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고난을 헤치며 힘찬 삶을 살아가는 음성읍 엄성한씨
장애와 고난을 헤치며 힘찬 삶을 살아가는 음성읍 엄성한씨
  • 오선영
  • 승인 2009.09.08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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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타인에게 힘을 주는 작은 거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수록 삶을 포기하고 싶어한다.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짐들이 하나씩 무게를 더할 때마다 세상에 대한 원망만 늘어가 살아갈 힘을 잃어가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모진 고난에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음성군 음성읍 교동의 엄성한씨(71)를 찾았다.

그에게는 따뜻한 보금자리일 작고 낡은 집에 들어서자 그의 고된 삶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체장애 6급인 엄씨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으나 장남 원진씨(32·신체장애 6급)와 막내딸 영진씨(26·신체장애 2급)가 장애인이다 보니 칠순을 넘긴 나이에 장애가 있는 몸으로 노구를 이끌고 생업에 뛰어들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집안에서 장애로 몸과 마음이 다치고 움츠려 든 자식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쉴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엄씨는 한숨을 내 뱉는다. 그 스스로의 장애보다 자식들의 장애와 상처가 더 큰 아픔으로 남아있음이 그의 한숨 속에서 기자에게 전해졌다.

장애를 대물림 했다는 자책감으로 엄씨와 부인 이모씨(74)는 아직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씨와 장남의 장애수당 6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엄씨가 새벽부터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수집 판매해야 한달에 모은 50만원도 채 안되는 금액에 부인 이모씨가 동네에서 허드렛일과 농사일을 도와주고 받아오는 삯과 기초노령연금 8만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자식들의 약값과 병원 치료비를 대다보면 엄씨는 하루 2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더군다나 분가해 있는 막내딸 역시 벌이가 마땅치 않아 틈틈이 엄씨가 들려 보살펴 줘야 하는 형편이다. 두 명의 장애인이 있는 가정임에도 이렇게 장애수당이 적은 이유를 묻자 한동안 연락이 안돼 애를 태웠던 둘째 아들 인진씨(28)의 벌이 때문이라고 한다. 인천의 한 공단에서 일하고 있다는 인진씨는 벌이를 가족에게 보탤만한 여유가 없어 따로 돈을 보내오거나 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 일이 족쇄가 되어 장애수당을 줄였다.

젊었을 때는 농사일도 돕고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근근히 먹고는 살았지만 84년 부상을당해 서울로 부산으로 살길을 찾아 헤매다 음성으로 오기까지 자식들의 약값과 병원비로 전재산을 소진하고 말았다.

음성에 터를 잡고 리어카 1대를 고물상에서 기증받아 폐지를 수집해 생계를 꾸리고 있었지만 폐지수집하는 사람들도 많을 뿐더러 폐지가가 낮아져 이마저도 생계를 유지하기엔 위태로워 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의 조언으로 요즘엔 희망근로사업에 나가고 있다는 그. 정말 그에게는 희망근로사업이 희망이라는 사람.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난과 역경을 무기로 관청에 가서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소리한번 질러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지원이 적은 것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굵은 땀방울의 가치를 알고 힘겹게 살아가는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는 한번 올까말까 한 고난이 그의 삶 내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하늘을 원망하기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높은 곳을 바라보기 보다는 낮은 곳을 바라보며 가진 것 없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며 기쁘다고 한다.

폐지수거 리어카를 밀고 다니다 혼자사는 노인들의 집앞에 어지럽게 놓인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기도 하고 폐지수거를 하며 골목길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그에게 길을 물으면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준다.

그는 이렇게 해야 그가 이곳에 살수 있게 하고 폐지더미에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빈병이나 폐지를 손수 집 앞에 가져다주는 마을주민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웃 주민 윤모씨(60·읍내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생활하고 있어 사정이 이렇게 딱한 줄을 몰랐다”며 “주위사람들과 상의해 생활의 보탬이 되도록 모금 활동이라도 벌야야 겠다”고 말하며 그의 딱한 사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봐야겠다고 전했다.

이처럼 힘든 그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이웃들의 사랑과 관심이었으며 그 스스로도 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물질적인 것은 못 나누지만 마음만이라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자식들을 위해 정직하게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며 세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하였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서 살만하다는 것을 엄성한씨와의 짧은 인터뷰로 새삼 느끼며 역경속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편안한 웃음으로 오히려 삶의 기를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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