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면 성본1리, 최성미 마을
대소면 성본1리, 최성미 마을
  • 고병택
  • 승인 2015.01.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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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색된 전설...왕우렁이 할아버지, 그를 회상하다

▲ 마을 초입을 지키고 있는 400여 년된 느티나무. 주민들의 희노애락을 품은 듯 장엄하게 서 있다. 햇살이 눈부시다.
▲ 마을 초입을 지키고 있는 400여 년된 느티나무. 주민들의 희노애락을 품은 듯 장엄하게 서 있다. 햇살이 눈부시다.



“성본리 주민들과 군수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의원들이 나서서 이 싸움을 화해와 평화의 길로 인도해 주길 바란다”

“군수는 죽어도 산업단지를 한다고 하고, 주민들은 죽어도 삶의 터전인 고향을 지키겠다고 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의원들이다. 주민들이 왜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주길 바란다”

지난 2013년 10월경, 성본1리 故 최재명 할아버지가 음성군의회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제는 그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 지난해 4월 상향된 마을제 모습.
▲ 지난해 4월 상향된 마을제 모습.
지난 11일 취재차 찾아 간 성본1리에는 여전히 스산한 한기가 느껴졌다. 한겨울 탓이겠지 위안하며 마음을 살피던 중, 故 최재명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는 양식장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그는 이 곳에서 왕우렁이, 새우 등을 키우며, 친환경 농사를 필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제는 폐사된 채, 방치되어 있는 현장만이 고단했던 지난 2년여 간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난해 1월 10일 오전 7시 30분경 별세한 그는 199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유기농 왕우렁이 농법'을 개발, 전국에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훈장을 받는 등 유기농 재배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지난 2013년 8월,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구를 이끌고 태생산단 조성을 반대하는 군청앞 시위에 나섰던 그는 “농민은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주민들을 몰아내고 콘크리트 공장을 짓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이날, 순박했던 그의 외침은 진실로 다가와, 기자를 숙연케 했다.

임종하기 전까지 주민들을 돕기 위해 고뇌했던 그를 회상하며, 잠들어 있는 묘소로 향했다.


■ “아홉 용이 하늘로 승천하다”

▲ 해주 최씨 선조를 배향하는 숭모재.
▲ 해주 최씨 선조를 배향하는 숭모재.
성본1리 최성미 마을은 성본리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각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해주 최씨가 많이 사는 마을이라 해서 최성미로 부른다.

동쪽으로는 금왕읍 유포리가 있고, 남쪽으로는 홍창골, 동북쪽으로는 소탄 등의 자연마을과 접하고 있다.

이 마을의 자연환경은 마을 북쪽으로 성뫼라는 산이 있는데, 성뫼에 성본리 토성이 있고, 성 안에 '어재연. 어재순 묘'가 있으며, 남쪽으로 앞들과 안산이 있으며, 서쪽으로 소탄천이 흐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 천혜의 적지이다.

예전에는 벼농사와 담배농사를 주로 지었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가구가 인삼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현재 30여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본리 토성 최성미 마을 동남쪽의 낮은 구릉에 있는 토성으로, 둘레 1.08km, 폭 1.8m, 높이 3.6m의 토축성으로 신미양요 당시 지휘관이었던 어재연과 그의 아우 어재순이 미군과 교전하다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숭모재 숭모재는 해주 최씨의 입향조인 최유창을 비롯한 해주최씨 선조를 배향하는 사우로 정면3간, 측면 1간의 맛배지붕이며, 지난 1992년 6월 7일에 준공됐다.

▲ 신미양요 순국선열 어재연, 어재순 장군을 모신 쌍충묘.
▲ 신미양요 순국선열 어재연, 어재순 장군을 모신 쌍충묘.
쌍충재
어재연, 어재순 장군을 모신 사우인 쌍충재는 맛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뒤로는 쌍충묘가 있으며, 아래에는 신도비가 있다.

고종황제 당시, 두 영령의 순국충절을 기려, 군력을 동원해 조성한 '조선시대 국립묘지'인 쌍충묘의 보호구역 지정면적은 4필지 30,497m²이며 관리단체는 함종 어씨 충장공파종중으로 지정됐다.

쌍충묘는 지난해 9월, 충청북도 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어, 후속 행정절차가 진행중에 있다.

구룡지 전설 해주 최씨 9대조인 최유의라는 사람이 어느 한 날 이 곳에서 논을 갈다가 낮잠을 잤는데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에서 깬 그는 너무도 좋은 꿈이라 쟁기도 논에 놓은 채 한양으로 올라가서 과거시험에 급제해 절충장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 개발의 광풍에 퇴색된 주옥같은 지명들

성본1리 마을은 해주 최씨 최유창이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마을로 입향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성본리 마을의 전주 이씨 입향조는 이종우로 최성미 마을의 해주 최씨와 혼인을 통해 터를 잡게 되는데, 이종우의 본관은 전주이며 성종의 왕자 경명군의 12대손으로, 현재 마을 동편에 이종우와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안산 남쪽에 있는 한자목골, 안산 남서쪽 들은 느러지기, 뒤동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는 상직봉, 웃방죽 위에 있는 샘은 옻샘으로 마을사람들이 옻이 오르면 이곳에 목욕을 했다 하여 이름지어졌다.

▲ 이준구 부위원장이 故 최재명 할아버지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 이준구 부위원장이 故 최재명 할아버지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남동쪽에 위치해 있는 박샘거리는 바가지로 물을 떠먹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남쪽에 있는 강아지자리는 약 200평 남짓한 들로, 옛날에 강아지와 이 땅을 맞바꾸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이밖에, 버리샘, 사두혈, 금반향, 매산모랭이, 빨간 고개, 서낭댕이 등 주옥같은 지명들이 수려함을 자랑한다.

약 400여년간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는 수고 21m, 나무둘레가 5m에 이른다. 1982년 음성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폐사된채 방치된 왕우렁이 양식장.
▲ 폐사된채 방치된 왕우렁이 양식장.
축복의 땅, 천기, 지기를 모두 받아, 기운 샘솟는 천하의 명당, 성본1리는 지금 '개발'이라는 화두앞에 그 명맥조차 위협받고 있다.

조상들의 은혜와 따뜻한 사랑으로 생업에 종사하며, 자손을 키워왔던 평화의 터전이 '개발의 광풍'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 “고향을 반드시 지켜 내겠다”

▲ 최재우 이장
▲ 최재우 이장
최재우 이장(47)은 “우리 마을은 대부분 홀로 사는 어르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산단 광풍 문제로 많은 시름을 겪어 왔다. 산업단지가 백지화되어 집성촌을 지켜 나갈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윷놀이, 어르신 관광여행 등 다양한 마을행사가 있었으나, 산단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체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 최병소 새마을회장
▲ 최병소 새마을회장
최병소 새마을지도자(62)는 “수천년의 삶의 터전을 스스소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에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며 “우리들이 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하느냐”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해주 최씨 32대손 최준섭 노인회장(80)은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며 “일심동체가 되어 13대조부터 모셔 온 선산을 지켜내겠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러나, 성본1리의 미래는 여전히 암울하기만 하다. 고단한 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 최준섭 노인회장
▲ 최준섭 노인회장
태생산단반대위 이준구 부위원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음성군은 성본1리를 포함한 약 220여만㎡를 개발 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 태생산단 강행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450년 된 최씨 집성촌이 사라질 판이다. 주민들간 사전협의도 없었다”며 “보상비는 필요없다. 고향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도란도란 정 담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작은 마을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故 최재명 할아버지는 전설로 남아, 우리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농민들에게 농토를 뺏으면 죽으라는 얘기이다” 세찬 바람 소리가 절간처럼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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