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 용 음성군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이 건 용 음성군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21.12.02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민의 등대가 되겠습니다”

“베푸는 성격” … 사회복지협의회서 헌신
직원들 처우 개선
절체절명 사명감 느껴

이건용 회장이 현판 옆에서 ‘복지 음성’을 향해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이건용 회장이 현판 옆에서 ‘복지 음성’을 향해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1946년 온 나라가 광복의 기쁨을 누리던 해, 그는 태어났다. 어려선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근면과 성실 하나로 집안을 일으켰다. 기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감당했지만 불의의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과거에 얽매여 그림자처럼 살기보단 지역과 주민을 위한 삶으로 승화시켰다. 팔순을 바라보며 새로운 인생을 써 내려가는 집념의 남자, 그가 바로 이건용(75) 음성군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이다. 파란만장 이 회장의 인생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가세 기울어 더부살이 삶

이건용 회장은 소이면 대장리에서 5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대장초교(3)를 졸업하고 음성중학교(12) 2학년 때 아버지를 지병으로 잃고 말았다. 가세는 기울어 소년 건용은 음성읍 큰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집에 쌀밥을 먹는다 해도 내 집만 하라. 큰집 사촌들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자식들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해야지어린 건용은 다짐, 또 다짐했다. 그래서일까? 부인 정원희(73) 여사 사이에 2남을 두고, 장남 원재(43)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 다시 의학을 공부해 지금은 전북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남 영재(40)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 재직중이다. 이 회장은 청주농고(50)를 거쳐 건국대 축산대학(17)를 졸업했다.

 

일벌레 축산인으로 우뚝

이 회장은 대학 졸업 후 큰아버지의 권유로 음성에 내려와 사업을 도왔다. 밤낮 없이 일했다. 근면과 성실 하나로 버텼다. 부인 정 여사가 근무했던 회사 사장은 청년 건용의 태도를 보고 자신의 여직원을 중매할 정도였으니 주변에서 그의 칭찬은 자자했다. 그렇게 청년 건용과 정원희는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다. 결혼 후 전공을 살려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소 한 마리 가격은 30만 원. 10두를 구입해 3개월 키우고 70만 원에 되팔았으니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후에는 송아지를 구입해 1년을 키우고 판매하면서 큰 수익을 얻게 됐다.

 

운수업에 뛰어들다

축산인으로 성공한 이 회장은 삼화운수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운수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의 나이 50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축산인의 삶을 이어갔다. 주변의 권유로 축협 조합장선거에 나서 내리 4번을 단독 출마해 무투표당선 되는 기록을 남겼다. 16년간 축협을 이끈 후 지인들의 간곡한 권유로 군수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야속한 운명이어라. 하늘은 그에게 쉼을 원했던 걸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잠시 인생무상에 잠긴다. 이내 입을 연 이 회장은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하지 못해 군민들께 너무 죄송스럽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울컥하며 쏟아냈다. 이어 아내에게 정신적 고통을 줘 너무 미안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내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며 한없는 아픔의 시간을 되짚었다.

 

사회복지로 제2 인생

쓰라린 고통 속에서 무려 10년 간 운둔생활은 이어졌다. ‘이래선 안 된다그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꼭꼭 잠겨뒀던 문을 박차고 나왔다. 베푸는 것을 좋아한 그는 지인의 권유로 음성군사회복지협의회에서 봉사하게 됐다. 3년여 협의회 이사로 헌신하다가 안병호 전 회장과 이사들의 권유로 회장직을 맡게 됐다. 당시 협의회는 건물 4층에 위치해 있어 고령자와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했다. 이 회장의 노력으로 신천휴먼시아아파트 부근 2층으로 옮겼다. 3년의 임기를 마친 이 회장은 연임돼 지난 10월부터 새로운 3년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 임기에는 어떡해서든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각오를 되새겼다. 이건용 회장은 “70 평생 눈보라 속 어려운 여건을 지나왔다. 지난날을 거울삼아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자식들에게 자랑스런 아버지로 남고 싶다특히 아내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는데 그 상처가 치유되도록 열심히 살겠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건용 회장이 현판 옆에서 복지 음성을 향해 사랑의 하트를 날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