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원 음성군 다문화지원센터장
소진원 음성군 다문화지원센터장
  • 유재윤
  • 승인 2014.12.12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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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감당 할 수 없는 무게로 운명이 자신의 삶을 가로막을 때마다 그는 꿋꿋하게 봉사자의 길을 걸어 왔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삶을 살아가면서 우린 때로는 고난의 길을 만나고, 때론 시원하게 뚫린 탄탄대로를 만날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우린 거기에 순응하며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운명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떠나, 물설고 낯설은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문화적, 언어적 습관을 극복해가며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 이주여성들에겐 그것 자체가 그에게 주어진 운명일런지도 모른다.

다문화가정 또는 다문화가족은 세계화에 따른 국제적 장벽이 약화되어 국제결혼이 비교적 자유로워 지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시대적 기류에 따라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족의 한국 적응을 돕고 그들의 대부가 되어 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있는 음성군 다문화지원센터 소진원 센터장을 만나 그가 말하는 다문화 가정과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소진원 센터장. 언뜻 보기에 부드럽고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강인한 사람이다.

음성군의 대소면과 인접한 진천 광혜원 바들말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만승초와 광혜원중·고를 거쳐 우리나라 신학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성공회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평택대 상담대학원과 원광디지털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 봉사자로서의 틀을 다져왔다.

그의 이러한 이력만 보아도 그가 다문화가족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문화가족의 한국사회정착을 지원하는 다문화센터장이란 타이틀은 그에게 천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 복지 분야에 많은 관심이 있어, 신학을 전공하면서도 사회복지학과 학생들과 시설을 방문 봉사활동도 하고 복지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다졌고, 소외된 분들을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을 배워 그 기틀을 다진 후, 졸업 후에도 충주, 제천, 원주 나눔의 집, 햇살 공부방, 노인학교 등을 통해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해 왔다.

그런 그가 다문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다문화가족 지원에 관한 그의 소신은 절대적이다. 그의 모든 삶의 초점은 오로지 그들과의 삶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우리문화에 하루빨리 적응하고 어떤 방법을 쓰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내국인과 동등한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네들의 삶이 바로 소 센터장의 삶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 새벽, 가장 먼저 출근하고 음성군 다문화센터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카페 이음이 문을 닫는 늦은 밤까지 그들과 호흡하며 함께 하는 그를 두고 우리들은 감히 그를 다문화계의 대부라 말한다.

센터 개소 이후 연간 이용인원이 약 1만2천여 명으로 도내 1위를 기록하는 수치상의 통계가 말해주듯, 음성군 다문화지원센터는 한국사회 적응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각종 일자리 창출로 그들이 어엿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각종 지원과 혜택을 제공 하고 있으며 그 중심엔 늘 소진원 센터장이 함께 하고 있다.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불안하게 살아가던 부부가 센터에 와서 교육을 통해 취업도 하고 가정 형편도 좋아져 원만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때 보람을 느낀다는 소 센터장은, 반면 행복하게 살아야할 권리가 있음에도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이나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를 볼때, 그들에게 좀더 적극적이고 원활히 대응하지 못한데 대한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며 고충을 토로 한다.

사회생활도 성공하고, 가정도 잘 꾸려 나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도 사람인지라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좀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가족에게 미안함을 표한다.

아직도 어린아이가 있어 15년째 육아중이라며 농반진반으로 말하는 소 센터장은 늦은 귀가와 육아지원의 어려움, 아직도 한참 공부할 나이에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자신이 뒷바라지를 못해 공부를 더 못하고 있는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다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안행부, 여가부, 법무부 등 업무의 분산화에 따른 콘트롤타워 부재와 부처간 이기주의로 인한 심적 고통이 있다는 소 센터장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행정의 일원화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음성과 금왕에서 운영 되고 있는 센터의 규모가 확대되어 이주여성에 대한 효과적 서비스 제공과 좀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여건이 좋아져 그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정착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 센터장은 대소지역에 날로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특화 사업도 준비 중이라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음성군 다문화센터에서 시행하는 각종 사업이 다른 자치단체의 모범이 되어 전북 김제, 경북 경산, 대구 등에서 벤치마킹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하는 소 센터장은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얼마만큼열과 성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직원들의 노고를 우회적으로 칭찬한다.

애초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봉사활동을 하며 외향적으로 변했다며 웃음 짓는 소 센터장의 '우보천리'라는 좌우명 처럼 한걸음 한걸음 듬직한 모습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의 행보를 넓혀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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