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주 변호사…‘三人行 必有我師’
조용주 변호사…‘三人行 必有我師’
  • 고병택
  • 승인 2013.08.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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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관내 유일의 변호사로, 사건에 대한 논리적 분석능력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10만 군민들의 사법적 권리를 대변하고 있는 조용주 변호사.

변호사의 도움이란 정작 소송이 진행될 때보다 그 이전 단계에서 더 중요하다는게 정론이다.

그는 열악한 환경속의 군민들에게 '단비'같은 존재로, 재야법조인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관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상징적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부친의 귀한 가르침…'三人行 必有我師'

소탈한 미소가 인상적인 조용주 변호사는 1962년 소이면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던 부친 조원식씨(78세)와 모친 서옥희씨(78세) 슬하에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적 부친은 자식들에게 훌륭한 조언자로써 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친은 '발 뿌리에 차이는 돌멩이에게도 배울게 있다'는 '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을 해 주며, 언제나, 누구에게나, 배우려고 노력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주길 원했다.

또한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잃지 않았다.

많은 교육을 받은 것도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도 않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며 기본과 원칙을 고수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그런 아버지를 늘 존경했다고 조 변호사는 회상한다.


소년, 꿈을 품다

소이초, 음성중, 청주고를 거치며 유달리 영특했던 조용주 학생, 그는 약한 사람들의 희망, 누군가의 소망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싶었다.

세상을 변호하는 일…간절한 꿈과 치열한 도전이 시작됐다.

1981년 단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그는 본격적인 사법시험에 매진, 수 많은 좌절과 시련을 접고, 10여년만인 1993년 '제35회 사법고시'에 합격, 인고의 닻을 내리게 된다.

외유내강, 불굴의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생 시절, 청풍 수몰지역에서 소이면으로 이사 온 처당숙의 소개로, 1994년 1월 1일, 6년 연하인 아내를 처음 만났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부인은 충주 출신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재원 김영순씨,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녀의 세레명은 '카타리나'.

자녀는 충주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딸, 무극중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 3돌을 맞은 늦둥이 막내딸, 이렇게 삼남매가 있다.


“반드시 고향에 보답하겠다”

1996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그는 낳고 키워 준 고향에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음성군을 관할하는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이 있는 충주를 근거로 '변호사 조용주 법률사무소', 2004년 '중원종합 법무법인 공동대표 변호사' 등을 역임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법원과 떨어져 있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음성군민들을 위해 반드시 고향으로 가겠다”던 그의 의지는 2005년 7월, 금왕읍에 사무실을 마련하며, 현실로 다가왔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음성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운영에 어려움은 없을까 걱정이 많았고, 업무상 법원에 다니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변호사 사무실이 가까이 있어, 사건발생 초동단계에 사건을 선임 받아, 그 때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 동안의 어려움을 모두 잊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고 담담히 전했다.

이와 관련, 조 변호사는 학교장 은퇴 후 과수원을 운영하다가 부동산매매 관련 계약서를 잘못 작성, 평생 모은 약 10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잃을 뻔한 의뢰인에게 새로운 약정서를 작성해 주어, 위기를 넘기고 재산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게 해 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소개했다.


2006년 지방선거 도전…소중한 성찰

지방선거에 당선하면 지역사회를 위해 폭넓은 기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이상적인 생각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 이를 계기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다는 조용주 변호사, “주어진 여건 속에서 변함없이 지역사회와 이웃에 기여하는 삶을 살겠다”며 말을 아꼈다.

현재, 조 변호사는 관내 5개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 음성군 기초정신보건심판위원회, 음성경찰서 집회시위자문위원회,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형사조정위원회 등의 위원으로 법률적 자문을 해 오고 있으며, 무극로타리클럽, 국제키비탄 음성클럽, 음성군 리틀야구단 후원회 등 봉사 클럽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라 했다.

음성지역의 차세대 핵심리더로 손꼽히고 있는 조 변호사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소탈한 웃음소리, 그의 미소가 싱그러운 바람으로 무더위를 날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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