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동 음성군수 권한대행
권영동 음성군수 권한대행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0.03.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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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 Talk! 아홉번째 손님


지난 2008년 7월 1일 제15대 음성군 부군수로 부임해 음성군의 살림을 맡아 온 권영동 음성군수 권한대행은 풍부한 행정경험과 탁월한 업무 추진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시기의 군정을 행정공백이나 대과 없이 안정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다. 또한 충청북도 경제투자본부 투자유치 팀장 출신답게 지역경제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부임 초부터 적극적인 투자유치 활동으로 유수의 기업체 유치에 성공하며 음성군을 중부권 핵심 공업군의 반열에 올려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어려운 시기에 군수 권한대행과 부군수 역할을 병행하느라 하루 해가 늘 짧기만 하다고 이야기 하는 그이지만 그 짧은 시간을 쪼개 1인 2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Q 음성군에 부임하셔서 1년 6개월이라는 기간을 부군수로서 안살림을 챙기셨고 이후 군수 권한대행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맡으셨는데 일에 대한 부담이 컸으리라 생각됩니다만.
A 업무 자체는 대동소이한데 다만 주민들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을 뿐입니다. 결재 업무야 이전에도 제가 하던 일이니 어려울 것은 없지만 대민업무가 잦은 군수와 부군수의 역할을 병행하려니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Q 부군수는 권한대행이 따로 없으니 그럴 만도 하시겠네요. 과중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텐데.
A 공직에 입문한 지 40년이 다 되가는데 무슨 일인들 안 겪어 봤겠습니까? 제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이제 연륜도 있고 경력도 있으니 큰 일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지요. 특별히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지는 않지만 저녁이 되면 체력이 소진되고 맙니다. 9시 쯤 집에 들어가면 뉴스 좀 보다가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 5시면 일어납니다.

Q 정확히 공직에 입문하신 지 얼마나 되신 거지요?
A 1971년에 도청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으니 39년이 됩니다.

Q 오랜 기간도 그러려니와 그간 보여주신 업무능력을 보면 당연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어울리시는데요.

A 달인이라는 표현은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도청에서 쌓은 다양하고 풍부한 행정경험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음성군 자랑을 좀 해 주시지요.
A 음성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땅입니다. 당연히 군민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고장입니다. 우선 음성군의 자랑은 잘 갖춰진 복지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타 시·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지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복지 수준이야말로 지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라고 봐야지요.
또한 음성군은 성공적인 농공병진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관내에는 1,800여 개나 되는 유수의 기업이 입주해 있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9개 읍·면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수도권과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3개의 고속도로가 지역을 관통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밀한 수도권의 기업을 유치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미 기반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강점을 십분 활용한다면 우리 지역이 비약적인 발전을 취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농업 분야에 있어 우리 음성군은 이미 선진 농업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성 청결고추, 햇사레 복숭아, 다올찬 쌀, 음성 인삼 등 명품브랜드 육성에 힘써 농업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미국시장에 고춧가루를 수출하는 유일한 지역이 우리 음성군입니다. 지난해에 미국 H마트와 계약을 맺고 연간 18억 원어치의 물량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고춧가루에 대해 5번의 품질검사 끝에 음성고춧가루가 그 품질을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음성군은 축복받은 땅입니다.

Q 특별히 하시는 운동이나 취미활동 같은 것은 없으십니까?
A 등산을 즐기는 편입니다. 20년을 산에 완전히 빠져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여기 부임해 와서는 거의 가지 못했습니다. 20년 간 등산으로 쌓아 온 체력을 요즘 다 소진하고 삽니다. 이제 곧 등성이마다 붉은 철쭉이 흐드러지게 필 텐데 아쉽네요.

Q 어린 시절은 어떠셨는지?

A 저는 어렸을 때 가족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4남 3녀 중 큰 형님이 79세가 되셨고 제가 지금 60인데 그 사이에 누님만 다섯 분이 계셨어요. 20년 만에 아들이 하나 더 생겼으니 집안 어르신들도 그렇고 형님이나 누님들도 저를 귀여워해 주셨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위로 누나가 다섯이나 있다 보니 댓살 때 까지만 해도 누나들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컸어요. 그리 못 사는 집안은 아니어서 끼니 걱정은 안하고 살았어도 옛날엔 지금처럼 물자가 풍족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광목에 물을 들여 입는 것이 전부였고, 또 그것을 형제들이 물려 입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Q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A 그 시절은 농촌에 살면서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여유가 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전란으로 모두가 어렵던 시기 아니었습니까? 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집안 농사일 거들면서 자기 능력껏 가는데 까지 가는 거지요. 옛날 어르신들 말씀 중에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에서건 열심히 하다 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Q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A 집사람과 남매를 두었습니다.

Q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A 저는 중매결혼을 했습니다. 이조시대처럼 아버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했어요. 아버님이 20년 동안 딸만 네 명을 시집보내시다 보니 섭섭한 게 많으셨나 봐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공직에 복직하자마자 결혼을 재촉하시더군요. 아버님이 집사람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Q 그럼 사모님은 아버님이 소개해 주신 건가요?

A 사촌 매형이 아버님께 소개를 했는데 결국 아버님 의사였습니다. 당시 집사람이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민원인을 가장해서 동전 바꿔 달라,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하셨나 봐요. 성격 테스트를 해 보신 거지요. 그리고는 하루 종일 민원실에 앉아서 이 사람이 민원인들에게 어떻게 대하나 지켜보시고는 상당히 흡족하셨나 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선을 보러 나오라고 하셔서 나갔더니 집안 어른 몇 분이 함께 앉아계시는데 얼굴만 보고 빨리 날을 잡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날 오신 어르신들에게 의견을 여쭸더니 모두 찬성을 하시지 뭡니까? 그래서 저도 그 자리에서 '그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2개월 만에 약혼하고 이후 4개월 있다가 결혼했습니다.

Q 공직에 입문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아주 우연한 기회였습니다만 그것 역시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만 해도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일반적일 때였는데 저 역시 그랬어요. 벤치에 앉아서 군대를 갈까, 아니면 공부를 계속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을 보니 마침 벤치에 누군가가 보다가 놓고 간 신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앞사람도 저와 같은 고민을 했었나 봅니다. 신문에 공무원시험 공고가 났는데 거기 체크가 되어 있더군요. 내용을 보니 마침 제가 공부한 과목과 중복되는 부분도 많고 해서 저도 시험을 보게 된 것이지요.

Q 그럼 처음부터 충북도청에 근무하신 건가요?
A 그 때는 특정 부서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자신이 희망하는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학업을 마저 마치고픈 욕심에 충북을 희망했더니 충북도청으로 발령이 난 것입니다.

Q 공직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요?
A 일반적으로 공직자가 느끼는 보람이라면 자기가 정책을 입안해 확정됐을 때, 그 때가 가장 큰 보람이겠죠. 그리고 저의 경우 최근의 일이라면 음성부군수로 부임해 오기 전까지 충청북도 경제투자본부 투자유치팀장을 맡아 취임 후 '경제특별도 충북 건설'을 도정 최대 목표로 내세운 정우택 도지사와 함께 투자유치를 위해 전력투구했던 기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핵심적 업적을 쌓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보람이 큽니다. 음성으로 부임해 올 때까지 17조원을 유치했습니다.
15조 원 유치를 달성했을 당시 투자유치 사례집을 발간했는데 15조 원을 만 원짜리로 환산해 그 길이를 계산했더니 지구를 다섯 바퀴 반이나 도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더군요. 당시 동아일보에 경제특별도의 초석을 다진 야전사령관으로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Q 그만한 능력이 있으셨으니 정 지사가 신뢰하고 일을 맡기신 것 아니겠습니까? 능력도 그렇지만 운도 상당히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A 모든 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운이 좋다는 표현은 남들이 좀 더 알아주는 위치에 올랐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관운이 좋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 두명 정도 승진하는 어려운 케이스에서는 꼭 제가 승진을 하게 되더군요.

Q 운도 좋으셨지만 무엇보다 준비된 인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아니겠습니까?
A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공직도 팔자인 것 같습니다. 왜 하필 그 벤치에 앉고, 거기에 신문이 있었는지. 그 길로 공직생활로 접어든 것 아니겠습니까? 시험 보고 나서 합격했다고 이야기 했더니 가족들이 믿지 않더군요. 3월에 시험을 보고 6월에 대전으로 면접을 보러 가는데 남들은 정장을 빼 입고 왔는데 저만 청바지에 핑크색 티셔츠, 운동화 차람으로 갔어요.

Q 공직생활을 안했으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A 상과 출신이니 전공 살렸다면 은행원이나 회사원이 되어 있겠지요.

Q 공직을 택한 것을 후회해 본 적 없으십니까?
A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팔자려니 생각하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 하려 노력 합니다. 어떤 일이건 후회를 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Q 본인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업무 추진 스타일을 보면 강한 편인것 같기도 하구요.
A 강하다기 보다는 판단이 섰을 때 밀어 붙이는 편이지요. 의지가 굳은 편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Q 음성군의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사업은 뭘까요?
A 음성군의 가장 시급한 현안사업은 교육문제의 해결입니다. 지난해 '교육강군 5개년 계획'에 착수해 교육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음성군민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현대중공업을 방문했는데 음성군에 주민등록을 한 직원이 얼마나 되나 파악해 봤더니 음성 30%, 청주 40%, 충주 30%라는 겁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녀들을 보낼만한 학교가 음성에 있느냐? 음성에 있는 어느 학교를 보내야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느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길로 돌아와 착안한 것이 교육강군 5개년 계획입니다.

Q 솔직히 파격적인 교육정책에 저도 좀 놀랐습니다. 십여 년 전 옥천군에서 '내 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을 범 군민 운동으로 벌였던 적이 있습니다만 실패한 케이스가 있었거든요. 이유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애향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거지요. 이번에 서울대에 간 학생 담임에게도 상당한 인센티브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A 잠재력이 있는 학생이 있다 하더라도 교사의 열정이 더해지지 않으면 그 학생은 클 수가 없습니다. 그만한 인센티브가 있어야지요.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 유수의 학교를 찾아 벤치마킹하고, 재원을 확보하고, 교육관계자와 학부모들을 찾아 다니며 사업설명회를 하고, 설득 작업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완성한 것이 바로 교육강군 5개년 계획입니다. 그 사업에 별도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음성군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 주셨고 협조해 주셨습니다. 음성군의 1년 예산이 3000억 원인데 그 중 사회복지 예산이 600억 원입니다. 예산의 1%를 교육사업에 투자 못합니까?
아시겠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우수한 아이들은 대도시로 빠져 나갑니다. 아이들이 나가면 부모는 당연히 따라 가야지요. 언제까지 이 악순환을 거듭해야 합니까? 누군가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년도부터 상위 5% 이내의 학생들을 관내 고교에 보내는 학교에는 교육환경 개선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수한 학생들이 관내로 진학을 했고 우수한 아이들을 위해 종로학원의 강사들을 초빙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몇 년 후면 우리 음성군 관내의 학교도 명문학교로 발돋움 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문제만 해결된다면 음성군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씨를 뿌리고 가겠습니다. 튼실한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지원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6·2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군들이 모두 교육정책을 내세우시더군요. 현재로서는 학부모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사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지역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Q 공직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지요.
A 저는 직원들에게 반드시 업무에 관련된 법규를 한 번씩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전임자가 하던 일만 답습한다면 절대로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관련법규는 수시로 바뀌는데 실수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에게 업무연찬을 늘 강조합니다.
동기들끼리도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앞서가게 되어 있습니다.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지역 실정에 맞는 시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끝없는 자기계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음성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A 저는 음성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를 받아주시고 협조해 주신 음성군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감사함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행정 공백 없이, 큰 사고 없이 군민 여러분의 도움으로 오늘까지 군정을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군민 여러분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셔야 할 때입니다. 음성군은 모든 여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튼튼한 건물을 올릴 훌륭한 지도자를 음성군민들께서 선출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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