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박 정 인 할머니
자원봉사자 박 정 인 할머니
  • 임요준
  • 승인 2015.12.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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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사람!
평생 남을 위한 삶 … 음성군 최고령 '봉사여왕'
교사에서 다도예절 강사와 이주여성·독거노인돌봄까지
“남편·자녀·건강복까지 … 복 많아 나눔의 길 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했다. 사람은 서로 돕고 어우러지며 산다.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5일은 정부가 정한 '자원봉사자의 날'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그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날이다. 평생 남을 위한 삶을 살아온 음성군 최고령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82세의 고령에 타인의 손길이 필요한 연세임에도 자신보다 나이어린 독거노인을 돌보는 박정인 할머니. 박 할머니의 삶속으로 들어가 본다.


초등교사에서 중등교사로 바꿔
박 할머니는 진천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파 출신 아버지는 초야에 묻혀 오로지 농사에만 전념했다. 3남2녀중 차녀다. 진천 상산초와 진천여중을 거쳐 교사의 꿈을 안고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고향인 진천 삼수초에서 첫 교사의 길을 걷게 됐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급 반장을 놓친 적이 없다. 특히 영어과목에 월등한 실력을 보인 그녀는 여중시절 영어교사의 가르침을 받아 중등 임용고시를 준비, 합격했다. 초등교사에서 청원군(현 청주시) 문의중학교 실과교사가 된 것이다.

이때 정혼남 이상규(86) 씨를 만나 결혼했다. 청주에서 서점을 운영한 이 씨는 대전에 기계제작 회사를 설립하면서, 그녀는 남편을 따라 대전으로 이사했다. 남편 사업을 돕기 위해 교사직마저 포기했다.

하지만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회사는 부도처리 되고 온 가족이 남편의 고향인 청주시 문의면으로 귀향했다.


중등교사에서 다도예절강사 변신
박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산을 개간해 농장을 시작했다. 한우와 젖소, 돼지, 닭 등 축산업을 시작했지만, 경험부족이었을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청주여성회관에서 진행하는 붓글씨교실를 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원에 계신 다도(茶道) 선생인 금낭 노석경 선생을 만나게 된다. 첫 다도를 접한 그녀는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아, 바로 이거다!”청주와 수원을 오가며 다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금낭 선생의 수제자가 되면서 '금영'의 호를 하사받았다. 이후 전국을 돌며 다도예절을 전하는 다도전도사가 됐다. 이때부터 그녀의 봉사활동은 시작됐다. TV에 여러 번 방영되면서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 미8군에서 미군 부인을 대상으로 교육하면서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원 삼성전자 직원을 대상으로, 그런가 하면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까지 다니며 다도를 전했다. 그러다보니 체력은 바닥이 나고 지칠 대로 지쳤다. 이를 보강하고자 배운 것이 단전호흡이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그녀의 성격에 '단전호흡 사범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다.


한글강사, 노인돌보미 등 봉사
그러던 지난 1991년 남편의 여동생인 시누이가 음성농공단지에 공장을 신설하면서, 그들을 돕기 위한 명분 이였지만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에 집 근처조차 나서기 어려워 지친 몸을 쉬고 싶은 생각에 음성으로 이주 하게 됐다. 음성과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음성에서의 생활은 처음 생각과는 달랐다. 음성으로 이주해 왔다는 소식이 금세 전해졌고 끊임없는 교육요청에 그녀는 다시 다도전도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음성문화회관에서 읍면 부녀회장을 대상으로 1주일간 연속 강의가 시작됐다. 이후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에서 읍면 순회 교육을 실시했다.
1997년부터 10년간 음성군 상담실에서 근무했다. 그러면서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와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다문화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방문지도를, 생극면 홍복양로원을 찾아가 의식교육 및 손동작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금왕노인복지관에서는 수지침 봉사를 하다가 지금은 손마사지 봉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겪은 사연도 많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수많은 애환도 함께 했다. 임신한 어린 여중생의 사연은 지금도 가슴시린 사건이다. 하지만 이후 그들의 새로운 삶을 돕고 변화된 생활을 보면서 보람도 느낀다는 박 할머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로 한 연세지만 계절이 바뀔 때면 독거노인돌보미로 닭백숙을 요리해 봉사한다. 목욕봉사는 기본이다. 봉사를 하기 위해 70세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사랑과 나눔의 마음 있어야”
“어딜 가면 '봉사여왕' 오신다고 환대를 받곤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나의 봉사는 단지 내가 받은 복을 나눠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잘 자라준 자식들이 있고 건강의 복까지 받았습니다. 받은 복을 나눠주고픈 마음이 전부입니다.”

“단 자원봉사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댓가성이 없는 것이므로 마음을 비우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마음 나눔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원봉사 한만큼 내게 돌아옵니다. 정신적으로 플러스가 됩니다.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 옵니다. 첫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 비우고 나 자신을 위해 한다는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며 조심스런 당부로 인터뷰를 마쳤다.

이같은 박 할머니의 자원봉사정신이 인정돼 교육부장관상과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 도지사상, 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박 할머니는 홍익대 교수인 아들 진희(58) 씨와 초등학교 교사인 딸 연희(55) 씨, 전 중앙대 교수인 선희(53) 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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