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호 찬 음성군장애인복지관장
전 호 찬 음성군장애인복지관장
  • 장병호 기자
  • 승인 2020.11.13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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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장애인복지사업에 종사한 ‘사회복지 전문가’
전호찬 관장이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챙기고 있다.
전호찬 관장이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챙기고 있다.

 

사회복지사 일 만족하던 인척 보며 비전 품어
어려울 때 후원자·직원·장애인 도움으로 극복 

 

음성군의 장애인 복지를 위해 첨병 역할을 하는 음성군 장애인복지관(이하 장애인복지관)을 찾아 전호찬(51) 관장을 만났다.  
관장실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작은 방과 소박한 집기류가 눈에 띈다. 이곳은 본래는 아동 재활치료실이었으나 장애인들이 드나들며 사용하는 데 불편을 느껴 훨씬 더 넓은 관장실과 바꿨다고 한다.
 
실습 때 장애인들과 함께 거주 
전호찬 관장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수학한 후 대구대학교에 입학, 직업 재활을 전공했다. 이후 건국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1급 사회복지사, 2급 직업재활상담사, 요양보호사, 특정 공공후견인 자격증을 취득해 사회복지 전문가로의 자격을 갖춰나갔다. 그가 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을 둔 것은 모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매형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사는 것을 보며 매우 보람 있는 직업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충북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시절 기숙시설이 있는 실습 기관을 찾던 중 충북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애로와 고충을 알게 되면서 장애인 복지에 관해 관심을 갖고 1995년부터 10년간 근무했다. 이후 음성군으로 와 2004년도부터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5월 관장에 취임했다. 

장애인복지사업이 ‘천직’
전호찬 관장은 “장애인복지사업을 하다 보면 매일같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해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하지만 이런 일들이 오히려 내 역할이고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나 자신이 장애인 복지사업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를 짓는다.
2013년 전(前) 수탁법인의 이사장이 20년 전 충북장애인복지관 건립을 위해 사용한 사채 채무관계가 법인 산하시설의 통장압류를 당해 보조금 사용 금지가 되어 운영이 매우 어렵게 됐다. 책임을 지고 직장을 그만두려고도 했었지만, 후원자들의 도움과 직원들의 격려와 신뢰가 고마워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결심을 하게 됐다.
특히, 어려울 때마다 함께 지냈던 장애인들이 찾아와서 나를 잡아 주었다. 어떤 분은 1시간씩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수박을 사들고 걸어서 찾아와 위로해 줄 때는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게 ‘취미’ 
젊은 시절 등산을 좋아해서 산을 자주 찾았다. 하지만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면서 나날이 많아지는 업무로 인해 취미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돼 버렸다고 한다. 아마도 훗날 일선에서 물러나면 요양 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놀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 관장은 장애인복지관에 근무하지만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늘 마음이 저리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가 이전보다 나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데 장벽이 있다. 클라이언트로부터 프로슈머에 이르기까지 복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를 위해 전 관장은 장애인복지관 5개년 발전계획을 세워놓고 지역에 녹아들고, 사회에 녹아드는 장애인복지관을 만들기 위한 비전을 실천해 나가는 중이다. 

다양한 활동 전개
전호찬 관장은 평생동안 장애인복지사업에 헌신했다. 2005년부터 문경대학과 주성대학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한국장애인복지관 경영자문위원으로, 국민권익위원회 명예 국민권익상담위원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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