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택 수 청주부시장
임 택 수 청주부시장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21.12.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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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음성 사람 임택수(58) 청주시 부시장은 1991년 3월 청원군 남일면에서 7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1994년 11월부터 19년 동안 중앙부처인 내무부,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2년 7개월 동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지난 2013년 2월,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향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충청북도로 내려와 음성군 부군수, 충주시 부시장, 재난안전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제부처인 국토교통부 혁신도시 발전추진단 과장으로 재직 한 바 있다. 앞으로는 개인의 영위보다는 고향인 음성군 발전을 위해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음성 사람 임택수 청주시 부시장을 이상훈 대표가 만났다.(편집자 주)
  

 

Q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A 지난해까지 충북도 재난안전실장으로 있다가 금년 1월부터 청주시 부시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지난해 초부터 계속되는 코로나를 조속히 극복하고 시민들에게 일상을 돌려드리기 위해 4,200여 청주시 산하 전 직원들과 함께 코로나 피해업종 지원대책 마련, 방역현장 점검, 예방접종 독려 등에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Q 그간의 공직생활을 소개해 주세요

A 저는 19913월 청원군 남일면에서 7급으로 임용된 후, 1994.11월 부터 19년 정도를 내무부, 행정자치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대통령비서실,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에서 근무했습니다.

지난 20132월부터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미력하나마 고향 발전에 보탠다는 마음으로 충청북도에 내려와서 관광항공과장, 음성부군수, 정책기획관, 충주부시장, 재난안전실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경제부처인 국토교통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 과장으로도 재직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습니다.

지난 31년여의 공직생활을 되돌아보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고요. 젊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안전부 등 다양한 기관에 근무하면서 만난 뛰어난 인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40대 초반,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재직 시, 보고 배운 경험과 인맥은 고향인 충북에서 공직생활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 고향에는 자주 오시는지요?

A 1992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을 떠나, 경기 고양시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지 못하나 할아버님과 아버님 산소가 고향에 있고, 친구들의 애경사도 있어서 매년 수차례씩 찾고 있으며,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행사개최를 못했으나만, 그 전까지는 모교인 무극초, 무극중학교 총동문회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Q 고향 음성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A 제가 태어난 곳은 지금은 삼형제 저수지와 도로 확장으로 없어진 금왕읍 금석리 윗돌모루로서 읍내와는 멀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중학교 입학할 때 쯤 아랫마을로 이사 가서야 전등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썰매타고 뒷동산의 산토끼도 쫓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도 있습니다만, 초등학교시절 육성회비를 제 때에 못내서 수업도중 집으로 와서 돈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던 기억과 함께 우리 6남매의 등록금을 낼 때면 이웃집으로 돈을 꾸러 다니셨던 어머니 모습과 초등학교 졸업할 때 쯤 아버님이 가족부양을 위하여 1년 정도 사우디에 기능공으로 나가 계셨는데 글을 잘 모르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수시로 아버지께 안부 편지를 썼던 일들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Q 어린시절의 추억담과 꿈은 무었입니까?

A 초등학교 다닐 때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육상반에 뽑혀서 수업마치고 용담산 계단을 몇 번이고 뛰어야 했던 것과 오늘의 꽃동네를 있도록 한 최귀동 할아버지가 저희 동네까지 동냥하러 왔던 일도 마치 어제처럼 생각납니다.

제 원래의 끔은 대학교수였습니다. 저희 고향 동네에 공부 잘하는 선배들이 몇 분 계셨는데 부모님께서 항상 우리는 배우지 못해서 힘들게 살고 있으나,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옆집 누구누구와 같이 교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그런 꿈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Q 공무원이 된 동기는?

A 당초에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군복무를 마친 1988년에 공부를 계속하려 했습니다만 아버님의 투병 등으로 취업해야 했고, 공익을 위하여 일하라는 부친과 친지들의 권유로 충청북도에서 시행하는 7급 공채시험에 응시하였고,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Q 공직생활 동안에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27개월여 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수개월 동안 지연되던 대통령 지시사항을 제가 다시 받아서 부처협의 등을 거쳐 이지원이라는 전자결제시스템으로 대통령께 보고 드렸었는데 며칠 후 새벽녘에 보시고 고생했다고 칭찬을 받았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고요

대통령비서실 최초로 젊은이 수명을 인턴으로 선발, 채용했던 일, 비서실 우수직원을 선발되어 다른 수석실 소속 행정관들과 함께 2007년도 봄 동부유럽 5개국의 기업체 등을 연수했던 일도 그 당시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당시에 근무를 같이하였던 분들 다수가 국회의원, ·차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또한, 오랜 이야기이지만 1997년에는 내무부 본부 직원 중 매년 직급별 1명씩만 선발했던 올해의 내무공무원으로 뽑혔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재난실장 재직시인 지난해 음성, 충주, 제천 등 북부지역 폭우피해의 조속한 복구를 위하여 재난특별지역 선포, 복구비 확보를 위해 밤새운 일, 음성품바 축제를 전국축제로 성장하는데 작은 도움이 된 노력도 기억에 남고 있습니다.

 

Q 미래 음성군이 갈 길은?

A 음성군은 사람으로 말하면 허리와 같이 수도권과 충청권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잠재적인 발전기능성이 무궁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다른 지역이 부러워하는 중부권 핵심성장축으로 성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수인재를 적극 발굴해서 키우고, 첨단산업을 많이 유치하는 동시에 군민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정주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공직생활의 신조와 인생관은 무엇인가요?

A 몇 해 전 한 언론에서 저를 탱크형 리더쉽을 가졌다고 평가해 주셨는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맡은 바는 앞장서서 꼭 이루려는 의지를 가지고 일해 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가 한 일이 후배들에게 누가되지 않도록 서산대사님의 踏雪野(답설야)”가 주는 교훈을 마음에 담아 경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는 고향인 음성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관심과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영위보다는 우리지역, 우리나라를 이끌 다음 세대가 보다 더 좋은 꿈을 가꾸고 실현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Q 취미는 무엇이며 즐기는 일은 무엇인가요?

A 걷기와 배드민턴을 좋아합니다. 중앙부처 근무시절인 50대 초반까지는 10여시간 넘게 걸리는 설악산, 지리산 종주등반을 연간 수차례 하였고, 부처 배드민턴 동우회 활동도 활발히 했습니다만, 요즘은 멀리가지 못하고 도내 인근 산을 매월 1~2회정도 6~8시간씩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즐기는 일은 없는데 활자로 된 것으로 보면 읽으려고 합니다. 요즘은 지역 출신이신 반숙자 선생님의 빛나지 않는 빛이라는 수필과 곰므리치가 지은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습니다.

 

Q 가족을 소개해 주세요

A 80대이신 어머니, 고양시청 사회복지직 팀장으로 일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아이는 반도체회사에서 둘째는 요리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Q 퇴임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A 젊었을 때는 못사는 집이 싫어서 무작정 고향을 떠나고 싶었습니다만, 퇴임이 얼마남지 않은 시기가 되니 어릴 때 떠나온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습니다. 퇴임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인근 대학이나 복지시설 등과 연계하여 강의, 사회봉사를 하면서 초, 중학교 친구들과 막걸리 한잔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Q 고향 군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코로나와 최근에 발생한 AI로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시는데요. 하루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 되도록 희망을 잃지 마시고 굳건한 마음으로 함께 노력해 주시고, 연말을 맞이하여 모든 가정에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대담 / 이상훈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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