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오 무공수훈자회 음성군지회장
김용오 무공수훈자회 음성군지회장
  • 안창규
  • 승인 2015.06.03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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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무공훈장 수훈한 ‘영원한 군인’


1967부터 2년 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유공자
“생존 수훈자 생활불편하지 않도록 지원 주력”


▲ “35년의 군 생활, 후회 없이 살았다“ 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김용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음성군지회장이 지회 사무실 현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35년의 군 생활, 후회 없이 살았다“ 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김용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음성군지회장이 지회 사무실 현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고막을 찢는 M16 총성 교전은 단 몇 분, 때로는 몇 초 만에 끝났다. 대부분의 교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군과 적군 간 격전이 벌어졌지만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른 체 아침을 맞았다.”

베트남 전쟁에 수색중대 대원으로 참전한 김용오(69)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음성지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수색중대였기 때문에 많은 교전은 하지 않았지만, 10번 교전을 하면 6번 정도는 아군 승리, 나머지 4번은 승패가 불분명한 전투였다고 한다. 베트콩 몇 명 사살에 다수의 무기를 노획해도 사단장 표창 대상자는 될지언정 훈장수훈은 어림없었다.

김 지회장은 1967년 1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2년간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빈딩성에 주둔하던 맹호부대 1연대 수색중대 소속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그 공로로 지난 1967년 12월 인헌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인헌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무공훈장의 5등급에 속하는 훈장이다.

지난 1946년 금왕읍 각회리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만 19살이던 1965년 2월 논산 육군 제2훈련소에 자원입대해 지난 1967년 5월 육군부사관학교 보병1기를 수료하고 하사관에 임관했다.

“35년 軍생활 후회 없다”

김 지회장은 지난 1999년 35년간의 군(軍)생활을 마치면서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했다. 전역 후 천안에서 8년간 포도과수원을 경작하다 고향 음성에 정착했다. 군인 시절과 천안에서의 8년을 제외하곤 음성을 떠난 적이 없다.

김 지회장은 오랜 군 생활이었지만 '후회 없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서울 동작동과 대전의 현충원을 찾았다. 같이 전투를 하다 전사한 동료와 군 시절의 상사, 부하들을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두 곳에 각각 소주 5병씩을 들고 갔다. 묘소에 한 잔씩 올렸지만, 들고 간 소주가 모자랐다고 했다. 김 지회장과 전투를 같이한 전우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는 6.25전쟁, 월남전쟁과 대간첩작전 등 국가의 위난 시 전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수훈하였거나 한평생 나라의 국방 및 안보에 투신하여 보국훈장을 수훈한 본인 및 그 유족들이 참여해 지난 1989년에 설립된 단체다. 음성지회도 같은 해 설립됐고, 김 지회장이 7대 지회장이다.

한 눈에 보아도 건장한 체구인 김 지회장은 훤칠한 신장에 체중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옛날 무골장군 타입이다. 슬하에 2남매를 두었지만 모두 결혼해 따로 살고, 내외만 금왕읍에 거주하고 있다.

초·중·고를 음성에서 다녔기에 친구가 많아 자주 어울린다. 무공수훈자회 지회장 이외의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그는 오랜 기간 군 생활을 한데다 보국훈장을 수훈한 덕분에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끔 자녀들에게서 적절한 명목(?)이 붙은 생활지원금으로 부부가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장인(성낙환: 작고)을 꼽는다. 당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쌀을 됫박으로 사먹을 때인데, 장인은 농사를 지어서 추수를 하면 매년 쌀 2가마를 사위 집에 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는 고향의 선배 등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을 보람으로 삼는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전국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친척, 절친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친목도 도모한다.

“수훈자 위한 봉사 계속할 터”

그는 앞으로의 계획도 무공수훈자회와 관련된 일이다. 첫 째로 꼽는 것은 수훈자들이 돌아가시면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 있는 행사를 치르고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깔끔히 처리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생존해 있는 수훈자들이 대부분 고령자이기 때문에 살아계시는 동안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김 지회장은 6.25전쟁 참전 수훈자 세대에서 월남전 참전 수훈자 세대로 한차례 무공수훈자회 주역이 바뀌었고, 이제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보국훈장 수훈자들이 협회를 이끌어 가야하는 세대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세대 수훈자 들이 선배들을 잘 모시고,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보국훈장 수훈자 대부분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세대여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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