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수 전 청주시 부시장
임택수 전 청주시 부시장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22.01.31 11:0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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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민들의 ‘행복지수’ 높이는 단체장 될 것

 

임택수(59) 전 청주시 부시장은 음성군 금왕읍에서 출생한 음성 토박이다. 무극초, 무극중학교를 졸업하고 신흥고를 거쳐 충북대 졸업후, 19913월 청원군 남일면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후 199411월부터 19년 동안 중앙부처인 내무부,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 등에서 근무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27개월 동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후 지난 20132, 고향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충청북도로 내려와 음성군 부군수, 충주시 부시장, 충북도청 재난안전실장, 청주시 부시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오는 6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음성군수로 출마하기 위해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임 부시장을 본지 이상훈 대표기자가 만나 막걸리 한잔 하며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Q 요즘 아침마다 피켓들고 대선 운동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신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A 저는 긍정적인 성격이라 당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대선운동이라고해도 음성 군민들을 만나는 시간이므로 저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시는 군민들만 봐도 보람이 커서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Q 금왕읍이 고향이신데 어린 시절에 대해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A 제가 태어난 곳은 읍내와는 그리 멀지 않은 금석리 윗돌모루입니다. 당시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 마을이라 호롱불을 밝히며 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는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때 육성회비도 제 때 못내 수업도중에 집으로 쫓겨 온 것도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이웃집에 돈 꾸러 다니셨던 모습이 생각나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천부지를 일궈서 밭뙈기라도 만들려고 돌맹이를 줍던일도 있었지만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Q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저희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안하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제 기억에 남는 것만 해도 아버지가 하신 일이 나무장사, 금광광부, 농부, 산불감시원, 중장비 기사 등 7가지가 넘습니다. 대부분 큰돈을 버는 일은 아니었고, 열심히 일해서 그 대가를 받는 정도였지요.

저는 지금도 수제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한 달 동안 일한 후에 봉급대신 밀가루 한 포대씩 받아와 그것으로 자주 수제비를 해먹다보니 질려버린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Q 형제 중 맏이라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무감도 컸을 텐데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저는 24녀중 맏이인데 제 밑으로 초,,고 동생들이 줄줄이 있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포기하고 장학금 때문에 국립대인 충북대를 선택하게 됩니다. 저희 마을 선배님들 중에 공부를 잘해 대학교수가 된 분들이 계셨는데 저희 부모님은 항상 우리는 배우지 못해 힘들게 살고 있지만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옆집 자녀들같이 대학교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어릴 때부터 대학교수가 되는 꿈을 갖고 공부와 독서에 집중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Q 공직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A 대학 졸업 후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난 후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그 무렵 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하시면서 부득이 제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공직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는 부친과 친지들의 권유로 충청북도에서 시행하는 공채시험에 응시해 합격해서 공직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Q 공직에 입문하신 후 주로 어느곳에서 근무하셨나요?

A 저는 19913월 청원군에서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199411월부터 19년 넘게 내무부, 행정자치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에서 근무했습니다.

그후 20132월부터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향 발전에 보탬이 된다는 마음으로 충청북도에 내려와서 관광항공과장, 음성부군수, 정책기획관, 충주부시장, 충북도 재난안전실장, 청주시 부시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경제부처인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 과장으로재직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습니다.

 

Q 대다수가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데 오히려 중앙에서 잘나가시다가 지방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처음부터 중앙 부처로 올라가면서 많은 경험과 인맥을 쌓고 배워 20년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고향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앙부처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데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Q 공직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A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제 나이 42세부터 27개월여 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수개월 동안 지연되던 대통령 지시사항을 제가 다시 받아서 부처협의 등을 거쳐 이지원이라는 전자결제시스템으로 대통령께 보고 드렸었는데 며칠 후 새벽녘에 보신 후 고생했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이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대통령비서실 최초로 청년들을 인턴으로 선발해서 채용했던 일, 비서실 우수 직원으로 선발되어 다른 수석실 소속 행정관들과 함께 2007년도 봄에 동유럽 5개국 기업체에서 연수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당시 같이 근무했던 분들 중에는 국회의원, ·차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Q 3개 시군에서 부단체장을 하셨는데 부단체장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섬김과 소통이죠 지방자치시대의 단체장은 정치인이면서 행정가 입니다. 부단체장이 내부의 일을 잘 맡아서 감당해야 서로 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부단체장이 내부에서 악역을 맡아서 업무를 완벽히 챙겨줘야지 인기관리만 하고 있으면 단체장이 마음 놓고 외부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떤 비판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단체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직원들로부터 까다로운 부단체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Q 주민들 중에는 선거 때만 잠시 내려왔다가 선거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퇴직후에는 어머님 소유인 금왕 고향 땅에 집을 짓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수년 전부터 제 처와 이미 상의를 끝낸 상태라 선거 후에도 반드시 고향을 지키며 고향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Q 군수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고심이 많으셨을 텐데 그 과정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50세 이후에는 매스컴에서 음성이나 금왕이 나오기만 해도 고향이 그립고 무언가 하고 싶은 의무감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심하던 중에 지인들과 고향 선후배들이 진심으로 고향 발전을 원한다면 이번 지방선거에 음성군수로 출마하라는 권고를 많이 해주셨고, 여러 당 관계자들로부터 입당 권유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당의 정체성이 저와 맞고, 현 군수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므로 이와 맞서기 위해서는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민의힘에 입당한 후 음성군수로 출마할 것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Q 군수가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음성군은 지방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경계지역에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잠재적인 발전기능성이 무궁무진한데도 불구하고,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급속히 쇠퇴해 가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속하게 문제점을 진단해서 해결하고, 음성군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키워나갈 수 있는 정책과 방안이 필요합니다.

지금 음성군에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미래의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 결정에 대한 경험 많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제가 군수가 되려는 이유는 평생 중앙부처에서 약 20, 지방정부에서 11년간 근무 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로지 고향 발전을 이루고 싶기 때문입니다.

 

Q 가족들에 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A 80대 중반이신 어머니와 4살 차이가 나는 처 그리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저의 처는 현재 고양시청 사회복지직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제가 29살 때 첫 직장인 청원군에 함께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근무 부서가 달라 알지 못한 채 지내다가 훗날 처삼촌이 된 팀장님이 정식으로 소개해 결혼하게 됐습니다.

결혼 당시에는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등과 함께 살아야 해 제 처가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지금까지 30년 동안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살고 있습니다.

 

Q 존경하는 사람과 인생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저의 아버님입니다. 부자도 아니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지만 아버지가 남겨주신 사상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사람은 돈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바르게 살아라’ ‘공직자로서 돈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셨습니다.

저 또한 그 가르침대로 가급적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고 살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외에는 땅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Q 음성군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고향인 음성과 고향주민들의 관심과 배려 덕에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의 영위보다는 우리지역 음성군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가 보다 더 좋은 꿈을 가꾸고 실현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육 발전에 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지역 내 고등학교들을 더욱 향상시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음성군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종합병원이나 교통편의 등 정주여건도 크게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음성군을 만들어 다음 세대는 행복지수가 최고인 음성군이 자랑스럽다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음성군수로 출마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코로나로 모두 어려운 시기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대담·정리 = 이상훈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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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음성 2022-02-14 20:45:19
좋은 음성 만들어주세요. 화이팅입니다

최순복 2022-02-09 22:19:01
항상 응원합니다.~

아녜스 2022-02-09 10:43:33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