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평 전 금왕읍장
구자평 전 금왕읍장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22.01.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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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을 전국 최고의 지자체로 만들 것”

 

구자평 전 금왕읍장은 금왕읍에서 출생해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지역 발전을 주도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ROTC 출신으로 육군 대위로 예편한 후 공채로 음성군 공직자로 입문해 감곡면장, 맹동면장, 금왕읍장, 대소면장, 보건행정과장, 세정과장 등 34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다. 퇴임 후에는 음성군 내 봉사단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금왕라이온스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2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윤석열 후보 국민 캠프 충북선대위 수석부위원장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무려 1800여 명의 군민을 국민의힘에 입당시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Q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A 금왕읍의 가난한 농가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고추와 담배 농사를 했는데, 바쁠 때는 책보를 들고 밭에서 일하다가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그 당시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음성군은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고교 시절의 힉교생활은 어떠셨나요?

A 몸집이 크지 않아 비교적 조용히 지낸 편이었으며, 학업성적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사귀는 걸 좋아했고, 상당히 사교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어릴 때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어릴 때는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복을 입은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국가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Q 그래서 군인이 되셨군요.

A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만, 그보다는 당시 농가의 형편상 자녀들을 다 대학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 ROTC를 지원해 장교로 복무하게 된 겁니다. ROTC 출신들의 복무 기간은 일반적으로 24개월이면 끝납니다만 저는 54개월 동안 복무한 후 대위로 예편했습니다.

Q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A 결혼은 1987년 군 복무 중에 했습니다. 우연히 친구들의 모임에 갔다가 그곳에서 지금 아내를 만나게 됐습니다. 유난히 눈에 띄어 마음에 두고 있다가 교제한 후 결혼하게 됐습니다.

Q 그럼 프로포즈를 하셨겠군요?

A 사실 제가 결혼할 때는 프로포즈가 뭔지 잘 알지 못하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프로프즈를 하지는 않았지만 교제하다가 서로 마음이 합쳐져 결혼했습니다.

Q 공무원이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결혼한 지 3년 만에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보니 이미 나이가 30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일반 직장에 입사하기에는 늦은 나이기도 하고, 저와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한 끝에 음성군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Q 공무원 시험 준비는 힘들지 않으셨나요?

A 많이 힘들었습니다. 결혼하고 자녀까지 둔 상태라 생활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음성시장 통에 문방구를 차린 후 평상시는 주로 아내가 운영했고, 바쁠 때만 제가 도와주면서 인근에 있는 음성도서관에 가서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Q 공직에 입문하신 후 어디서 근무를 시작하셨습니까? 그리고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공채로 공직자가 된 후 첫 근무지는 금왕읍이었습니다. 부서 이름이 자주 바뀌어 지금의 부서 명칭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자치행정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기억에 남는 일은 직원 후생복지 차원에서 40세 이상의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직원종합검진을 처음 실시한 것입니다. 그 결과 몇몇 직원들에게서 조기 암이 발견돼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현재 공무원노조의 전신인 공무원 직장협의회 발기위원장으로 직장협의회를 창립한 것이 기억에 남고, 팀장이 된 후에는 음성군이 배출한 세계적인 인물이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님을 기념하기 위해 1회 반기문 마라톤대회를 창설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Q 음성군 내 여러 지역에서 읍·면장을 하셨는데 어느 지역에서 근무하셨나요?

A 승진해서 감곡면장으로 나간 후 맹동면장, 금왕읍장, 대소면장을 지냈습니다. 음성군 9개 읍면 중 4개 읍·면장을 지냈지요. 이후 다시 군청에 들어가 보건행정과장, 세정과장으로 근무한 후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Q 그럼 음성군 관내 사정에는 누구보다 밝으시겠네요? 재직기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보람된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A 음성군 내 곳곳에서 읍·면장을 지내다보니까 지역 사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재직기간 중 보람 있던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특별히 몇몇 가지는 잊혀 지지 않습니다.

감곡면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지역의 명물인 원통산(寃慟山)의 한자 이름이 원통해서 슬피운다는 뜻을 가진 게 이해가 안 돼 고문헌을 찾아본 결과 이 이름은 일제시대 때 붙인 이름이며, 원 명칭은 원만하게 잘 이루어진다는 뜻인 원통산(圓通山)임을 알게 돼 정부에 요청해 개명한 일이 있습니다.

또한, 이웃한 이첨시 장호원읍과 감곡역사 위치 문제로 다툼이 있을 때 온 면민들과 힘을 합쳐 감곡면으로 역사를 유치한 것은 큰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감곡면을 떠나 맹동면장으로 부임했을 때 감곡면 주민들이 맹동면까지 찾아와 감사패를 전달해 주셔서 무척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한, 축산분뇨처리시설 문제와 면사무소 앞 도로가 막혀 교통이 혼잡했던 것을 해결해 주민들의 생활 불편을 해소시킨 것도 기억에 납니다.

금왕읍장 시절에는 금왕읍과 생극면을 가로지르는 응천에 산책로를 조성해 주민들에게 건강증진과 휴식공간으로 돌려드렸습니다. 민원이 많이 제기된다는 소식을 듣고, 응천에 나와 보니 응천 주변으로 잡초가 우거져 있어 주민들의 통행이 어려운 데다가 뱀이 눈에 띄기도 했으며, 하천변은 쓰레기로 뒤덮여 있어 너무나 지저분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주민 생활에 많은 불편을 끼칠 것으로 보여 군에 예산 지원을 요청한 후 본격적으로 응천정비사업을 실시해 무성했던 잡초와 수목을 제거하고, 마침내 왕복 3Km에 달하는 산책로를 조성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주민이 건강 증진을 위해 이곳을 이용하게 되면서 응천 산책길은 금왕읍이 자랑하는 지역 명물이 됐습니다. 됐습니다.

그러자 금왕읍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향토시인들이 인사차 방문해 금왕읍 관내 22개 자연마을을 각 시인이 하나씩 맡아 마을의 서정과 향토성을 담은 시를 쓴 후 시비를 세우자고 건의해 와 산책로 중간 중간에 시비를 세워 응천산책로를 걸으면서 시를 감상하고 애향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시 향토시인들의 권고에 따라 제가 금왕읍에 관련해 지은 시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또한, 도로의 경계석 턱이 높아 보행약자와 장애인 등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금왕읍 전체를 조사해 30여 곳의 경계석의 높이를 낮춰 보행약자들의 불편을 해소했습니다. 이 일로 여러 분의 장애인들의 감사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대소면에 가서도 똑같이 시행해 같은 효과를 거둔 바 있습니다.

Q 음성군청에 다시 돌아가 공직생활 마지막을 마무리하셨는데, 그때 기억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A 대소면장을 끝으로 다시 군청으로 돌아와 보건행정과장직을 맡았습니다. 어느 곳에 가서도 마찬가지지만 부임해 가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곳이 주민들의 애로점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건소 청사에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보행약자들이 이용하기가 어려운 것을 보고 즉시 승강기 설치 방안을 마련해 승강기를 설치했습니다.

또한, 수십년 간 지역 숙원사업이었던 중동보건진료소 신축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진료소가 개소할 수 있도록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Q 지난 2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하셨는데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셨나요?

A 금왕읍장으로 있을 때부터 지역 주민들의 권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정치하겠다는 생각이 크지 않았습니다만, 공직 퇴임 후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분의 권유를 받게 됐고, 저 스스로도 지역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나서게 됐습니다.

Q 군수에 출마하시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음성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 시 군의 부러움을 받을 만큼 전국 최고의 지방자치 단체로 우뚝 서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그 위상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웃에 있는 진천군은 수도권 내륙선 유치에 성공했으나 음성군은 감곡에서 혁신도시를 거쳐 청주공항을 잇는 중부내륙철도지선 유치에 실패했으며, 대기업 유치를 외쳐댔지만 현대엘리베이터도 인근 충주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더구나 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인구감소지역 105곳에 음성군이 그 이름을 올린 것은 군민들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습니다. 이런 우려가 저로 하여금 군수로 출마하도록 자극했습니다.

저는 군수가 되면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군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군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서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워 음성군을 전국 최고의 지자체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일을 하기 위해서 저는 음성군수로 출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음성군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 있을까요?

A 2년여 동안 코로나 19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특히 소상공인들의 고충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이번 선거에서 음성군에 꼭 필요한 일꾼을 선택해야 합니다.

음성군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음성군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사람이 나서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 이름을 알렸다고 해서 음성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음성군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남다른 애향심을 가지고 3남매를 키우면서 한 번도 음성을 떠나지 않은 채 33년간이나 음성군을 지켜오고 있는 진짜 음성인입니다.

진정으로 음성군을 사랑하는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음성군을 발전시켜 나가 음성군을 군민들이 행복한 지역으로 반드시 만들 것을 약속합니다.

겸손한 성품을 가진 구자평 전 읍장으로부터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걸리 잔을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서 점점 마음에 담겨진 얘기를 꺼내놓았다.

결코 자기 자랑이 아닌 지역을 사랑하는 공직자로서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또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공직자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진정성 있게 전해줌으로써 대화를 나누는 시간 동안 많은 감동을 가져다 줬다.

대담·정리 = 이상훈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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