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종 혁 (전) 음성군 농업인단체연합회장
임 종 혁 (전) 음성군 농업인단체연합회장
  • 이순자
  • 승인 2020.01.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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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발전 견인하는 맹동면 터줏대감
임종혁 (전)음성군농업인단체연합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태호농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종혁 (전)음성군농업인단체연합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태호농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8대째 고향을 지키며 가업인 농업에 종사
농단연 회장 취임 후‘농업인의 날’개최

 

전통적인 농업 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산업화돼가면서 많은 농업인이 농업을 포기하고 떠났지만, 식량을 무기화하는 이 시대에 농업은 여전히 우리의 소중한 생명 산업이다.
이런 가운데 맹동면에서 8대째 내려오며 농업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11일 음성군 최초로 ‘농업인의 날’을 앞장서서 개최한 임종혁(65) 음성군 농업인단체연합회장이다.

 

8대째 맹동면 거주
임종혁 회장은 8대째 맹동면에 거주하는 본성1리 토박이다.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고향에서 살며 농업을 지킨 인물이다. 한천초등학교와 덕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천농업고등학교에서 축산을 전공했던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토지에서 젖소 키우는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낙농업이 활성화돼젖소 값이 치솟을 때 그는 10여 년간 잘 경영해왔던 낙농업을 접으면서 가지고 있던 젖소를 다 팔았다. 그가 젖소를 매각하는 모습을 본 주변사람들은 “한참 잘되고 있는 낙농업을 왜 접느냐?”며 “정신 나갔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는 괘념치 않고 젖소를 판 돈으로 과수원을 매입했다.

 

오리 산업에 뛰어들어 성공
과수원을 매입한 임 회장은 그곳에서 배, 사과, 복숭아 등을 재배해 판매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호황을 누렸지만 사과 값은 오르지 않는데, 농약 값은 치솟아 수지가 안 맞자 결국 10여 년간 운영해오던 과수원을 과감히 접고 오리 사육에 뛰어든다.
남다른 안목이 있었던 그는 초창기 오리사육으로 대박을 맞게 된다. 이를 계기로 2004년에 한국오리협회 충청북도지회장과 전국오리협회 사료분과위원장을 맡아 오리 산업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며 오리산업을 이끌었다.

 

농업인단체 활동에 전념
농업에 종사하면서 건국대학교 전문농업인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한 임 회장의 거실에는  각종 표창장들이 가득 걸려 있다. 이 표창장들은 그가 농업인단체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받은 상들이다.
임 회장은 청년시절부터 4-H회와 농업경영인회에서 활동을 해왔다. 이후 2000년도에는 맹동면 농업경영인회장을 역임했고 2001년도에 맹동면 농촌지도자회에 가입해 19년간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음성군농업인 단체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음성군농촌지도자회장을 역임하며 농업인 육성 및 농업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임 회장은 또한 사회단체에도 가입해 재향군인회 맹동면회장, 맹동면 국제라이온스클럽회장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러한 공로로 ‘제1회 맹동면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단합된 농심으로 뭉쳐야 산다
임 회장은 지금까지 살아온 고향에서 죽는 날까지 살 계획이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만 잘사는 길을 택하기보다 농업인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고, 권익을 획득해 나가 선진영농을 건설하는 데 귀감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농업이 힘들어도 농업인이 하나로 뭉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인 김순희(62) 씨와 사이에 두 형제를 잘 키워낸 그는  자신의 농장 이름을 아들 형제의 가운데 이름 자를 따서‘태호농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직도 비닐하우스를 비롯 농촌에서 필요한 웬만한 시설은 손수 제작해 사용한다는 그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기숙학원을 바탕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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