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준 경 음성군 부군수
이 준 경 음성군 부군수
  • 장병호
  • 승인 2021.04.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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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 예술이다” … 정부예산 발굴 전문가

 

이준경 부군수가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준경 부군수가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조병옥 군수 보필하여 음성발전 초석 될 터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 중심 창발적 업무 추진

 

정부예산 발굴의 전문가로 자타가 평가 하는 이가 있다. 30년간 충북도 주요 부서 경험을 바탕으로 음성군청 부서와 9개 읍면을 소통과 협업으로 능동적이며 유연하게 이끌고 있는 이가 있다. 코로나19를 신속하게 대응하며 중앙부처와 충북도를 오가며 음성군 발전을 위해 혼신의 열정으로 몰입하는 행정경영 예술인 이준경 부군수를 만났다.

 

적극적 활동가

1963년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에서 출생한 이 부군수는 광덕초, 괴산중, 청주 운호고를 졸업하고 당시 수재들이 찾던 청주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교어린이회장으로 선출되어 운동장 조회 시는 늘 아이들 앞에서 구령을 붙이곤 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 연식정구 선수로 활동하는 등 타고난 운동 소질이 있었다.

 

동력 저축하며 자기애 쌓아

1989년 공무원 공채에 합격, 괴산군 청안면에서 공직의 길을 시작했다. 1992년 충청북도 전입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며 더 높은 도청 공직으로 이어갔다. 총무과, 농정과, 기획관실, 자치행정과, 도의회, 투자유치과를 두루 거치며 충북행정의 전문인으로 성장했다. 2011년부터는 충북발전의 과제를 등에 지고 서울과 세종시에 파견 근무했다. 열심히 중앙부처와 청와대를 드나들며 정부 행정 조직의 주요부서와 유기적인 관계를 쌓아갔다. 다양한 타시도 자치행정도 비교하며 충북 발전의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대외협력과장으로, 문화산업팀장으로 기관유치팀장으로 충북 발전 기획의 최일선 사령관으로 발탁되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지금의 충북을 낳았다.

 

답은 현장에 있다

이 부군수의 스타일은 현장 실증의 창발적 업무 추진이다. 주어진 업무에 몰입하는 근성은 타고 났다. 화장(火葬) 문화를 선도하는 남해를 찾아 1주일이 넘도록 현장에서 먹고 자며 체험하며 정보를 찾았다. 성공사례 함평나비 축제 현장에서 34일간 밤낮으로 숙소와 음식, 관광자원, 특산물 등을 파악했다. 시간이 부족해 밥도 재 때 못 먹으며 당시 가장 저렴한 티코 차량의 열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충북의 미래를 찾아 동분서주 했다. 제천 청풍 케이블카, 청주초정행궁, 김수연 작가 거리 유치 등 수 많은 커다란 사업이 이 부군수의 머리에서 시작되어 온 씨앗이었다.

이준경 부군수는 "경험을 살려 조병옥 군수와 손발을 맞춰 음성발전에 초석이 되겠다"고 말했다.

 

오뚜기입니다.

이 부군수는 저에게는 보물인 강철같은 의지가 늘 곁에 있었다. 1년 좀 넘게 남은 공직의 길에 세월유수를 느낀다. 아직도 청년같이 건강과 고장 사랑 에너지의 방향을 찾고 있다. 퇴직을 하면 회사생활은 어떤지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다. 끝없는 고향 사랑의 철학이 지인들로부터 고향 발전을 위한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며 예약이라도 한 듯 자주 언급돼 부담 아닌 부담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퇴직 후도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역지사지의 마음

개인 일로 한 민원실을 들렀을 때 너무 복잡한 행정절차와 불친절한 업무 담당자를 경험하며 다짐을 했다. “나를 내세우기 보다는 남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고 행동해야 되겠다라고. 소통하는 실행인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자신의 철학으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가꾸고 있다.

 

백행=효행

이 부군수는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었다. 어린 나이 5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어머님의 지극 정성 보살핌으로 삐뚤지 않게 자라며 어린이 회장, 운동선수, 공무원 공채 합격, 도청근무 합격, 파견근무, 주요 요직 근무 및 승진 등으로 부모님께 효도했다. 이준경 부군수의 고향 사랑은 남다르다. 아직도 홀로 계신 어머님 곁에 주소를 두고 평생을 고향과 함께했다. 현재도 괴산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으로 자리하며 고향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84세의 어머님을 어떠한 경우라도 요양원으로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며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21녀의 장남으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당당하게 직장에서 고향에서 성공했다. 퇴직 후도 길이길이 큰 길 걷기를 기대한다. 장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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