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사람!] 장 준 기 맹동파출소장
[여기, 이사람!] 장 준 기 맹동파출소장
  • 임요준
  • 승인 2015.11.3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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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의 큰 형님’에서 ‘홀몸노인의 아들’ 되다
태권도 4단 무도경찰로 시작해 30여 년 봉직
'어르신을 부모처럼, 주민을 형제처럼' 섬겨

▲ 장준기 맹동파출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장준기 맹동파출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면서 동장군에 저절로 몸이 움츠려드는 초겨울 날씨가 매섭다. 대부분 농촌지역이 그렇듯 음성군 맹동면에 거주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외지로 자녀를 보내고 외롭게 사시는 홀몸노인들이 많다. 돌보는 가족이 없어 특히 겨울철이면 어르신들의 건강이 염려된다. 여기 어르신들을 위해 '아들'을 자청한 한 경찰관이 있다. 주인공은 30여 년간 서울에서 근무하다 첫 지방 근무지로 맹동면을 찾은 장준기(56) 맹동파출소장.


공학도에서 경찰관으로...
장 소장은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서 4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평생 후학양성에 헌신하신 아버지를 따라 순수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며 도와주고 살겠다며 국민을 위한 경찰관으로서의 삶의 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그의 첫 직업은 경찰이 아니었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에선 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서울시 소재 한일전기에서 2년간 근무했다.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는 경찰관이 되기로 결심하고 경찰시험에 합격, 태권도 4단인 그는 1986년 2월 서울지방경찰청 무도경찰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장 소장은 “개인회사보다 공무원이 더 낫겠다 싶었지요. 경찰관이 돼서 어려운 사람 도우면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드라마 포청천처럼 베풀면서 살겠다했지요. 경찰관이 되면 고난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백골단(현 경찰관기동대) 무전병으로 3년 간 근무한 그는, 이후 근무지는 본인이 희망하는 곳으로 배치되는 것이 통례였다. 대부분 속칭 말하는 편한 근무지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힘들다며 꺼리는 서울 남부경찰서(현 금천경찰서)를 택했다. 관할 지역은 독산동, 구로동, 가리봉동 등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으로, 그는 이곳에서 10년간 봉사했다.

편안 곳이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의 소신은 경사 진급 후 남대문경찰서를 지원하면서 또 한 번 나타난다. 이곳은 서울역과 시청 등 주요 시설이 있어 회피지역 4대문안 중 한곳이다. 그는 남대문경찰서 중림파출소에서 부소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노숙인 위한 TF팀 구성
특히 이곳은 노숙인들의 거처지로 이곳 노숙자만도 300명에 이른다. 아침 출근시간대 이들의 노숙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누군가 관리가 필요한 상황. 장 소장이 자청해 나섰다. 이른 6시부터 구청 청소부 아주머니들과 함께 노숙인 한명 한명을 깨우며 물청소에 쓰레기까지 치워야만 했다.

스티커 발부에 항의하는 노숙인들도 적지 않았다.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스스로 다짐한 그는 그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종교단체에서 식사제공을 할 때면 1500명 이상이 줄을 서 기다리는 중에도 술과 담배, 서로 싸움까지…대포차 대포폰 불법 사업자등록으로 범죄에 이용당하는 일까지도 장 소장은 하나하나 정돈해 나갔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이 장 소장을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는 이발봉사를 시작했다. 그들은 장 소장을 따르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노숙인의 큰 형님'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그의 단독 봉사는 8년간 계속됐다. 이후 남대문경찰서는 노숙인을 위한 전담 TF팀을 구성, 질서문제서부터 법적인 문제까지 해결하기 시작했다. 전문적 봉사는 다시 8년 간 이어져 결국 장 소장은 16년을 노숙인의 큰 형님으로 살게 됐다.


등굣길 교통안전지킴이 변신
노숙인의 큰 형님도 가정에서는 한 여인의 충실한 남편이다. 장 소장은 부인 김기숙(50) 여사의 끊임없는 시골생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서울을 떠나 괴산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지난 1월 28일자로 음성경찰서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 이외 첫 근무지로 맹동면파출소에서 봉사하게 된 것이다.

장 소장이 이곳에 오면서 처음 느꼈던 것은 자녀들을 외지에 보내고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외로움 이였다.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부는 외지 자녀들에게는 최대 걱정거리다. 이를 알게 된 장 소장은 매일같이 노인들을 찾아 안부를 묻는다. 말벗도 되어 드린다.

또한 매일 아침 맹동초등학교 앞에서 그를 만난다. 학생들의 안전등교를 돕기 위해 교통안전지킴이를 자청했다.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거수경례보다 굴신경례를 택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등 이제는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한다.

다시 태어나도 경찰관이 되겠다는 장 소장은 “앞으로도 하루하루 지역민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지역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문안순찰과 울타리 순찰을 계속하겠습니다”며 “특히 독거노인분들의 안부를 꾸준히 살피며 국민의 경찰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고 각오를 밝혔다.

장 소장은 부인 김기숙 씨 사이에 1남1여를 두고 있다. 아들 우인(25) 군은 서남대 경찰행정학과(3학년)에 재학 중으로 미래 경찰관을 꿈꾼다. 딸 우희(23) 양은 서울여대(3학년) 공예디자인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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