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 ‘느리게 사는 법’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 ‘느리게 사는 법’
  • 고병택
  • 승인 2013.08.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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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면 해오름 봉사단

▲ 해오름 봉사단원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야외 나들이를 하고 있다.
▲ 해오름 봉사단원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야외 나들이를 하고 있다.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 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남자…마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딩카족,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메마른 땅,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 그는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다.

사랑과 헌신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인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이태석 신부.

순수하고 고결한 인간에 대한 사랑, 이기심은 단지 우리 사회의 껍데기일 뿐인지도 모른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 사람들은 늘 성공 신화에 쫓겨 산다.

해서, 과도한 욕망은 때때로 사람의 본성을 바꾸어 놓고, 삶을 일상 궤도에서 이탈시켜 멀쩡한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낄 때, 아득바득 살아왔던 삶에 대한 회한이 몰려 온다.

'느리게 사는 법' 그 해답을 주는 현장을 찾아 갔다.

구제역 파동…해오름 탄생

2010년 음성지역을 강타했던 구제역 파동, 긴급 백신접종과 살처분, 매몰 작업에 수많은 중장비와 인력이 동원되고, 긴장속의 사투가 계속됐다.

최윤경 회장은 “죽어가는 생명을 보는 것도 가슴 아프고, 기약없는 싸움에 막연하기만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회장은 “방역에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 조그만 일이라도 돕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누구나 꺼려했던 현장을 찾아, 간식을 제공하는 등 봉사에 몰입했던 최 회장은 역부족을 실감하고, 봉사단체 설립을 결심하게 된다.

결국, 최 회장은 2011년, 17명의 여성회원으로 구성된 '삼성면 해오름 봉사단'을 탄생시켰다.

설립 취지에 대해, 최 회장은 “자원봉사는 남만 돕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돕는 일”이라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우문현답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것”

설립 3년째, 순수여성단체로 출발한 '해오름 봉사단'은 남성 회원들을 영입, 각종 관내 행사 자원봉사는 물론 생활안전을 위한 축대 보수 등 봉사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재 33명의 회원들은 최윤경 회장, 신성자 총무를 주축으로 여름철 곰팡이, 누전이 우려되는 열악한 환경속에 있는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정을 방문, 도배공사, 말벗, 청소, 밑반찬 제공 등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있다.

또한, 투석 말기암환자 차량지원, 청명요양원 이.미용 봉사를 비롯, 글짓기교실, 학습도우미 등 재능기부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교통안전공사 선정 교통사고 재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음성군에서 명단을 제공받은 교통사고 장애인들을 방문, 생활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실제, 회원들은 30년전 경운기 사고로 거동이 불편했던 50대 남성을 지속적으로 방문, 반복운동을 통해, 상태를 호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회원들은 내년부터 안실연과 연계, 유아 교통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남성 회원들의 가세로, 금왕읍사무소 '책뜨락'에 도서를 기증하고, 도서관리를 위해 4명의 회원들이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특히, 시인 김요한 회원은 '금왕읍 글벗교실'을 개강, 관내 어린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인터뷰 중, 회원들은 NGO를 통해, 해외봉사를 계획하는 등 단체의 일대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미·니·인·터·뷰

최윤경 회장(61세)
최윤경 회장(61세)
“항상 밝은 등불이 되자”

최윤경 회장, 호는 상명(常明), 항상 밝은 등불이 되자는 뜻인 듯.

“일상생활 자체가 봉사로 몸에 베어 있다”는 주위의 전언답게, 포근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원봉사 500시간 인증' 및 음성군수 표창 등, 그녀의 노고를 증명하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녀는 “뜻이 있어도 용기가 없어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봉사는 시간을 나누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주는 즐거움이 받는 즐거움보다 훨씬 크다”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단체에 대해, 최 회장은 “과일 농사를 짓는 회원들을 위해 서로 일손을 도울 정도”라며 회원간의 남다른 유대감을 자랑했다.

97세의 시어머니와 83세의 친정어머니를 함께 봉양하고 있다는 효녀, 최 회장은 “남편의 협조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부군에 대한 애틋힌 심경도 피력했다.

'의미있는 삶'의 해답은 그녀의 미소속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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