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근로자에게 우리말 알리는 ‘한글 전도사’
외국근로자에게 우리말 알리는 ‘한글 전도사’
  • 임요준
  • 승인 2015.10.13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 순 익 음성외국인지원센터장
외국인지원센터 열어 한글 교육 나서
센터사무실 없어 '독지가 손길' 간절

일요일 오후, 한 주간 피로를 풀며 한가로운 한때를 즐기는 시간. 대소면사무소에 어눌한 발음소리가 청사를 울린다. 선생님의 발음 하나하나에 낯선 이방인들의 눈과 귀가 쏠린다.

“기역 니은 디귿...” “아 야 어 여...” 이어지는 짧은 문장까지, 외국인들의 책 읽는 소리는 저녁까지 계속된다.

한글 초급에서 중급까지 외국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글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 그 중심에 유순익(55) 음성외국인지원센터장이 있다.

유 센터장은 지난해 우리 지역내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외국근로자들이 우리말이 서툴러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뜻을 같이 하는 지인들을 모아 음성군에서는 최초로 외국인지원센터를 설립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부터 외국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강의에 들어간 것이다.

남편 직장따라 음성과 인연

유 센터장은 경북 의성에서 제일가는 갑부에 3남5녀 중 5째로, 딸로는 4째로 태어났다. 정미소와 목재소 등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아버지는 책만 보는 공부벌레였다.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는 기울기 시작, 급기야 고향을 떠나 안동으로 이사하게 됐다.

고모부가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근무하던 중 남편 정승진(58)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 나이 25세 때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다시 울산으로 이사, 원재(32), 원우(30) 2남을 낳고 행복한 가정의 주인공이다. 그러기를 15년.

지난 2004년 남편 정 씨는 금왕읍에 (주)플라벡스가 설립되면서 창설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유 센터장은 2년 뒤 남편을 따라 대소면으로 이주하면서 음성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중년여성 학업열정 불 태워

어려운 가정형편에 일찍 포기한 학업이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40대 중년여성이 수능준비에 돌입한 것이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겠다는 의지와 학업에 대한 열망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지난 2006년 단국대학교 법학과에 당당히 합격, 중년 아줌마의 당찬 대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학업 열정은 20대 젊은이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평점 3.9점. 장학생으로 선발됐지만 어린 학생들을 위해 양보하기도 했다.

그녀의 학업 열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성군다문화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법률적 고충을 해결하며 봉사하던 그녀는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위해 자신부터 실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충북대 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법과 한국어교육에 대한 실력을 갖추면서 이주여성들을 위한 그녀의 봉사는 6년째 계속되고 있다.

음성외국인지원센터 설립

“음성에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명 3D업종이죠.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이 일하기를 기피하는 업종들이죠. 그 자리를 외국근로자들이 대신 채워주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 왔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외국근로자들이 한국어에 서툴러 회사에서나 사회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은 진천이나 심지어 오창까지 가서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유 센터장이 그냥 있을리 없다.

지난해부터 뜻을 같이 하는 지인들과 함께 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교육장소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대소면사무소에서 선뜻 제공해 줬다. 드디어 지난 4월 음성군외국인지원센터가 문을 열게 됐다. 그러면서 한국어 강의도 함께 이뤄졌다. 참여인원만도 100여명이다. 근무여건상 매주 고정적 참여 인원은 40여명이다.

이곳에서는 법률 상담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노동인권센터, 대소성당, 법무부출입관리소 직원들이 함께 참여해 생활에서 겪는 법률적 고충을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한국어 강의를 시작한 것은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운영을 위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때면 힘에 부치죠. 휴일을 반납하며 봉사하는 강사님께도 너무 미안합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봉사만 강요하고 있어 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난 여름 무더운 날씨속에서도 한국어 강의는 계속됐다. 지칠만도 하건만 보람있는 일이기에 오늘을 견딘다. 하지만 경제적 난국에 빠질 때 여린 그녀의 어깨가 더 힘겨워 보인다. 독지가의 손길이 간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