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까지 보듬는 ‘장애인의 대모’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는 ‘장애인의 대모’
  • 임요준
  • 승인 2015.09.10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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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혜 진 음성군지체장애인협회장

교통약자 위한 편의시설 조례 제정 '최대의 숙제'
“장애인 검정고시 준비·직업교육 장소 마련 절실”


▲ 음성군 평생학습 강사로 활동중인 윤혜진 음성군지체장애인협회장이 자신의 천연염색 작업장에서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한국압화협회 지도자 등 장애를 딛고 우뚝 선 모습이 많은 장애인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 음성군 평생학습 강사로 활동중인 윤혜진 음성군지체장애인협회장이 자신의 천연염색 작업장에서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한국압화협회 지도자 등 장애를 딛고 우뚝 선 모습이 많은 장애인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장애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돈 얼마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일을 하면서 경제적 자립은 물론, 일의 소중함과 보람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정작 장애의 몸으로 자신보다는 음성군 6천여 명의 장애인들을 돌보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한 여인이 있다. 음성군지체장애인협회 윤혜진(60·음성읍 용산리) 회장. 조그마한 체구에 가련한 여인 그 자체다. 그럼에도 '장애인의 대모(代母)'로 불리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부터 음성군지체장애인협회(이하 장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 회장의 최대 관심사는 장애인들의 자립이다.

“많은 장애인들은 배움이 짧습니다. 배운 사람도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 장애인들의 취업은 꿈도 꾸지 못하지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배움과 일자리입니다. 검정고시 시험준비를 위해 많은 분들이 강사를 자청하고 있지만 장소가 없어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직업교육을 하려 해도 장소가 없어 역시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6살 어린 꼬마의 불행

윤 회장의 아픔은 54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녀는 7남매 중 막내다. 6살 때 불의의 사고로 무릎에 커다란 부상을 입게 된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그녀의 다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 50세 때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딸이 사고로 다리를 잃게 된 것이다. 긴 병원생활과 오랜 세월 통원치료는 계속됐다. 사춘기 때는 절뚝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싫어 바깥출입조차 꺼렸다.

“퇴원 후에도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한달씩 입원해야 했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내 걱정에 눈물이었어요”

'부모님'이라는 낱말 석자에 어느새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녀에게 삶이라는 게 얼마나 고통 이였는지 어찌 말로다 표현될까?

의상디자인 배워 의상실 개업

윤 회장은 장애인으로 살 길은 기술밖에 없다는 생각에 의상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 나이 18세 때다. 기술 익히기를 3년. 그녀 나이 21세 때다. 의상실을 개업했다.

선천적 미적 감각을 지닌 그녀가 의상 기술을 접목해 개업한 의상실은 대박이었다. 1년 후 갚기로 한 차입금 1백만원은 불과 3개월 만에 상환을 완료했다.
26세 때 남편 유도연(64) 씨와 결혼하면서 서울로 이사, 이후 다시 경기도 수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의사의 오진으로 어이없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말았다. 암이 아닌 조그만 종양이었던 것. 다행이다 싶었지만 어처구니없는 병원 실수에 또 한 번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미술·천연염색·공예 분야 활동

그녀 나이 40세. 팍팍한 도시생활과 생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윤 회장은 '평화로운 음성'을 찾아 이주하게 된다.

꽃꽂이를 익히며 퀼트를 배웠다. 5년 전에는 '압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압화는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취미로 시작했던 것이 압화의 매력에 초급·중급·고급과정을 거쳐 지도자로 탄생시켰다. 들과 산을 헤집으며 꽃과 풀을 채취한다. 그녀의 손을 거쳐 탄생한 꽃들은 영원한 환생을 꿈꾼다.

우연히 만난 천연염색은 또 다른 세상으로 그녀를 매료시킨다. 우리의 전통 옷감에 각양각색으로 물들여진 염색천으로 그녀의 주특기인 의상디자인을 통해 멋스러운 옷 한 벌이 만들어 진다.

감탄과 환호가 절로 나온다.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마주치면서 표현되는 것은 옷을 통한 예술의 극치다.

윤 회장은 음성군 농업기술센터 천연염색연구회장과 음성군 공예협회부회장, 한국압화협회 지도자, 음성군 미술협회 회원, 음성군 평생학습 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충북장애인경기대회에 출전, 금 1, 은 1개를 목에 걸었다. 전국대회에서는 장려상을 수상했다. 과연 누가 그녀를 장애를 지닌 가련한 여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장애인들 밖으로 인도하고 싶어”

장애인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 윤 회장의 유일한 소망이다.

“음성에 온지 15년이 지났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네 현실은 변한 게 없습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어도 여러 제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조례안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편의시설 안내 책자를 발간할 계획입니다”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단지 불편할 뿐입니다. 음성군 6천여 명의 장애인께서는 힘을 내기 바랍니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두려워 말고 밖으로 나오세요”

누구나 닥칠 수 있는 불의의 사고. 그러면서 평생 지고 가야할 장애.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그려가야만 한다. 윤 회장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그녀에게서 장애인의 삶의 방향을 찾는 이유다.

“장애인이여, 희망을 잃지 말자. 그대들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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