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홈런왕 '김봉연'
영원한 홈런왕 '김봉연'
  • 이상구
  • 승인 2014.05.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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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포, 해태 타이거즈 부동의 4번 타자

▲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고 있는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
▲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고 있는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

아마시절 3연속 홈런왕, 3타석 3연속 기록도 해태 타이거즈 부동의 4번 타자인 金奉淵(김봉연)이 통산 22개의 홈런을 작렬시키며 한국프로야구 원년의 홈런왕위에 화려하게 등극한 것은 '홈런왕' 이라는 단순한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팀플레이의 경기이면서도 개인기록을 중요 시 하고 있는 야구의 꽃을 홈런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홈런왕의 金奉淵(김봉연)이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82년 10월 19일 경향신문 기사中-



▲ 김봉연 교수 (62)
▲ 김봉연 교수 (62)
자장면 한 그릇, 홈런왕을 키워낸 희망
현재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 학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봉연 교수는 “초등학교 3학년 말, 먼저 야구를 시작한 형을 기다리다 교무실 창 너머로 야구부 학생들이 자장면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회상한다.

7남 4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자장면 한 그릇은 홈런왕을 키워낸 희망이었다. 이때 받은 등번호 27번을 88년 프로야구 은퇴까지 고수했다.

군산상고 시절 최관수 감독을 만나 타격 폼을 그대로 따라 하며 야구에 눈을 뜨게 된다. 투수와 타자로 기량이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며 군산상고의 주역으로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제26회 황금사자기 부산고와의 결승 9회 말 역전 우승을 일궈낸다.

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
연세대 시절 춘계리그전 투수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투수로서 활약, 동아 대전에서는 야구사상 최초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한다. 75년 아시아선수권대회 홈런왕으로 우승을 차지하고 체육 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77년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도루왕을 차지할 정도로 빠른 발을 가진 선수로 그 해 김응용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니카라과 슈퍼월드컵에서 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체육 훈장 백마장을 받게 된다.

니카라과 마나구아 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한국대표팀은 막강을 자랑하는 미국대표팀을 맞아 백중한 경기를 벌인 끝에 6회초 그의 동점 홈런이 작력, 이해창 선수의 2타점을 알리는 센터 앞 클린히트가 터져 5대4로 미국을 눌러 영예의 월드컵을 차지한다.

79년 한국화장품에 입단해 3년 연속 대통령배 실업리그 홈런왕에 등극, 한전과의 경기에선 3연 타석 3점 홈런의 진기록을 작성했다.

해태 타이거즈 부동의 4번 타자
MBC 청룡,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삼미 슈퍼스타즈,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6개 팀으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그는 전라남북도에 본거지를 둔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22개의 홈런을 치며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에 등극한다.

해태 타이거즈 3-5번 타선, 이른바 KKK포 김준환-김봉연-김성한, 김성한-김봉연-김종모로 이어지는 타선에서 부동의 4번을 지켜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타격왕을 차지하다 국내 무대에 복귀한 백인천 선수, 거포 이만수 선수, 70년대 중반 실업무대 홈런왕 김우열 선수 등 홈런타자들의 한 판 승부에서 골프를 치듯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어퍼스윙으로 원년 홈런왕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고 86년 다시 홈런왕에 오르기도 했다.

88년 프로통산 0.278타율, 110홈런, 334타점을 기록하며 은퇴해 해태 타이거즈 코치, 현대 피닉스 코치를 거쳐 2000년 해태 2군 감독을 마지막으로 야구계를 떠나 이듬해 극동대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전성기에도 그는 집 마당에 티배팅 연습시설을 갖추고 하루에 2천 번씩 스윙연습을 하며 바깥쪽커브 약점을 보완하기위해 노력했다.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아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을 남겼다.

김봉연 교수는 해태 타이거즈 코치로 근무하며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어린 시절 영어 교사인 큰 형처럼 교사가 되고 자 꿈을 품었던 그는, 늦게나마 대학에서 강의하며 꿈을 이룬 셈이다.

올해 3월 음성군 생활체육야구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타시·군에 비해 낙후돼 있는 음성군 야구에 새 바람을 넣고 있다.

감곡면 체육공원 내에 추진 중인 야구장 건설의 조기건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야구장이 건립되면 우선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의 경기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초·중·고 야구팀을 창설해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KBO의 초·중·고 야구팀 활성화와 저변확대 방안에 따라 지도자 인건비 보조 등 창단 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야구계의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그가 있어 음성군 야구발전에 희망을 품게 한다. 김봉연 교수는 슬하의 아들과 딸이 결혼한 후 귀촌해 아내 장득자 여사와 장호원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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