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步千里...천리길을 천천히 가다
牛步千里...천리길을 천천히 가다
  • 고병택
  • 승인 2014.03.14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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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청보리지역아동센터장


"너희들 손에 총 대신 악기를 들어 보지 않겠니?"

아이들은 그 신사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신사는 진지했다.

"이 악기를 가져가렴. 돌려 주지 않아도 좋아. 나랑 같이 악기를 배우는 거다. 단 조건이 있어, 이 악기를 들고 있는 동안에는 그 총을 들고 있으면 안돼"

한 소년이 망설이다 클라리넷을 집었다. 다른 열명의 아이들도 쭈뼛쭈뼛 악기들을 들었다.

허름한 창고에 모인 아이들은 괴짜 신사, 아브레우 박사의 지도 아래 조금씩 악기를 익혀 나갔다.

빈민가의 아이들을 범좌와 마약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베네수엘라의 '꿈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는 이렇게 시작됐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현실을 이겨 낼 꿈이었고, 삭막한 정서를 이겨 낼 감성이다.

갱들의 총소리와 부모의 한숨소리로 가득 차 있던 아이들의 가슴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로 가득 차게 되고, 아이들은 점차 미래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꿈이 영그는 '희망의 울타리'

보이기 시작한다 / 오늘 비로소 / 이 흰 바람 속에 / 먼 구름 먼 하늘 / 언 땅에서 올라오는 / 청보리 새순...성낙희, 겨울 中

아기자기한 글씨로 센터를 알리는 현판과 함께 푸릇푸릇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아이들이 좋아서 센터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다"는 조현숙 청보리지역아동센터장(51), 그녀는 음성군의 또 다른 ' 아브레우 박사'이다.

음성읍에 위치한 아동센터는 지난 2004년 2월, 한길감리교회부설 청보리지역아동센터로 시작,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센터의 울타리에 모인 아동들은 대부분 조손가정이나 맞벌이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로, 조현숙 센터장, 임동연 생활복지사와 함께 그들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돌봄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한부모, 조손가정, 기초수급자 가족 등 아이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엔 너무도 취약한 환경의 가족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적 궁핍은 부모들을 밤늦은 시간까지 일에 매달리게 하고, 고령의 조부모에게 아이들을 맡기게 하고, 이렇게 방치된 아이들은 TV, 인터넷, 게임 중독 등에 쉽게 노출되거나, 학교에서까지 신체적, 정서적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인천 영종도 출신인 조현숙 센터장은 "처음에 낯설어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집처럼 편안을 느끼며, 사랑스럽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끈을 놓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조 센터장은 사회복지학 입문 계기에 대해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고, 이웃의 일을 내일처럼 도우시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술회했다.

조 센터장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해서, 많은 것을 가져서가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 지길 바란다"고 했다.

베풀면서 사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센터는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 그리고 무한한 힘과 에너지를 선사하고 있다.

조 센터장은 "엇나가고 반항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힘들고 걱정되지만,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소진됐던 에너지가 회복되곤 한다"며 "우리 아이들은 지금은 수혜자이지만 받은 것을 나누는 삶도 가르쳐 주고 싶다"고 전했다.

'세상을 향해 훨훨 날자'...꿈의 오케스트라

아동센터는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악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들 모두가 1인 1악기를 배워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며 "엘 시스테마처럼 지역 사회에 음악을 통해 마음의 행복과 삶의 윤택함을 전파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세상을 향해 훨훨 날자'...아이들은 자신감과 자존심을 되찾고 있었다.

또한, 센터는 30여명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밴드교실, 피아노, 현악, 사물놀이 등 문화활동을 비롯 독서논술 교실, 유학생봉사자의 영어캠프, 아동물놀이여름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성취감. 협동심. 창의력 향상을 위해 '오물조물 뚝딱' 프로그램을 개설, 냅킨아트, 목공예, 북아트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여권의 책이 마련된 '청보리 작은 도서관'을 공개, 아이들의 독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조현숙 센터장은 지난달 4일 발족된 (사)식생활교육음성네트워크의 상임대표로 선임되며, 광폭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식생활네트워크는 관내 유치원, 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 중 바른식생활 교육을 희망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학교 텃밭 및 농촌체험과정, 체험학교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조 센터장은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는 식생활교육이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때"라며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음성군에 식생활센터를 건립, 충북의 식생활교육을 주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했던가, 그녀는 자신만의 천리길을 천천히 가고 있었다.


■ 수상내역
·음성군수상
·충북사회복지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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