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호 음성군 새마을 지도자 협의회장
지영호 음성군 새마을 지도자 협의회장
  • 유재윤
  • 승인 2013.02.26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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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남을 위한 스스로 우러나는 마음”

▲ 지영호 군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과 그의 부인 이효자 씨가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촬영하고 있다.
▲ 지영호 군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과 그의 부인 이효자 씨가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촬영하고 있다.


지영호(58세) 음성군 새마을 지도자협의회장은 요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14년 동안 새마을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깨달은 베품의 의미를 삶의 희망으로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음성군 맹동면 마산1리 현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90년대 중반 무렵이다.
고향땅에서 농사를 짓다 친척의 권유로 마산1리로 이사와 본격적인 수박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회장은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으며 동갑나기 부인 이효자 씨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지 회장의 이름 뒤엔 수많은 단체의 직함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닌다.
음성군 새마을 지도자 협의회장, 음성군 자율 방재단 부단장, 맹동면 자율방재단장, 맹동면 지역 개발회 부위원장,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음성군 지회 전 지회장, 음성군체육회 이사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으리 만큼 많은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봉사와 연관 되지 않은 직함이 없음을 우린 쉽게 알 수 있다.
지영호 회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4천 여평(30여동)의 수박 농사를 지으며 년간 1억여 원 이상의 농가 소득을 올리는 대농의 바쁜 일과 속에서도 그는 항상 봉사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지역 사회 발전과 지역주민의 복지편익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
그에게 봉사란 무엇인가 물었다.
그는 서슴치 않고 “봉사는 남을 배려하고 돕는 것, 남을 사랑하는 맘, 내가 조금 손해 보고 희생 하더라도 스스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남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처음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래도 마을을 위해 무언가 찾아 봉사하고 마을 주민을 위해 뜻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뜻에서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새마을 지도자 생활이 올해로 벌써 14년째 이며 그간의 열정을 인정받아 지난해 2월부터 3년 임기의 음성군 협의회장에 취임, 더 큰 봉사를 실천 하게 되었다.
약방의 감초란 말이 있다.
이는 음성군의 새마을 지도자협의회를 두고 한 말 같기라도 하듯 음성군 새마을 지도자 협의회는 활동이 많다.
매년 5월에 실시 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비롯하여 불우이웃돕기 행사, 사랑의 집고쳐주기, 독거노인 돌봐드리기, 음성군 꽃길 가꾸기 사업, 각종 축제 봉사, 장학금 지급 사업 등 약방에 감초가 필요하듯 음성군에 이들이 필요했다.
물론 이런 사업을 추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음성군 새마을 지도자분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 하고 있기 때문에 실시하는 각종 사업엔 인력이 딸려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많아 진짜로 자기의 희생이 따르지 않고 선 많은 어려움이 수반된다.
특히 이중에 연중 실시되는 음성군의 꽃길 가꾸기 사업엔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꽃길 가꾸기 사업의 시작이 영농철과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렵게 추진하는 사업이 결실을 보았을 땐 그 보람이 배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알기에 지영호 회장이 더 봉사에 열심인지도 모른다.
지영호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라.”
이는 순간부터 봉사의 기쁨을 알고 그것을 하지 않고선 자신의 인생이 편치 않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 자신 있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남을 위해 봉사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생업이 촌각을 다투는 식물을 다루는 일과 연관 지어질 땐 더욱 그렇다.
지영호 회장은 힘들고 지칠 때 마다 자신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같이 해주는 수 많은 동료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 땐 너무 바쁘고 힘들어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래 전부터 해 오던 자원봉사활동이 자신의 삶을 오히려 지탱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상(賞)이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봉사활동의 결실로 인해 그는 음성군수 표창을 비롯 소방방재청장 표창 등 수많은 수상으로 그간의 봉사활동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스물 네살의 젊은 나이에 시집와 지금껏 고생만 해 온 아내와 아빠의 사회생활로 별반 뒷바라지도 잘 못해줬는데도 불구하고 모나지 않게 자라준 아이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는 지 회장의 남은 희망은 협의회장 취임 관계로 중도 하차한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음성군 지회장으로서 못 다한 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봉사를 하고 싶음이다.
활달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리더쉽 까지 겸비한 지 회장의 마지막 남은 꿈, 가족과 가정이 행복하고 음성군 발전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 소박한 꿈, 그 꿈은 지 회장 자신의 영달이 아닌 음성군의 발전과 지역 주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한 또 다른 꿈이기에 우리 모두 그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 지기 위한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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