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향곡(香谷) 이규환 선생
서예가 향곡(香谷) 이규환 선생
  • 김진수
  • 승인 2012.04.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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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추사체 연구 1인자, 백야산방에 거처를 삼다

“할 일 없이 밥충이로 살아온 세월이 70년. 해놓은 것 없고 이룬 것은 없구나. 하지만 그래도 지나치기 아쉽기만 하다. 기운생동하는 작품은 못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 일점일획에 정성을 들여 몇 작품을 만들었다. 매화향 그윽한 백야산방 매원에서 강호제현들을 모시고 하루라도 함께 즐기고 싶구나. 부디 왕림하셔서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주시길…” --향곡 이규환 세 번째 전시회, '매화꽃 향기와 묵향의 어울림' 초대글 --

금왕읍 백야리 백야자연휴양림 입구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자리잡은 매화농원 800여 평엔 매화꽃이 울긋불긋 만발했다. 이른바 백야산방. 여기서 지난 22·23일 양일간 서예전시회가 열렸었다. 국내 추사체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서예가, 향곡 이규환 선생의 칠순 기념 전시회가 열린 것.
향곡 선생은 금왕읍 내곡리 출신. 쌍봉초등학교 출신으로 한때 4-H 운동을 하며, 음성군 연합회 부회장까지 맡으며 활동하기도 했다.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을 가라. 고난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가라.” --향곡 선생의 작품, “立志” 내용--
이 글귀처럼 그는 뜻을 세우고 상경을 한다. 그러나 한학자인 선친(貴石 이희영 선생)으로부터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한 그는 10년 정도 개인사업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서예에 뛰어들었다. 그는 한국미술연구회 초대작가, 재단법인 국제문화협회 초대작가 등에 선정됐고,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을 비롯해 다양한 경력을 쌓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최고위과정 강사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35년 넘도록 서도(書道)의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것도 추사체 연구에만 전념해온 것.

여기서 잠깐, 추사체에 대해서 알아볼까! 우리 고유의 정서를 담아 기백 넘치는 추사체를 창안한 추사 김정희 선생. 선생은 조선후기 실학자이며 서예가로서 시·서·화 등에 뛰어난 예술성으로 조선 후기 문화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가 중국에서 배운 고증학과 금석학은 당대에 매우 혁신적인 사상으로 평가받았으며,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사상의 실천을 이끌어 냄으로써 동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최고 문인으로, 국내를 넘어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추사체가 워낙 난해한데다 선생 작품이 서예연구용법첩으로 출간된 건 없고, 작품집이나 전시회가 모두 감상용에 그쳐왔었던 것. <향곡가훈집>을 낸 향곡은 이에 추사체에 관한 4개 저서, <이위정기:추사법첩>, <추사선생서결첩>, <집자(集字)추사체천자문>, <사란기(寫蘭記):추사법첩>를 발간했다. 이 4권의 저서는 추사체를 배우려는 서예인에게 큰 도움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얼마 안 있으면 추사 선생의 시 300수를 담은 시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기자는 재빨리 미리 한 권을 부탁했다.

현재 그는 향곡추사체연구회 이사장, 향곡서예원 원장, 한글추사사랑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성과로 그는 대한민국 사회교육문화상(1992년), 9회 해범예술대상(2000년), 세계평화예술상(1999년), 세계평화교육상(2000년)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쌓았다. 현재 성남에서 주로 거주하는 그는 서울 가락동에 '향곡추사체연구회'와 서실 '향곡서예원'을 운영한다. 그동안 30여 명의 제자들을 양성한 그. 제자들 중에는 중견 서예가로서 서예계에서 영역을 구축한 이들도 있다고. 이것이 바로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 아닌가? 그는 선생으로서 엄격하게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항상 그는 서예(書藝)가 아닌 서도(書道)를 강조한다고. 제자들 가운데는 장관, 장군을 비롯해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지만, 그의 서실에서는 오직 선생과 제자, 선배와 후배만 존재한다. 특히 음주 상태로는 절대 서실에 들어오지 못하는 엄격한 규율을 지켜오고 있다. 그에게서 까칠할 정도로 꼿꼿한 선비의 기품을 기자는 엿보았다.
“내 본시 남만 못하야 하온 일이 전혀 없네. 활쏘아 한 일 없고, 글읽어 이룬 일 없다. 차라리 강산에 물러와 밭갈이나 하리라.” --향곡 선생의 작품, 작가 미상의 시, '내 본시' 내용--

그는 15년 전 귀향을 준비하며 백야산방 땅을 매입했다. 당시엔 길도 없는 산비탈이었다고.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작년에 휴양림이 들어서면서 환경이 좋아졌다. 8년전부터 목요일에서 일요일에는 백야산방에서 생활해오는 그는 작년에 휴양림 개장에 즈음해 전시회를 열었었다. 또 몇 년전부터는 품바축제마다 제자들과 함께 '무료 가훈써주기'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를 아는 고향 지인들로는 민병대 금왕농협조합장과 쌍봉리 송위식 씨 등이 있다. 기자는 이번 작품전시회에서 그들과 대면할 수 있었다. “고향을 평생 지켜온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그. 그도 고향이 소중하고, 고향 사람들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

잠깐 그의 가족 얘기로 넘어가보자. 아내는 박춘희 씨. 박 씨는 서각인이다. '현도원'이 아호라고 소개하는 박 씨는 남편의 글을 서각으로 옮기는 한편,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서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에도 박 씨는 작품을 몇 점 전시했다. 그의 외아들(종웅)도 원광대학교 서예과에서 공부했다. 3대에 걸쳐 한학과 서예를 전공한 셈. 이번 전시회 제목 글은 종웅 씨가 썼다. 그는 앞으로 아들과 함께 전시회를 갖는 것과 아내와 함께 서예·서각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란다.

개인적으로 한학자인 선친의 작품을 보존하지 못한 것과 선친이 일가견을 보였던 시조(단가)를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그. 선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자 했던 향곡 이규환 선생. 그의 곁에서 부인 박씨는 “남편과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제자들에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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