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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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wg
  • 승인 2018.06.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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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현 지체장애인협회 원남면분회장

남수현 지체장애인협회 원남면분회장
남수현 지체장애인협회 원남면분회장
전동휠체어를 타고 소리 없이 나타난 남수현 지체장애인협회 원남면분회장은 미소가 밝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이다. 손을 내밀며 익살스럽게 건네는 인사 한 마디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정이 느껴진다.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그가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친구가 되어주는 남수현(75) 지체장애인협회 원남면분회장을 만났다.

7살 때부터 말하고 걷기 시작

원남면 상노리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남 분회장은 7살이 될 때까지 말도 하지 못했고 걷지도 못하는 미숙아로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기관차운전과 경찰 등 공직생활을 하던 부친과 집안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람구실을 못할 것이라며 걱정과 염려뿐이었다.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7살 때 폭풍 성장을 하게 되면서 걷기 시작했고 말문이 트이기 시작해 그때부터 말을 배워 7살이 넘어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인 14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뒤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고엽제 판정으로 국가유공자

그는 66년도에 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강원도 화천으로 배치를 받고 군 복무를 하던 중 67년에 월남으로 파병을 가게 됐다. 월남전에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게 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파병 1년 만에 귀국하여 69년도에 전역을 했다. 그 당시에는 고엽제 인 줄도 모르고 뿌리는 약을 다 맞고 전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때를 회상해 본다.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인 원남면 상노리에 정착하게 됐다. 고향에서 농사일을 시작했지만 땅이 많지 않은 터라 농사에만 전념을 할 수가 없어 주변의 기업체, 아파트 등에서 경비근무자로 18년을 근무해왔다.

월남참전의 여파인지 2004년도에 하지중추신경마비 증세로 병원에 6개월 입원하며 대수술을 하고나서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해 고엽제 판정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됐으며 그 후로 고엽제전우회음성군지회 선도과장과 월남참전자회 원남면분회 총무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

그는 2003년도에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디자인하고 싶어 찾은 곳이 금왕에 위치한 음성군장애인복지관이었다. 그곳에서 컴퓨터, 게이트볼, 서예, 하모니카, 풍물 등을 교육받았고 여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보다 더 어렵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삼성면주민센타에서 하모니카 봉사와 장애인의 날 행사에 풍물단을 구성해 음성예술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황해도가 고향인 부인 정정자(76) 여사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고 있으며 큰 아들은 법원서기관으로, 작은 아들은 음성서 수사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부족함이 많은 남편을 도와 어려운 가정을 꾸려가며 자식들을 반듯하게 키워준 아내가 고맙고, 잘해준 것 하나 없어 늘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원남면 지체장애인의 수장

남 분회장은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어 2010년에 지체장애인협회를 찾았고 이곳에서 윤혜진 지체장애인협회장의 지원하에 회원들과 함께 각종 자원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양로원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에 음성군지체장애인협회 원남면분회장으로 임명이 되어 원남면 상노리에 지체장애인원남면분회 사무실을 마련하고 58명의 회원을 보살피고 있다.

회원들이 나이도 많고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량이 지원된다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건강을 돌봐 드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요 소박한 그의 꿈이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무실 운영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라 지자체의 지원과 독지가들의 후원이 절실하다. 신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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