앞으로도 이장님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을 도와 마을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현상으로 꽃도 잘 피지 않아 양봉사업이 어려운 상황인데 보일러 땔감으로 아카시아나무를 벌목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벌목을 자제해 주시고 무분별한 벌목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십시오”라며 당부했다.




김기혁 청년회장
김기혁 청년회장
만사 제치고 와주는
청년들 감사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부인과 1남1녀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김기혁 청년회장은 “언제나 연락 한 번에 자기 일을 뒤로 하고 잘 모여 주시는 청년회 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청년회 회원 한 분 한 분 하시는 일이 모두 만사형통하기를 항상 바랍니다.”며 회원들께 애정과 감사를 표했다.








우리마을유적지 - 지천서원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호인 지천서원은 조선 중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십청헌 김세필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팔성산 아래 경치 좋은 이곳에 초옥을 짓고 산천을 벗 삼아 여생을 보내며 후학을 교육하였는데 이것이 이 서원의 시초라고 한다.
충주목사 눌재 박상이 말을 타고 자주 십정헌을 심방하여 격의 없이 서로 시를 읊고 환담하였던 곳으로, 그 집의 모양은 공(工)자와 같다. 양변에 거실이 있는데 좌측에는 십정헌이 머무르고 우측은 수학자, 가운데는 청사라 하였는데, 여느 서원과 마찬가지로 대원군 때 철폐되었다가 1893년에 축단하고 1906년 재건하였다.
그 후 1963년 중수되었는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중 목조기와집으로, 앞의 1칸은 툇간이다. 공자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앞의 1칸은 툇간인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모현당(慕賢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마루방 천장 벽에는 중수기가 걸려 있다. 솟을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경모문(景慕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삼문 옆에는 '지천당묘정비(知川堂廟庭碑)'가 있다. 지천서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으며, 홍살문의 서쪽 편으로 1621년(광해조 13)에 세운 '현감김공의청백선정비(縣監金公?淸白善政碑)'가 있다. 재실은 향사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하는 한편, 지방 유생의 학문 강론 장소 및 각종 행사 때의 협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직사는 평소에 관리인이 주거하며, 향사(享祀) 때에는 제기 보관 및 제관의 숙소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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