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과 순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무욕과 순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 고병택
  • 승인 2013.11.26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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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세 음성군장애인복지관 관장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歸天), 천상병

이승에서의 여행을 마친 시인은 1993년 4월 28일 그가 노래한 한 마리 자유로운 새가 되어 고문도 구속도 가난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푸르른 창공 먼 하늘로 날아갔다.

새벽빛이 비치면 사라지는 이슬은 순간의 존재이나 영롱하고 아름다운 삶이며, 노을빛으로 채색된 저녁 구름은 금시 떨어질 낙조속에 묻혀 버릴 존재이나 황홀하고 찬란한 인생 자체인 것이다.

역설의 논리, 지치고 고단한 삶도 시인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시인은 그가 당했던 세상에서 아무런 물질적 보상도 받지 못한 빈한한 삶이었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에 한 맺힌 울음만을 토해내도 부족할 거라고, 그래서 설움과 고통만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 그를 미루어 추측하지만 그의 심성은 외려 평온하고 담담하다고 작가 낭산(浪山)은 말한다.

무욕과 순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은 아름답다. 믿음과 기도와 희생의 사도, 전병세 관장의 또 다른 소풍길을 동행했다.

지난 20일, 관내 장애인에게 다양한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자립 생활능력향상을 도모하고 있는 음성군장애인복지관 전병세 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기억 속의 향기가 문득 스쳐 지나갈 때, 잊고 있던 사람의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듯 은은한 미소가 살갑게 다가온다.

지난 7월 5일 취임한 이래, 복지관의 새로운 비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병세 관장, “어려운 일이 많으시죠” 묻자, “늘 하던 일”이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우문현답이다.

연민과 포용으로 상처를 싸매는 전병세 관장, 그를 움직이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고귀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조부모, 부모님 모두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 모태신앙을 이어받은 전병세(57) 관장은 소이면 봉전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이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 청주로 이사하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청주 덕성초, 대성중, 청주상고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성미카엘 신학원(現 성공회대학 전신)에 입학,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다.

현양복지재단 지도 사제로 7년의 소임을 마친 그는 91년부터 대구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NCC 대구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목회자 정의실천협의회 대구지회장을 맡아, '미군 범죄자 한국법정 세우기 운동' 등을 국내 최초로 펼치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함께 웃고 울었다.

그 시절 “인간이란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끝까지 고귀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는 외침이 늘 그를 지켜 주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 후, 청주종합사회복지관, 부산시사상구종합사회복지관을 거쳐, 천안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을 역임하며, 장애인 복지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던 전 관장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 와, 축적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스스로 비하하는 일은 하느님에게 혼날 짓”

우연히 낚시 하던 중 한 손을 이용, 입으로 낚시 바늘을 묶는 장애인을 보면서 또 다른 감회를 느꼈다는 전 관장은 “장애는 작은 것 하나 잃은 것일 뿐, 장애인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해서, 이를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장애와 비장애는 생각의 차이일 뿐 생활 속에서는 모두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장애를 핑계로 스스로 비하하는 일은 하느님에게 혼날 짓”이라는 그의 말에 진정한 사랑의 향이 느껴진다.

실제로 복지관의 여성 장애인 자조모임 '라온제나'는 2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장애인들의 동반자를 자처하고 있다.

'즐거운 나'를 뜻하는 순 우리말 '라온제나' 회원들은 자신들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이겨나가는 모습을 통해, 신체장애자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며,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심어 주고 있다.

“장애를 아는 사람들이 장애인를 돕는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대목이다.

사랑으로 점철된 삶, 어려운 이웃과의 동행, 전병세 관장의 '아름다운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장애인의 웃음과 재활 열기로 가득찬 음성군장애인복지관, 아직 겨울이 멀리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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