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학 충청북도 교육의원 당선자
장병학 충청북도 교육의원 당선자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0.06.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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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 Talk! 열한번째 손님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당당히 압승하며 충청북도 교육의원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장병학 前 음성교육청 장학사. 교육비리 척결! 무상급식 실현! 사교육비 경감! 이 세 가지 대표 공약을 내세워 음성·진천·청원·괴산·증평 5개군에서 고른 득표율을 보이며 선전한 장병학 당선자를 어렵게 취중토크 자리에 초대했다.
최연소 한국교육자대상, 충북의 별, 단재교육상, 전국연구대회 1등급 2회 선정, 모범공무원, 황조근정훈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특별상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상경력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그이지만 그만큼의 명예를 얻기까지 그가 교육자로서, 학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고뇌도 있을 터였다.

Q 우선 교육의원에 당선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사실 일반인들은 교육의원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이런 분들을 위해 간단히 교육의원의 역할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A 교육의원은 도내 유·초·중·고등학교의 교육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감사기능을 겸하고 있어서 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의 교육비리 척결에도 앞장서게 됩니다. 교육청이 하는 일에 협조도 하지만 잘못된 일이 있으면 시정을 요구하는 등의 견제 역할도 하게 됩니다. 책임과 책무성이 강하지요.

Q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저는 어렸을 때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옛날에는 담임선생님 하면 거의 신적인 존재 아니었습니까?
여담이지만 어렸을 때 도청 앞을 지나가는데 한 점쟁이가 “학생 이리와 봐” 하고 불러요. 이름을 묻기에 “잡을 병자에 배울 학자입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그분이 “학문을 움켜쥐니 나중에 선생님이 되시겠구먼” 하시더라구요. 아직도 그 말이 뇌리에 스쳐요.

Q 유년시절은 어떠셨나요?
A 그 땐 너무 가난했습니다. 비단 저희 집 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엔 모두가 힘들던 시절이었습니다. 책보에 도시락을 싸매고 개미저리에서 10리 길을 걸어가면 어느새 김치국물이 새서 책이 다 젖고, 하교 길에 뛰어갈라 치면 책보에서 도시락 소리가 짤랑짤랑 나고 도시락은 곰보가 되고 말아요.
지금도 무명옷에 고무신 신고 그 때 뛰어다니던 논둑길이 눈에 선하고, 등 뒤에서 짤랑거리던 도시락 소리가 아직도 아득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몇 년을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제법 체력이 길러진 모양이에요. 그 때의 체력으로 지금껏 큰 병치레 없이 지내고 있답니다.

Q 고향은 어디신가요?
A 정확히 이야기 하면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Q 음성에서도 교직생활을 오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A 음성 수봉초와 삼성초에서 교감으로 재직했고, 음성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했습니다.

Q 약력을 보니 농고를 졸업하셨던데 농고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텐데요.
A 진학반이 따로 없었을 뿐더러 그 시절에는 대학에 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라 공부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저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버님께 대도시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버님께서 “네가 장남이고, 또 집안 사정이 어려우니 그냥 지역에 있는 학교에 다니거라”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서운하긴 했지만 어쩔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내가 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농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수업이 실습 위주였고 모내기 할 때는 일주일씩 수업을 안했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와서 진학공부를 따로 해서 청주교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Q 그럼 초임지는 어디신가요?
A 진천군 덕산면 옥동초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개미저리라는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지요. 제대 후 복직해서 1년쯤 근무하다가 이월면의 학성초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Q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연애결혼 하신 건가요?
A 옥동초에 근무할 당시 집사람이 그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첫눈에 들어오더군요. 당시 옥동초에 총각선생님이 다섯 분이나 계셨는데 제가 피아노를 좀 잘 쳤거든요. 아마 그래서 집사람도 저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았나 싶어요. 1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학성초에서 근무할 때 결혼했습니다.

Q 시인으로, 수필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다방면으로 소질이 많으신가 봅니다. 노래도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A 예. 그러지 않아도 '이영남 장군'이라는 곡을 요청해와 악보를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 작곡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보고 싶습니다.

Q 교장선생님까지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제자들이 있으신가요?
A 40년을 교직에 있었으니 제자들이 많습니다. 사시에 합격해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제자도 있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제자에,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제자 등 학생이 많다보니 별의별 아이들이 다 있습니다만 그 중 어느 누구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습니다.

Q 제자들을 만나시면 뿌듯하시겠어요.
A 그럼요. 사실 이번 선거에서도 제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5개 군에서 교편을 잡고 일을 하다 보니 제자들도 각 지역에서 힘을 보태 주었고,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잘 알다보니 학부모들과의 공감대 형성도 쉬웠고, 무엇보다 그분들이 용기를 많이 북돋워 주셨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발로 뛰었습니다.

Q 지난 이야기지만 이번 선거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A 처음부터 발로 뛴 것이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20번씩 간 지역도 있는데 그곳 상인들이 이제는 그만 오셔도 된다며 제 이름을 외쳐 주시는데 선거운동 기간 내내 힘들었던 일들이 싹 씻겨 나가는 듯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4개군에서 골고루 표가 나와 주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장 선생님 하면 교육연구 및 교육공로분야에서 수많은 포상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논문 중에도 글짓기와 일기지도를 통한 교수법의 효용성에 대해 강조하셨는데 이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A 저는 평교사 시절은 물론 교장이 되어서까지 전교생의 일기지도를 직접 했습니다. 저의 일기지도 방법은 '주제일기'였는데 아이들에게 주제를 하나씩 주고 그에 대한 일화나 감상 등을 육하원칙에 의해 쓰도록 합니다. 그것이 바로 논설문이 되는거죠. 국어 순화는 물론 아이들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하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덕분에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이 일기들을 모아 학교 문집이나 신문 등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지요.
지금도 학생과 학부형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기지도를 하면서 아이들과 직접 상담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Q 선생님께서도 글을 쓰시지 않습니까?
A 그게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도 등단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시인으로, 수필가로, 그리고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저 역시 공부를 많이 한 셈이지요.
요즘 열린 교육이니, 창의성 교육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를 위해 독서와 글짓기 교육만한 것이 없어요. 글의 구성력이나 변별력 등을 체계적으로 길러주면 다른 효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해력이나 판단력은 물론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저의 큰 보람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작은 문집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긍정적이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Q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될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들을 하시는데요, 그렇게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글쎄요. 아무래도 안팎으로 내실을 기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좋은 평가를 내려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교사는 분명히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전문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Q 앞으로 어떤 교육의원이 되고 싶으신지.
A 이렇게 막중한 책무를 맡기셨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겠지요. 직접 현장에 찾아가는 교육의원이 될 것입니다. 특히 각 지역별로 지역 특성화를 홍보하는데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Q 지금도 그러시겠지만 사실 교사라는 직업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 아니겠습니까?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시는지.
A 스트레스 많이 받지요. 사람 일이라는 것이 늘 평탄치만은 않아서 고저가 있게 마련입니다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일수록 더 마음을 가다듬고 전진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좌절했다면 저 역시 오늘날의 영광 없이 그냥 교장으로 끝났을 겁니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뛰어야지요.

Q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있으시다면?
A 도산 안창호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를 길러주신 여러 은사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분들은 제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십니다. 저 역시 그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Q 사실 지난해 충북의 교육수준이 전국 최하위권 아니었습니까? 충북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우리 충청북도는 열심히 하는 지역입니다. 뭐든지 하면 상위권에 링크되는데 작년엔 치명적이었지요. 다행히 교사와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준 덕에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이 분위기가 이어져야 하는데 한 계단 올라서서 다음 계단을 올라서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이제까지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교직사회의 갈등이 너무 심해요. 좋은 점은 적극 수용해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분열이 너무 심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불화가 생기기 일쑤입니다.
학생들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학부형들과 학생들은 너무 혼란스러워 합니다. 첫 번째가 교직원들 간의 단결과 화합이요, 다음 과제는 학부모 교육입니다.
인성교육 차원에서 학부모는 교사를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아이들을 한둘씩만 낳다 보니 내 자식만 귀한 줄 압니다. 아이를 조금만 나무라면 바로 전화가 와요. 학부형들의 지나친 간섭은 교사들이 학생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제 누가 아이들을 교육시키겠습니까? 젊은 학부형들의 지속적인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Q 이제껏 교육계에만 계시다가 정계에 입문하셨는데 선거운동 하시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A 느낀 점이 많지요. 처음엔 저도 밖에 나가 명함 한 장 못 내밀었어요. 한 달 쯤 지나니 기왕 내가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임했습니다. 선거를 치르면서 인생 공부를 다시 했어요. 지금은 지역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도 있구요.

Q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A 흐르는 물은 절대 썩지 않는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지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못당하는 법입니다.

Q 만약 선생님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A 어제 아침에도 개미저리에서 옥수수를 심고 왔습니다. 아침 일찍 땀을 흘리고 나면 모든 잡념이 사라져요. 농고를 나온데다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고, 또 작물 키우는 것을 좋아해요. 선생이 되지 않았다면 농부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지난번엔 수박대학도 마쳤답니다.

Q 40년간을 교단에 서서 강의를 하셨는데 후회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A 저는 이제까지 초등교사가 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선생 하면서 연구논문 많이 쓰고, 큰 상 많이 받고, 아이들 가르쳐 보람 얻구요. 저는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Q 후배 교사들에게 해 주실 말씀 없으신가요?
A 교사로서의 직분을 성실히 이행하는 선생이 되어 주길 당부하고 싶습니다. 교사는 전문직입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몰입해야 합니다. 온 정성을 다해 가슴으로 가르치면 안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어른이 돼도 선생님을 잊지 못할 겁니다. 교사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학부형과 학생, 나아가 지역사회로부터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Q 학부형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겠죠?
A 내 자식도 중요하지만 더 넓은 우리라는 테두리를 봐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나보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아는 아이들, 사랑과 믿음이 있는 아이들, 양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들로 길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님들의 의식 전환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내 아이의 단점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다른 아이들의 장점을 칭찬하고 사랑을 베풀어 주셔야 합니다. 이 일은 오직 우리 학부모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Q 4개군을 대표하는 교육의원이신데 군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
A 부족한 저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충북교육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옳고 그른 것 밝히고, 지역에 적극적으로 예산 배정받을 수 있도록 의정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론 원하는 일이 뭐든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데 까지 해 보고, 그래도 안 될 때에는 불신의 소지가 없도록 충분히 이해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뛰는 교육의원 장병학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술자리는 이래서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술잔을 들지 않아도 술잔을 앞에 놓고 마주하고 있으면 상대의 마음이 은은한 술의 향기를 타고 서로의 가슴에 전해지는 것 같다. 막상 진천 교육계의 어른을 만난다는 부담감은 어느새 오랜 지인을 만난 것처럼 편안해졌다. 아마도 이런 곳이 교육자로서의 오랜 연륜에서 비롯되어진 사람을 다루는 노련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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