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틈에 핀 하얀 민들레꽃 ‘박희남’
아스팔트 틈에 핀 하얀 민들레꽃 ‘박희남’
  • 장병호 기자
  • 승인 2021.02.26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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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기업 정치 봉사자의 길 걸어 온 빅맨
박희남 전 음성군의회 의장이 자식 같은 염소를 품에 안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박희남 전 음성군의회 의장이 자식 같은 염소를 품에 안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 자식’ 500여 염소는 6차 산업 실현 기틀
의리와 믿음 그리고 뚝심은 국가대표급 인품

 

“음메헤~~~~~!!”
농장을 들어서니 ‘우당탕탕’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기운찬 염소들이 뜀박질 자랑을 하며 반긴다. 500마리가 넘는 농장 안에는 건장한 청년이 며칠 전 태어난 아기염소의 건강을 손자 돌보듯 체크하고 있다. 일찍이 사업가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믿음의 행복음성을 만들고 미래 한국의 중심으로 자리하도록 밤낮으로 선두에서 봉사하며 삶을 가꾸었다.
이젠 신토불이 고향의 들판에 자식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터를 마련해 건강한 흑염소와 함께하며 행복에 흠뻑 젖어있는 농장주인 박희남 농부를 만났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 
6차 산업 ‘~ing’

치밀한 염소사업을 시작했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기상해 농장으로 향한다. 자식 같은 500여 마리의 염소들이 건강하게 뛰어 놀고 있다. 시대를 읽고 사업의 흐름을 잘 알기에 70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거뜬히 아기염소를 끌어 안아본다. 적어도 2년 후면 1,500두로 늘어나며, 충북혁신도시에는 염소전문식당이 개업될 것이라 호언한다. 축산에서 농산가공에 이르기까지 6차 산업으로 연계, 엑기스 상품을 개발, 브랜드화하며 포장 택배로 전국적인 마케팅을 구상중이다.

꾸준히 나를 가꾸는 두 번째 공간
고향인 대소면 소재지에서 금왕을 향해 달리다보면 커다란 2층 건물이 반기며 건물 안 2층에는 박희남 사장이 아끼는 너른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나만을 위한 공간이다. 나를 찾아서 가꾸며 우리 모두의 행복을 찾는 꿈 터이다. 10년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해 틈만 나면 독서에 몰입한다.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보며 앞날을 구상한다. 그리고 사업으로 정치로 두루두루 지인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여기저기 벽면에는 빼곡히 감사패와 임명장, 위촉장, 표창장이 즐비하다. 음성군의회 의장으로, 평화통일음성군협의회장으로, 사업가로, 기업인으로 살아온 흔적들이 그득하다. 

만능 엔터테이너 ‘박희남’
다양한 장르의 사업에서 두루두루 성공했다. 일찍이 20대부터 대소를 중심으로 광혜원, 이월, 진천, 감곡, 장호원, 금왕, 생극, 경기도 죽산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중부권 지역에서 농수산물 도매상을 운영하여 크게 성공했다. 33세 되던 해에는 대소 소재지에서 중화요리식당을 6년간 운영하면서 인근 5개 회사 구내식당을 4년간 함께 운영했다. 대소, 맹동에서 박스공장을 15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음성군수 도전의 큰 경험 후 염소전문식당을 개업해 주방장으로 변신의 발을 들여 놓았다. 5개월간 레시피 연구에 몰입해 전국 최고의 갈비곰탕 메뉴를 개발했다. 특히 갈비, 수육, 곰탕은 인기가 대단했다. 긴 세월 8남매의 가장 역할을 하며 동생 4명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킨 박희남. 70이 되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며 자서전을 쓸 계획이란다.

뚝심과 열정으로 핀 ‘애향’
자신이 걸어온 길은 명예와 욕심보다 이웃과 고장이 우선이었다. 말만 앞세우는 값싼 정치인이 아닌 실행으로 가꾼 진정한 애향 애국의 삶이었다. 후회는 없다. 정직한 언행으로 정치현장에서 실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참 정치인 소릴 들었다. 공인이기에 나를 가꾸었지만 늘 지역을 향한 애향이 전부였다. 넘치는 열정의 힘이 다시 한 번 이웃과 고장을 위해 빛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50년 가까이 늘 옆에서 지켜본 아내 김유순 여사는 말한다. 
“제 남편 박희남은 아스팔트 틈에 핀 하얀 민들레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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