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권외과의원' 원장
권오준 '권외과의원' 원장
  • 고병택
  • 승인 2014.08.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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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를 이은 음성의 '슈바이처'

故권영소 옹의 대를 이은 음성사랑
환자와 소통하는 넉넉한 시골의사

▲ “아버님은 저의 큰 스승이자 신앙”이라고 기리는 권오준 원장.
▲ “아버님은 저의 큰 스승이자 신앙”이라고 기리는 권오준 원장.


자식이 부모를 닮는 이유는 사람의 체세포속에 있는 46개의 염색체 속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특징을 골고루 갖게 되거나 천성적으로 부모 중 한사람과 같은 직업을 갖고 대를 잇기도 한다. 부모 자식이면서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이다.

금왕 '권외과의원' 권오준 원장, 그는 음성의 슈바이처로 기억되는 故 권영소옹(2012년타계)의 아들이자 '환자와 소통하는 시골의사'로 유명하다.


아버지 아들로 기억될때 행복

권오준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92년 외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1995년 부친의 뜻을 이어 금왕에 '권외과 의원'을 개원해 스스로 시골의사가 됐다.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진료하는 모습, 활동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고향에서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드는 것이 도리였기 때문에“ 그는 “졸업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권원장의 우상이었다.

“아버지는 무극초,경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중앙의료원 수련원 시절에 6.25 전쟁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후 권원장의 부친은 공군 군의관으로 입대, 시대의 상처를 온 몸으로 맞서다 소령으로 예편하고 서울에서 잠시 개업했으나, 진료환경의 열악함을 호소하는 고향사람들의 권유로 보장된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1961년 귀향해 40여 년간 환자를 돌봤다.

“제가 철 들었을때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을 갖고 늘 지역의 대소사에 관여했습니다”

그의 부친이 1971년 세계적 봉사단체인 로타리클럽 창립을 위해 기꺼이 대지를 기증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것이 기반이 돼 현재 '무극로타리클럽'이 창립했으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선구자인 셈이다.

“2000년초 현역에서 은퇴한 아버지는 금왕읍지편찬위원장, 안동권씨 추밀공파 대종회장을 역임하다 향년 88세로 타계하셨지요”


환자의 마음이 우선

무슨 얘기를 하든 아버지의 얘기로 돌아오는 권원장의 아버지 자랑은 계속된다.

“아버지의 아들로 기억될때 행복하다”는 그는 하얀가운을 입으면 늘 아버지와 같아지려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1960년대 당시 시골에선 엄두가 안 났던 충수돌기염(맹장염) 및 종양 수술을 시행했는데 그가 아버지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교통여건이 안 좋았던 그 시절 1년 365일, 주야간진료는 물론 유일한 교통수단인 자전거로 금왕은 물론 충주 신니면까지 왕진을 다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서울에 출장을 가셔도 환자걱정에 하룻밤 이상을 보내시지 않고 병원으로 내려 오실 정도로 환자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진 분이었다"는 권원장.

그 역시 환자의 환부를 보면서 환자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치료이전에 환자들의 얘기를 들으려하고 스스럼없이 대하며 소통한다.


거만함과 자만심을 버리라

권원장은 지난 6월, 국제로타리 3740지구 무극로타리클럽 제44대 회장에 취임했다.

중산층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요즘 그는“사회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사회를 증오하지 않고, 그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 세상에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또 그는 “우리 지역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의료와 건강 사각지대에 노출돼있다”며 "이들을 돌보고 의료적 도움을 주는 일을 모색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할 것“이라고 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로타리클럽을 통해 더 많이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구상중인 사업은 한국문화 체험 및 위안 잔치 등이다.

권원장의 가훈은 “자신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거만함과 자만심을 버리라”이다.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진료환경의 기회를 제공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는 권오준 원장.

그는 마지막 까지도 “아버지는 나의 큰 스승이자 신앙이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항상 바른 길을 가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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