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일 헌 맹동면이장협의회장
정 일 헌 맹동면이장협의회장
  • 민광분
  • 승인 2016.08.24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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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봉사의 삶 실천하는 ‘맹동토박이’

주민들 힘모아 쉼터 조성 등 마을의 발전 이뤄
지역발전협·주민자치위·영농회 등 봉사 분주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고향 정든 땅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걷노라면...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 하면서...' 70년대 산업화의 바람이 급격하게 불면서 젊은이들이 도시로 모여 들었다. 시골에는 빈 집이 늘어났고 도시의 변두리 산비탈과 등성이에는 판잣집을 지은 달동네가 형성됐다. 높은 곳에 위치해 달과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비록 잘 살아 보려고 떠났지만 타향살이 서글픔과 고달픔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돌아갈 고향이었을 것이다. 반면 부모님 모시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 친구들이 떠난 빈 집을 보며 하루일과가 끝난 저녁 농주를 마시며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를 부르며 도시의 꿈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한여름 하루가 다르게 고추가 붉게 익어가는 늦은 오후 구릿빛 피부에 순박한 웃음으로 “오셨슈~~ 덥쥬~~” 라며 맞아주는 정일헌(56) 맹동면이장협의회장을 만났다. 꾸밈없는 진솔함과 단백함, 그 고장의 특유의 사투리로 구수하게 역어내는 56년간의 그의 삶속으로 들어 가 본다.

부친의 뜻 '농삿길'로 들어서
명품수박으로 유명한 맹동면 봉암리(현 봉현2리)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기대와 관심 속에서 자라는 동안 장남이라는 무게감이 속이 깊고 진중한 인성을 갖추는데 한 몫 했다. 4km를 걸어 맹동초등학교를 다녔고 덕산중학교와 진천농고 축산과에 진학했다. 농사철은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일을 하면 거기에 맞는 품삯을 주셨다. 그 당시는 몰랐는데 살면서 생각하니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물질교육 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와 농사를 지었다. 그 당시 농고출신은 직장생활에 우선순위 였는데 아버지가 허락지 않아 자신의 뜻을 접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유년시절부터 보아 온 아버지의 이미지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셨으며 일에 있어 옳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이 있었다. 그러한 힘은 “정직하라 그리고 실수는 인정하되 번복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삶의 지론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정회장이 잘못 했거나 또는 밥상에서 수시로 듣던 말이라며 그 말이 자신이 살아가는데 삶의 지표가 되었다며 빙그레 웃었다.

부친에 이어 마을이장으로 헌신
아버지는 마을 일을 13년 역임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한 많은 일들을 했다며 본인도 대를 이어 9년째 마을 일을 한다며 창밖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60~7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이 한창일 때 지붕개량사업이나 도로확장 등 일도 많고 장비부족으로 노동력이 동원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몇 년 전 동네에 있던 보건진료소가 폐허가 된 채 방치된 것을 철거하고 동네 기금으로 마련한 땅에 보건진료소를 신축했다. 그리고 전의 보건진료소 자리에 소공원을 꾸며 운동기구를 들여 놓아 쉼터를 만들었다며 이장이 아닌 동네 주민과 함께 했다며 '나'가 아닌 '우리'를 강조했다.

정회장은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것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산임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원인과 문제해결을 깊이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나 아니다 싶으면 이야기로 풀어간다. 9년동안 주민들의 선거로 마을 일과 맹동이장협의회장을 2년 차 역임해 오는 가장 큰 이유다.

올 여름 군 관계자와 단체장들이 충북 영월 동강으로 화합과 단합을 위해 맹동이장협의회 주관으로 레프팅을 다녀왔다. 물살을 따라 여유 있게 노를 젓다가 좁은 틈을 지나려면 한마음이 되어 노를 저어야 순탄하게 지날 수 있다. 놀이문화를 즐기면서 화합과 단합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서 주어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평범한 듯 하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은 선비의 자세를 보는 것 같다.

여러 봉사에 바쁜 나날속
아내에 감사

1988년 정회장의 결혼에 맞춰 아버지는 헌집을 헐고 새 집을 지었다. 곁에 있어 준 장남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지 아들의 출세 길을 막았다는 미안함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역발전협의회, 주민자치회, 영농회장 등 일을 하도록 묵묵히 내조를 해 주는 아내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부인 이미옥(53) 여사와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대를 이어 마을의 이장에서 면을 대표하는 이장협의회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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