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모 푸른초장농원 대표
성의모 푸른초장농원 대표
  • 유재윤
  • 승인 2011.08.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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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는 이유가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깡패 짓을 계속 했으면 돈은 많이 벌었을 텐데 돈 안 되는 농사에만 매달려 청춘을 다 보내고 농업을 등한시하는 군 의원이 미워서 농민대표라는 간판 걸고 농업을 위해 일하고 싶어서 군의원에 출마했다 낙선도 해본, 그러나 중앙정부에서 하달되는 획일적 농업정책이 아닌 지방정부에 맞는 농업정책을 이끌어 내는 농민운동가가 되고픈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농사꾼, 원남면 하당리 푸른 초장 농원 성의모 대표가 오늘 우리가 만날 여기! 이사람 주인공이다.

거침이 없었다. 마치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듯 막힘 또한 없었다.
독설도 서슴치 않았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인 듯 보였다. 강하고 곧은 성격에 자신에 대한 안티가 많다는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농정에 대해 쉼 없이 토해내는 그의 독설은 굳이 학창시절 학생운동을 선도하던 이력이 아니더라도 미루어 짐작 할만 했다.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출신으로 하당초와 한일중을 졸업하고 청주 유학길에 올라 학교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방송통신고를 졸업한 후 25살의 늦깍이 나이에 청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 서슬 퍼렇던 군부 독재시절에 학생운동을 리드하며 세월을 풍미하던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진 성의모 대표가 농사꾼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 였다.

성 대표의 어릴 적 꿈은 정치인이 되는 것 이었다.
어릴 적부터 전 국회의원이셨던 고 김완태 의원 댁에서 숙식하며 생활해온 탓에 자연스레 정치인과 접하게 되었고, 그런 생활이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남들은 4년이면 졸업하는 대학을 6년씩이나 다니며 받은 훈장(?)덕에 취업도 제한 되고 레미콘 회사와 양계업, 음식점 경영 등 이런저런 일들을 해보다 이도저도 마땅치 않아 호구지책으로 선택한 길이 농사꾼의 길이었다.(사실은 농업이 너무 좋아서)
1995년 뒤늦게 고추 전업농의 길로 뛰어들어 고추농사에 매진하다 99년 태양초 고추 전문건조장을 건립하고 농민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국최초의 'gochu'라는 도메인을 등록 한 뒤 그해 9월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고, 태양초 고추건조 매트를 개발하여 제조사인 (주)유광을 설립, 양산하여 판매하다 유사 모방제품이 판치는 바람에 부도의 어려움도 겪어가며 2010년 토마토 농사로 작목을 전환, 2005년 시작한 절임배추 판매와 함께 연간 약 2억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 과학 농업인이 되었다.

농업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은 참으로 남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상과제는 '농민을 위해서, 농업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성 대표는 검은 말을 타고 가든 흰말을 타고 가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그것이 농업인을 위한 길이라면 개의치 않겠다고 주저 없이 말할 만큼 농업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공업 군이 아닌 농업 군에 살면서도 농업과 관련된 음성군 조례를 만드는 의원이 하나도 없고 농업을 위해 일하는 의원이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열 받아서 농민대표라는 간판을 걸고 농업을 위해 일하고 싶어서 군의원에 출마했다가 농민들도 농민을 찍지 않았던 선거판에서 고배를 마셨으면서도 오로지 농민을 사랑하고 농업을 사랑한다는 성 대표는 진정한 이 시대의 농사꾼이었다.
고추의 주산지에서 고추를 재배하는 농민으로서 고추농민의 절대소원인 태양초 건조기술을 개발하여 건조기술의 사고전환을 가져오게 한 것이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보람이었다는 성 대표는 앞으로도 농업발전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70년대의 농민운동이 먹고 살기 위한 운동,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농민 운동이었다면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접어든 농업은 성공한 농민이 농업을 이끌어 가는 모델을 제시해 왔고, 2010년 이후 현재의 농민운동은 농업정책을 이끌어가는 농업운동가가 필요한 시대라고 역설하며 중앙정부에서 내려오는 획일적 농업 정책이 아닌 지역의 실정에 맞는 LOCAL식 농업정책의 틀을 정립하는 농민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태양초 건조매트 사업의 실패로 부도의 어려움 속에서도 “춥고 배고프다는 것이 핑계가 되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좌우명을 되새기며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며 오늘의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성의모 대표.
그러한 실패가 오히려 삶의 전환점이 되어 항상 나보다는 남을 위해, 낮은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성 대표.
가정보다는 항상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가정문제에 너무 소홀한 것 같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자상함까지 갖춘 성의모 대표는 지역 언론이 살아 숨 쉬어야 지방자치가 건강해진다며 언론의 감시가 두려운 사회가 아니라 언론의 감시가 즐거운 꿈같은 세상이 되길 기원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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