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명 등단작가 배출시킨 음성군 대표 ‘글엄마’
51명 등단작가 배출시킨 음성군 대표 ‘글엄마’
  • 임요준
  • 승인 2015.11.06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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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숙자 수필가
1981년 농부남편 그린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로 등단
18년째 제자 양성, 수필집 6권, 선집 2권 450편 남겨



“'치마 입은 남자'는 소재를 대중화했습니다. 줄거리도 일상에서 찾아 우리에게 친근감을 줍니다”
지난 13일 기자가 찾은 대소면사무소 2층에 5 ~ 60대 글쟁이들이 수필교실 선생님의 강의에 귀를 쫑긋 새웠다. 팔순을 바라보는 수필가 반숙자(77ㆍ음성읍) 선생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는 것.


“화단에 난초처럼 자라겠습니다”
반 선생은 음성읍 오성동 408번지에서 태어났다. 해군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해방되면서 전역해 마을에서 구장(지금의 이장) 일을 보셨다. 3남6녀 중 차녀다.

음성수봉초등학교와 음성중학교(당시에는 남녀공학),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청주대 행정대학원 1년을 수료했다.
7살 때 맞은 6.25전쟁은 그녀의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는 사건이다. 음성 감우재전투는 국군과 인민군이 쫓고 쫓기는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집 마당과 대문 앞, 마을 골목길에 양쪽 군인들이 총에 맞아 죽은 시체들이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동족간 비극의 상처는 어린 소녀의 눈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전근가신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 써오기 과제가 주어졌다. 반 선생은 “편지에 '화단에 난초처럼 자라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내 편지글을 읽고 '너 이 다음에 시인 되겠다'며 극찬해 주셨지요. 그때 나는 시인이 뭔지도 모르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고 했다. 반 선생의 인생의 획이 그어진 것이다.

이후 중학교에서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당시에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없었던 터라 시를 주로 썼다. 그러면서 그녀는 시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중학시절 국어선생님도 '넌 작가가 되겠다'고 확신의 말씀을 여러 번 남기셨다.


초등 교사 야학 열어
반 선생은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를 따라 청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7대1이라는 높은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그녀의 글솜씨는 사범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동아리 시반에서 반장을 맡았고, 학보사에서 2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KBS방송국에서 현충일 기념 생방송 때 일이다. 조시 낭독을 맡은 반 선생을 아나운서는 '박숙자'로 소개해 조시 낭독을 거부했다. 결국 음악으로 대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의 고집스럽고 정확한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반 선생은 첫 부임지로 음성소이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그녀 나이 19세 때다. 그녀는 이때 이광수의 '흙'을 읽고 감명받아 야학을 열고 문맹을 깨우치는데 힘을 쏟았다.


'한국수필'에 이어 '현대문학'에 등단
한편 남편 이명용(84) 옹은 음성 평곡리에서 태어나 충북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서울 변호사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에 내려와 사과나무를 심었다. 남편은 도시생활을 접고 귀향해 본격적인 과수농부가 된다. 이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돼 결혼에 이른다. 슬하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반 선생은 과수원에 들어오면서 교사의 길을 접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상자에 1500원인 수익으로는 대학생 자녀를 교육하기엔 너무도 벅찬 현실. 소득이 더 나은 작목으로 바꿔야만 했다. 어느 날 남편은 애지중지 자식같이 기른 450주 사과나무를 내 손으로 베어내어야 한다는 현실에 달빛아래 사과나무를 안고 흐느꼈다. 이를 소재로 수필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는 탄생했다.

반 선생은 1981년 '한국수필'에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로, 1986년 '현대문학'에 '손'으로 등단했다. 이후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1995년 음성으로 귀향해 음성문인협회를 인준 받는 것과 음성예총을 조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음성문인협회 초대 지부장과 3대 음성예총 회장을 역임했다.

반 선생은 지금까지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 '가슴으로 오는 소리' '때때로 길은 아름답고' '천년숲' 등 6권의 수필집과 '사과나무' '이쁘지도 않은 것이' 등 2권의 선문집 등을 발간하는 등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반 선생의 문하생 양성은 18년째 계속되고 있다. 1997년부터 음성예총 문예창작교실을 열고 제자 양성에 나섰다. 수강생중 반 이상이 외지인이다. 서울, 청주, 충주, 제천, 평택 등 전국에서 찾아온다. 어떤 이는 반 선생 곁에 머물고 싶다며 음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2년째 매주 금요일 음성읍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마음을 여는 수필교실'과 5년째 매주 화요일 대소면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수필창작강의를 펼치고 있다.

강희진(문예한국), 전현주(월간문학) 등 모두 51명의 제자들을 등단작가로 길러 내는 등 활발한 문학활동을 보이고 있다.

반 선생은 “수필교실은 나의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나를 이해해주는 글제자가 있어 행복합니다. 선생보다는 글엄마라고 부르죠. 기력이 닿는 한 가르침을 계속하고 싶어요”라며 주름진 얼굴에 웃음 가득 피우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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