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씨
이양희 씨
  • 김진수
  • 승인 2012.05.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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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발전과 주민위해 봉사자로 살아온 반생, 지역사회 귀감

지난 2월, 대소면 연두순시에서 이필용 음성군수는 이양희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유는 20여 년간 오류4리 이장으로 재직한 그의 공로를 기린 것.
청원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후반에 안산마을로 들어왔다. 선친을 따라 들어온 그는 선친과 함께 농토를 일구며 어느덧 40여년 넘게 음성군민으로 살아왔다. 사실 그는 음성군민 토박이보다 더 뜨겁게 지역을 사랑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사실 그에게 지역 연고는 거의 전무한 편.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라곤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매사에 성실함과 헌신적인 자세, 당찬 일처리로 말미암아 지역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온 것.

그는 현재 오산4리 안산마을을 지역에서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일군 장본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안산마을은 52년 6.25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며 생긴 마을. 그가 처음 선친을 따라 들어왔을 때만 해도 마을 형편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었다. 당시 안산마을은 리어카만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따라서 주민들은 좁은 농로를 통해 면소재지나 외부로 출입해야만 했었다. 그만큼 안산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거주환경이 열악했던 형편. 그런데 그가 1992년부터 20년간 마을 이장일을 보면서 마을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마을 이장으로서 그는 면사무소와 군청, 심지어 도청까지 뛰어다니며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서 달려가 하나하나 사업을 유치해왔던 것. 그 결과 지금은 면사무소 앞 4차선 도로까지 700여m 구간을 8m 도로로 포장하였고, 마을 입구엔 시내버스까지 다니게 됐다. 또 방금이 마을까지도 도로를 시원하게 확포장한 것을 비롯해 농지정리와 함께 농로도 100% 포장을 마쳤다. 주민들은 이젠 어디든지 농기계와 함께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됐다.

이장을 맡기 전에 그는 새마을지도자로도 6년간 활동했다. 이장이 되면서부터 대소면이장협의회 총무(5년), 이장협의회장(3년)을 맡았다. 또 초대주민자치위원장(3년)으로 재직하면서 대소면주민자치위원회의 전반적인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또 그는 자연보호협의회 활동에도 다년간 활동했다. 12년간 대소면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년간 음성군협의회장으로 활동했던 것. 지금도 그는 개발을 위한 개발이 아닌 환경과 함께 하는 개발, 인간의 거주환경을 먼저 생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현재도 음성군 재난안전과 소속 대소면 안전모니터회장으로 또 다른 활동을 시작했다. 다시 그는 안전모니터요원들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 활동비 확보는 물론이고, 회원증발급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그는 밝힌다. 이를 위해 각 읍면 회장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고.

그는 1987년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농림부장관상 2회, 환경부장관상, 도지사상 3회, 군수상 4회 등 공로패(감사패 포함) 26개, 표창장 25개 등 51개의 상장 및 상품, 기념품 등을 수상했다. 그의 집에는 온통 그동안 그가 받았던 상장과 기념품 등으로 가득했다.
기자는 문득 그가 지역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역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그는 1980년도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농촌후계자 활동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당시 정당(민정당)원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
그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는 어떨까? 그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박희철 현 대소주민자치위원장이 사석에서 기자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 친구 양희는 정말 적극적이고, 진솔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사심없이 지역사회와 마을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박희철 씨는 친구를 따라 이장협의회장과 주민자치위원장을 하고 있다.

그의 가정을 들여다보자. 그의 집 현관에는 가훈이 기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생각하고 봉사하는 가정” 그의 인생철학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 그는 설명한다. 지역과 주민들에게 도움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최선을 봉사하겠다고. 그는 부인 임백호 여사 사이에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아들 재성 씨 역시 대소시내에서 생활하며 대소면 자율방범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그는 며느리(박지애)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는다. 참 생활력 강하고 당찬 며느리가 있어서 든든하단다. 그의 사위는 의왕시청에서 근무하기도.
그는 지역 활동 때문에 가족들에게 소홀했다고 자평한다. 부인이 그런데도 남편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준 것에 고마워한다. 사실 그의 말처럼 가족에 대해 소홀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아들 부부 사업을 위해 두 손주(의권, 승주)를 데리고, 매일 거르지 않고 통학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 듬직한 손주 의권 군은 할아버지가 참 좋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남은 여생도 지역이 필요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할 것이며, 특히 가정을 위해 자식들이 잘되도록 후원자로 살겠다고 말한다.

혈압이 높아지고 당 수치가 올라갔다는 그는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면서도 일을 손에 놓지 않는다.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 곁에, 그리고 지역에서 오래도록 활동할 수 있기를 기자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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