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읍 사정1리 꽃길
음성읍 사정1리 꽃길
  • 고병택
  • 승인 2013.10.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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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을 타고…“넉넉한 고향을 후손들에게 선사”

▲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한 고즈넉한 꽃길
▲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한 고즈넉한 꽃길


사정리는 삼한때 온성읍(溫城邑)이었고, 드넓은 들은 온성평(溫城坪)이니 온수골로 전하고, 신라·고려 시대때는 금촌부곡(金村部曲)이었다.

퉁뱅이로 전해 와 조선에 이르러 모래 우물이 있어 사정(沙井)이라 하고, 묵어가던 원(院)이던 장신원(長信院)이 생겨 사정(沙亭)이라 이름하고, 안동김씨가 자리잡으며 집성촌이 되어 이름대로 금촌(金村)이다. 丁방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오늘날 사정(沙丁)이라 표기했다.

'음성군독립운동사'에 보면 충청북도 의병일지에 1896년 1월 22일, 제천의병이 단양에서 승전한 것을 필두로 이 해 6월 8일에는 제천의병진이 음성에서 전투했고, 1907년 9월 19일에 의병 약 200명이 충북 사정리에서 교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민들의 “동학군 320여 명이 와서 싸웠다”는 증언과 '동학난리묘'라고 전하는 5기의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에 싸우다 죽은 의병으로 여겨 진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의병의 넋은 이름조차 알 수 없다. '무명의 동학난리 의병묘'가 말없이 우리 앞에 앉아 있는 부용산 자락을 찾아갔다.

■ 석가의 왼편에 연꽃을 든다

떠난지 오십년에 고향이라 돌아오니/알던 사람 없어지고 눈 익은집 다 헐렸네/ 부용산은 말이 없고/봄 하늘은 저무는데/두견새 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누나/ 김연일 한시에서

'부용'이란 말은 연꽃을 말한다. 연꽃은 만다라화로서 성화(聖花)의 흰꽃이다. 불전(佛典)에 바치는 흰꽃을 성화라 하는데, 가섭산의 가섭사(迦葉寺) 왼편에 있는 이 산은 '석가의 왼편에 연꽃을 든다'하여 부용(芙蓉)이라 하였고, 왼편에 또 문수보살이 있다 해서 '문수봉'이라 했다.

'보현산' 역시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뜻하여 모두가 석가에 의한 이름으로 지어진 이름들이니 '가섭사'의 가섭불(迦葉佛)의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인가.

▲ 사정1리 주민들
▲ 사정1리 주민들


■ 후학양성의 전당 … 강당마을

강당마을은 한강의 상원지류를 앞으로 하고, 차령과 노령의 정기 어린 부용산 기슭에 자리잡은 안동김씨(安東金氏) 세거지(世居地)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모래톱에서 일정량의 물이 솟는 모래 우물이 있어 사정이라 하였다.

금소목이는 쇠를 다루던 곳으로, 신라때부터 통쇠로 농기구를 만들던 퉁뱅이들이 모여 살아 부곡이 형성되었고, 음성지역에서는 씨족이 마을을 이룬 가장 오래된 텃골로 문씨, 경씨가 부자소리를 들으며 살던 문경 텃골이었다.

안동 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의 18대손 군자감정 김혜께서 임진왜란 후 광해군이 등극하자, 불만을 품고 낙향하시어 터를 잡고 살면서 부락입구에 강당을 짓고, 후손들을 가르쳤다고 전해 진다.

1907년 동학 의병을 쫓던 왜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1939년 봄 현재 위치로 이전 개축하여 강당이라 하였다.


■ 검극(劍戟)을 나열한 사인암(舍人巖)

사인암은 사정저수지 제방 아래에 있는 절벽을 말한다. 깍아지른듯한 암벽에 기기묘묘하게 암석들이 병풍두른 듯 치솟아 있는 수목에 가려져 있다. 마을에서는 '생바위'라 부른다.

▲ 관상수 주목나무와 조화를 이룬 국화 꽃길이 이채롭다.
▲ 관상수 주목나무와 조화를 이룬 국화 꽃길이 이채롭다.
'음성군지'에 의하면 “사인암은 음성읍과 금왕읍 경계에 있는데, 그의 삭출(削出)된 돌의 형태는 천반(天畔)에 용기하여 검극(劍戟)을 나열한 것 같고, 그 모양이 삼열(森列)하여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하며, 경치가 장관이다”라고 해석해 놓고 있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은 좁은 골짜기라서 바람이 세게 불어, 지나가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 처녀음병

일명 '색씨음병'이라 한다. 문수골에 바위가 여근(女根)같이 생긴 곳에 물이 흘러 '음병'이 생겨 이름하였다.

또, 문수동에 예전에 사람이 살 때 여름이면 목욕을 하였는데, 색씨가 죽은 후에 목욕을 금한 후부터 색씨가 죽었다하여 '색씨음병"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광덕사지(光德寺址)와 지장사

사정리 마을뒤 부용산에는 예로부터 절이 있어 광덕사라 하였으나, 오래전에 폐허되어 터만이 전해 온다.

다만, 처녀음병에서 약 700미터 올라가면 절터경내에 '목없는 부처'라 불리는 '옛 광덕사 약사 여래상'이 있다. 콘크리트로 붙여 놓았다.

1970년대 음성군에서 독립가구를 철거할 때, 부처를 모시던 집이 있었는데 이때 집을 철거하고, 사정리에 사는 사람이 구덩이를 파고 부처를 묻었다가 1996년대에 한 주민이 인부를 사서, 다시 파내 놓았다고 전해 진다.

또, 처녀음병에서 올라가면 바위에 박힌 말발작이 있다. 임진왜란때 왜놈들이 광덕사에 올라가는데 말을 타고 올라 가다가 말이 바위에서 발작이 떨어지지 않아 말 발작이 생겼다고 전한다. 지금도 완연히 남아 있다.

지장사는 사정리에서 멀리 남쪽에 있으며, 절이 있는 이 골짜기는 가재가 많아 '가재봉골'이라 불린다. 혜현(惠玄)스님이 2000년도에 건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타임캡슐을 타고…주민들이 나서다

5백여년의 무구한 역사를 지닌 사정리 마을, 동네 곳곳의 지명과 전설이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다음 세대에 내려가면 그저 묻혀 버리고 잊혀질 것 같은 안타까움에 주민들이 역사, 과거의 타임캡슐을 열기 시작했다.

후세들에게 아름다운 고향을 물려주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모여, 탄성을 자아내는 꽃길이 조성된 것이다. 사정1리 진입로 양 도로변 약 2Km에 가을 국화가 만개해 있다. 56가구 11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동참한 꽃길에는 가을 국화 12000주가 심어져 있어, 보는 이들의 넋을 빼 놓고 있다.

올해 초, 마을기금 1500만 원을 투입, 국화 삽목을 구입해 '예산국화시험장'의 기술 자문을 받은 후 조성된 국화 꽃길은 주변의 주목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음성군의 '아름다운 음성가꾸기 평가' 사업과 관련, 모범사례로 추천할만한 이번 일에 마을주민들은 비료, 거름, 제초작업 등에 직접 나서며 손길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은 가을국화는 물론 봄에 개화하는 작약 260주, 주목 100주, 꽃잔디 2000주, 연산홍 800주 등도 식재, 살기 좋고 넉넉한 고향을 후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 “젊은이들이 고향에 터전을 잡기를”

▲ 남진원 이장
▲ 남진원 이장
남진원 사정1리 이장은 “내 집 앞을 가꾸어 보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마을 형편상 어려움도 많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 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지금 이대로 가면 10년후에는 마을의 존재도 불투명하다”며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증일(71) 꽃길 가꾸기 추진위원장은 “5백년을 이어 온 유서 깊은 마을을 사랑하는 어르신들이 힘을 모아 주었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다년생으로 식재, 매년 개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김증일 위원장
▲ 김증일 위원장
지난 2005년 사정향토편찬위원장을 역임하며, 사정리 역사 편찬의 주역인 그는 “후손들에게 귀향을 강요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며 “소득원 발굴이 최대 난관으로, 인삼, 고추외에 새로운 작목으로 국화재배를 시도할 계획”이라는 뜻을 피력했다.

김증일 위원장에 따르면 이번 '사정1리 꽃길 조성'은 단순한 마을 가꾸기가 아닌, 미래의 사정리의 청사진을 후손들에게 제시하는 뜻깊은 행보로 여겨진다.

임춘선 부녀회장, 이상혁 마을개발회장, 최용진 새마을 지도자 등 꽃길 조성의 주인공들은 “젊은이들에게 포근한 마을을 유산으로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도시를 벗어나 고향에서 터전을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라며 입을 모았다.

한편, 사정리는 긴 역사의 고장답게 각 가구마다 다양한 유물을 비롯, 상서문, 교지, 진사답안지, 주역, 상례요람, 연주시, 두시, 황석공소서, 간득정요 등 고서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중한 자료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전시공간 설립' 등 관계기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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