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남 평화통일자문회의 음성군협의회장

‘고향 발전의 꿈’ 평생 간직하고 사는 사람

2020-09-11     장병호
박희남

 

기골이 장대해 씨름선수로 충청북도 대회 출전 
최연소 군의원으로 당선 후 군의장 두 번 역임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뭐든지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있다. 박희남 회장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타고난 운동 감각 소유
음성군 대소면에서 출생한 박 회장은 두뇌가 우수해 초등학교 6년 동안 매년 학업 우수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선천적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유전적인 운동 감각을 타고 나 젊은 시절  대소면민 체육대회에 마을 대표 씨름 선수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면 대표로 군 대회에 출전하고, 또 군을 대표해 충청북도 대회에도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박 회장은 한창 운동을 할 때 몸무게가 110kg이 넘었으며, 450kg의 쌀가마도 들어 올릴 만큼 장사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고등학교 씨름부 선수로 활동하며 대학진학을 꿈꿨으나 집안이 너무 어려워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가세를 세우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다사다난한 인생 여정 
박 회장은 두루두루 안 해본 일이 없다. 논농사, 담배 농사를 비롯해서 수박, 오이, 참외 등의 원예작물, 약초와 맹동문 등까지 열심히 재배해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이후 박 회장은 광혜원으로 가 장사를 했다. 건어물에서부터 잡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서 도매업을 해 금왕과 진천, 감곡, 경기도 죽산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후 서울 용산시장과 연계해 충청 중부권 시장을 장악하는 사업의 전략가로서 성공을 가뒀다. 
사업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박 회장은 1984년 정치에 입문해 당시 전국 최초로 39세에 군의원에 당선돼 4선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는 중 군 의장을 2회나 역임했다. 

음성군 발전 위한 초석 다져
정치를 하는 동안 박 회장은 서울로, 청주로 개인 돈 써가며 발품을 팔아 음성군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무엇보다 국토관리청과 행정안전부를 직접 찾아가 ‘소도읍 가꾸기 사업’을 비롯 미호천 제방 사업 등 굵직한 음성군 사업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특히, 고향인 대소면에 근로자복지관과 체육관, 도서관 유치는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보기 드문 업적이었다. 하지만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음성군수에 출마했다가 낙선해 아깝게 뜻을 접은 후 정치에서 손을 뗐다. 

평통 음성군협의회장 취임
박 회장은 정치판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향 발전의 꿈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자나 깨나 음성군 발전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하고 있던중 지난해 9월 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 음성군협의회장을 맡게 됐다.
평통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조국의 민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확인한 후 제반 정책의 수립 및 추진에 관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자문하는 막중한 일을 맡아보게 된 것이다. 박 회장은 이 일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마지막 일로 생각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운동선수로, 농부로, 사업가로, 정치가로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서서 자기 인생을 가꾼 박 회장은 여생을 건강하게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부인 김유순(64) 씨와의 사이에 출가한 2남을 두고 있으며, 나이 들어서도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 하는 시대라며 염소 4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조만간 충북혁신도시에 염소식당을 차릴 계획이라고 귀뜸했다.  -장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