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말의 날' 제정 등 감곡면 변화의 산증인
'관말의 날' 제정 등 감곡면 변화의 산증인
  • 민광분
  • 승인 2016.05.19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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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정돈된 흐드러지게 핀 연상홍 앞에서 부인 최종숙씨와 포즈를 취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흐드러지게 핀 연상홍 앞에서 부인 최종숙씨와 포즈를 취했다.

시가지정비사업 통해 상권 활력 찾아 '보람'
“작지만 좋은 일 한 가지씩 꼭하며 살겠다”
생극 웅천변에 벚꽃길을 조성하여 생극면민의 휴식처는 물론 관광의 명소로 자리매김을 하는데 공헌을 한 분이 있다. 임흥완(64) 전 감곡면장이다.그를 만나러 가는 날, 웅천변 벚꽃의 향연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며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 연하디 연한 새순이 꿈틀거리며 잎을 내밀면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자리를 털고 바람을 따라 나선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다가 쉬기라도 할 냥으로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은 활짝 피었을 때보다 더 감동이다.

벚꽃과도 같은 임 전 면장은 공직생활25년이다. 1983년 음성군 최연소로 관말1리 이장이 된 그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을 기획하며 성실하게 일을 하였음으로 1987년 모범 이장으로 특별 임용, 생극면에서 공직에 입문하여 2010년 감곡면장이 됐다. 그리고 2012년 59세의 나이로 퇴임을 하고 고향인 관말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4월의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하얀 벚꽃이 내 앞으로 날아든다. 마중을 나온 듯하여 차에서 내려 두 손으로 받았다.
감곡면장 재직시 시가지 정비
창의적인 열정과 아이디어로 많은 일들을 해 온 그는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으며 잘했다 싶은 것은 감곡면장으로 재직 당시를 회고했다.
경기도 장호원과 감곡면의 경계인 다리가 있다. 어느 날 다리를 오가면서 두 지역을 비교해보니 장호원은 도로가 깨끗하고 정돈된 인상을 주는 반면 감곡면은 노후 된 이미지였다. 이에 할 일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한 그는 군에 시가지정비사업 계획서를 제출했다. 결제가 나자 서울 올림픽공원을 필두로 여러 곳을 선진견학 했다.

그리고 디자인이 이쁜 최고급 강화 블록으로 인도를 깔았다. 시가지가 산뜻해지면서 상가에 활력이 생겼다.
뒤이어 청미천(국가천으로 금왕읍 백야리와 감곡면 원당리에서 흐르는 물과 경기도 용인의 원담 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함) 제방에 감곡의 명품 복숭아를 시각적으로 홍보했다. 꽃잔디로 복숭아를, 주목나무로 감곡복숭아 문구를 심고 주변에 꽃잔디로 장식했다. 지금도 곳을 지날 때면 공직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라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출향인과 함께 한 '관말의 날' 26년째 이어져
산업화의 급속한 발전으로 하루에 빈집이 서너 채 씩 비어갔다. 한 해가 다르게 빈 집이 늘어가는 것을 보며 동네가 무너져 가는듯한 느낌이 들어 고향을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 9월 벼 베기를 끝내고 저녁으로 칼국수를 먹으며 “타지에 나간 고향 분들을 모셔서 하루 행사를 하면 어떨까요?” 이 제안에 15명의 호응을 얻어 기획을 했다.

1991년 3월 서울에서 이주해 오신 분이 망월산에 집을 지었는데 터가 넓어 그 곳에서 행사를 열었다. 고향을 찾은 출향인들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비록 이 곳에 함께 살지는 않지만 고향이 있다는 것과 도시의 아이들에게 농촌의 정서를 보여주는 의미에서 매년 5월 첫째주는 '관말의 날' 행사를 한다. 맞아들이는 주민들과 찾아오는 출향인들의 상봉은 제 2의 명절과 다름없다고 한다.
타고 난 부지런함 아내 사랑으로 이어져
타고 난 성품이 부지런한 그는 2006년 생극 부면장으로 재직 중 조직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환경미화원이 민간인 위탁한 사례를 떠올렸다. 이들은 집 앞에 내어놓은 쓰레기만 수거함으로 거리가 지저분했다. 보기 좋지 않았던 그는 새벽 5시에 나가서 거리를 쓸고 7시에 들어 와 아침을 먹고 출근하기를 3년, 군청으로 출근하는 아침까지도 청소는 이어졌다.

공직자로서 자신의 일에 전념할 때 집 안 일은 오롯이 아내 최종숙(64)씨의 몫이었다. 항상 건강할 줄만 알았던 아내가 무릎 수술과 어깨수술을 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갔다. 밥을 하면서 가사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며 멋쩍은 듯 웃는다.

슬하에 2남1녀의 자녀가 있는데 작년에 돌 지난 손녀를 맡아 기른다. 여간 사랑스럽지가 않다. 자식을 키울 때는 일이 바빠서 이쁜 줄 몰랐는데 여유가 있는 현재는 꼬물꼬물 움직이며 방긋방긋 웃는 손녀는 보고 또 보아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때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새벽에 일어 나 농작물을 심은 들녘을 돌아보며 가끔씩 손녀 옆에서 곤히 잠든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다.
배웅을 하는 그에게 삶의 가치에 대해서 묻자 “앞으로 남은 인생 작지만 좋은 일 한 가지씩 꼭 하며 살려고 합니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하는 그는 벚꽃과 다름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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